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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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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콘서트가 미어터진 날

등록 2009-09-16 17:17 수정 2020-05-03 04:25

그 마을의 아침은 “빰빠야~” 사바나의 외침으로 시작한다. 원주민들의 서열은 문명 세계의 기준으로는 추남추녀일수록 높아진다. 자연의 혜택을 듬뿍 받은 옥동자와 박지선이 아니라면 ‘분장실의 강 선생님’을 따라 골룸과 오크로 변신해야 한다. 마을에서 가장 다정한 인사는 “밥 묵자”이고, 노래방 기계는 ‘고음불가’고, 남자 꼬이기는 언제나 ‘참 쉽죠잉~’이다. 세상에서 제일 웃기는 마을, 가 10주년을 맞았다.

< 개그콘서트 >. 사진 한국방송 제공

< 개그콘서트 >. 사진 한국방송 제공

솔직히 깜짝 놀랐다. 겨우 10년밖에 안 되었나? 그 사이에 이렇게나 많은 유행어와 인기 코너로 대한민국을 들썩거리게 만들었나? 어쨌든 10주년 기념 쇼를 만든 제작진과 출연진들은 굉장한 뿌듯함과 동시에 만만찮은 부담스러움을 느꼈을 것 같다. 이렇게 재료도 많고 요리사도 많은 잔칫상이 어디 있나? 나의 소감을 말하자면, 시끌벅적 제대로 잔칫집 같았다. 잔칫집의 좋은 점, 나쁜 점을 고스란히 만날 수 있었다.

순악질 여사, 수다맨 등 세상을 주름잡던 왕년의 캐릭터들이 앞다퉈 나타났다. 빠꾸와 세바스찬을 비롯해 요즘 뭐하는지도 모르고 있던 삼촌들이 줄줄이 얼굴을 내밀었다. 초대 손님들도 적지 않게 문을 드나들었다. 그래서인지 정말 잔칫집처럼 정신이 없었다. 너무 기대를 하고 갔던 탓인지, 이것저것 주워먹긴 했는데 배가 덜 차서 나오고 말았다.

‘고음불가’에서는 팀의 우정이 돋보였지만, 노홍철·정형돈이 오히려 ‘음정불가’라서 포인트가 살지 못했다. 소녀시대는 라이브에서 정말 저렇게 부를까 겁이 났다. 봉숭아학당의 옛 선생님 김미화가 분장실을 찾아왔는데, 새로운 시청자에게 ‘음메 기죽어’를 가르치시느라 맥이 빠진 것 같다. 임창정이 그나마 초대 손님 보는 재미를 전해주었다. “오랜만이야 많이 아는 마니아들은… 원래 이런 코넌가?” 이거 입에 착 붙었다.

시청자가 뽑은 다시 보고 싶은 코너 1위에 오른 ‘대화가 필요해’가 그래도 기대에 가장 부합했던 것 같다. 앙코르 공연답게 과거의 에피소드를 재현하며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시청자에게 더 큰 서스펜스와 반전을 만나게 해주었다. 장동민 엉덩이 때리기, 신봉선이 입으로 깎아준 참외 먹기 등 주옥같은 장면이 지나갔는데, 김대희의 삭발 재연신은 가장 큰 희생을 했음에도 어쩐지 재미없었다. 그런데 그때 신봉선의 한마디 “두 번 보니 재미없네”, 정말 그 한마디가 다이너마이트였다.

집안 잔치의 웃음꽃은 결국 서로 살짝살짝 헐뜯기에 있지 않을까? 할머니 신동순으로 등장한 신동엽을 또 다른 할머니 장동민이 때리자 손자는 “할머니 왜 이러세요. 방송 오래 하려고 PD랑 결혼한 사람한테”라고 찌른다. ‘달인’ 코너에 나온 명훈이는 또다시 ‘들어가’를 당하는데, 그 순간에 또 다른 존재감 희박의 캐릭터 노우진과 서로 눈싸움을 한다. 여러 물의를 빚어 코너에서 하차한 개그맨들까지 살짝살짝 들쑤시며 말한다. “독해!” 그래, 독해지면 좀 어떠냐? , 독하게 20년, 30년 오래 해먹어라.

이명석 저술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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