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겨울, 런던에서 겪은 일이다. 몇 년 전부터 교통체증을 줄이려고 전쟁을 벌이는 런던 시내에 부득불 차를 몰고 들어간 게 화근이었다. 오후 늦게 런던 시내 한복판에 있는 작은 호텔에 투숙했다. 워든(Warden·주차위반 단속요원)이 길가에 세워놓은 주차위반 차량에 딱지를 붙이고 있었다. 일단 호텔과 가까운 곳에 있는 사설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주차 시간에 따라 요금이 올라가는 미터 요금제 주차장이었다. 그런데 돌아오면서 보니 이곳 호텔 주변도로는 ‘Residences Only 08:30∼18:00’ 구역이라고 표시돼 있었다. 아침 8시30분부터 저녁 6시까지 근처 주택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만 주차가 허용된다는 뜻이다. 바꿔 말하면 저녁 6시부터 다음날 아침 8시30분까지는 이 도로변에 무료로 주차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잘됐다, 싶었다.
저녁 6시가 되자마자 서둘러 다시 주차장으로 가서 요금을 내고 차를 뺐다. 그러고 나서 호텔 앞 그 도로상에 차를 세웠다. 다음날 아침, 새벽같이 일어나 하이드파크 공원에 가 산책을 하고 돌아왔다. 주차단속이 시작되는 8시30분이 되려면 아직 30분가량 남아 있었다. 서둘러 아침을 먹고 나서 차를 빼도 충분하겠지 생각하고 호텔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었다. 따뜻한 모닝커피까지 즐겼다.
아뿔싸! 손목시계를 보지 않고 호텔 식당에 걸린 시계를 주시하고 있었는데, 5분 정도 늦게 가는 고장난 시계였다. 물론 뒤늦게 깨달은 사실이다. 커피잔을 내려놓고 부리나케 바깥으로 나갔다. 내 손목시계는 벌써 8시33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3분 지났는데 벌써 주차위반 딱지를 붙였을 리는 없을 테고….’ 그러나 한발 늦었다. 말 그대로 ‘깻잎 한 장의 (시간적) 차이’였다. 젊은 워든이 내 차 앞 유리창에 딱지를 붙이고 있는 게 아닌가! “영국 온 지 며칠 안 돼서 잘 몰랐다. 봐달라.” 영국에 사는 한국인들이 도로교통 위반 죄목으로 걸렸을 때 상투적으로 쓰는 용어를 나도 그대로 내뱉었다. “겨우 3분 늦었는데….” 애걸복걸조로 흑인 청년 워든의 마음을 움직여보려 시도했으나, 소용없었다. “운이 나빴다고 생각해라, 어쩔 수 없다”는 심드렁한 말과 노란 주차위반 스티커만 남기고 그는 가버렸다.
딱지를 펼쳐보니 벌금액이 무려 120파운드(약 24만원)였다. 눈앞이 캄캄했다.(다음호에 계속)
조계완 기자 blog.hani.co.kr/kye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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