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도봉에서 우두령(질매재)을 잇는 백두대간. 구름은 낮게 내려앉아 사위는 온통 회색이고 6월의 성숙한 초록 위로 비는 수직으로 내렸다. 전라와 경상, 충청이 꼭짓점으로 만나는 삼도봉 정상에서 헤드랜턴을 최대한 밝혔다. 가시지 않은 어둠과 내려앉은 구름이 뒤엉킨 사위에서 ‘밝기가 최대’라는 랜턴의 광고 문구는 무색했다. 빛은 삼도가 화합하겠다고 세운 화합의 탑조차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어둠 속으로 흡수된다. 가야 할 길이 먼 탓도 있었지만 해 뜨기 전 짧은 시간에만 만날 수 있는 푸른 빛을 보고 싶었다. 그 푸른 빛으로 잠 깨어 일어나는 어깨 결은 봉우리들의 파노라마를 보고 싶었다. 내리는 비에 이미 기대가 무너졌다는 것을 알면서도 산을 오른 것은 10년 전 삼도봉 아래에 기댄 마을 해인리에서 들은 옛이야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 세상이 만들어지고 어느 아늑한 날 땅과 바다가 갑자기 뒤바뀌었다. 바다가 땅이 되고 땅이 바다가 되는 그 황망한 순간에 그래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삼도봉에 쇠말뚝을 박고 배를 묶었다. 또 다른 이야기는 가야산 해인사가 처음 삼도봉 아래에 터를 닦으려 했다는 것이고 그 내력이 전해져 마을 이름이 해인리라는 거였다. 이어지지 않을 것 같은 두 이야기는 어쩌면 하나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해인(海印)은 물결이 일지 않아 마치 거울 같은 바다를 이르는 불교의 말이다. 삼라만상 모든 것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업까지도 도장 찍히듯 새겨진다는 그 바다는 부처의 가슴속에만 존재한다고 했다. 내리는 비는 ‘방수·방풍·투습’의 고기능성 옷을 꼭꼭 여미어 입었는데도 옷 속을 파고들어 몸을 적신다. 차갑다. 정신이 번쩍 든다. 가야 한다. 비까지 내리는 어두운 산길을 걸어야 하는 것이 업보라면 당당히 지고 갈 일이다.
삼도봉에서 북진하는 백두대간 길은 직지사를 품은 황악산(또는 황학산)을 지난다. 그 최고봉이 우주만법의 본체인 비로자나불이 상주하는 비로봉이다. 가보자. 부처를 만난다면 부처의 가슴을 열어 해인을 만나자. 지고 가야 할 업보인지 반야용선을 타고 지혜를 구해 벗어나야 할 업보인지를 가늠해보자.
삼도봉 정상 공터를 벗어나 숲으로 든다. 10년 전, 이 길을 걸을 때는 늦은 가을이었다. 그럼에도 배낭과 옷깃을 잡아채는 나뭇가지를 달래느라 애를 먹었다. 지금은 이미 성급한 놈들은 열매까지 맺은 여름이다. 나무들은 더 자랐고 강해졌다. 등산 스틱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나뭇가지에 걸려 차라리 애물단지다. 헤엄치듯 두 팔로 나뭇가지를 헤칠 때마다 빗물이 파고든다. 가끔은 휘었던 가지가 되돌아오며 얼굴에 회초리를 때린다. 나무에 가려 랜턴 빛은 길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길은 마치 계곡처럼 빗물이 흐른다. 하늘의 비는 옷자락을 타고 바지를 적시고 등산화 속으로 빗물을 나른다. 빗물을 머금은 등산화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찌걱거린다.
땀과 빗물이 구별되지 않는다. 이미 몸은 흠뻑 젖었다. 기온은 낮지 않았지만 잠시 숨을 고르노라면 이내 몸에서 수증기가 오르고 떨려온다. 속도를 줄이고 계속 걷는다. 회색 바다에 잠긴 능선 길. 보이는 것이 적다. 참나무 숲길인가 싶으면 다시 키 큰 풀과 키 작은 관목이 어우러진 잡목지대다. 희미한 기억과 앞선 사람들이 매단 표지기와 안내판, 그리고 나침반이 길동무다. 10년 전에 비해 안내판이 많이 늘었다. 작은 자연석에 산 이름을 새겨놓은 이들의 수고가 고맙고 아름답다. 홀로 산을 오르다 보면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는 자신을 만나게 된다. 문답은 끊이지 않아 나는 또 다른 ‘나’를 만난다. 스스로에게 비친 나이기에 숨길 수 없고 결국 그 ‘나’가 해인에 비춰지는 내 모습이다.
자동차 소리가 들린다. 석교산을 지나 오래도록 내리막을 탔으니 질매재가 가깝다. 참나무 숲길을 지났다. 철책 뒤로 아스팔트가 어렴풋이 보인다. 동물을 생태통로로 안내하기 위해 세운 철책에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이들이 남긴 표지기 수십 개가 매달려 있었다. 세월이 가면 삭아 없어지는 천으로 만들던 표지기가 언제부턴가 썩지 않는 비닐재질로 변하기 시작했다. 오래도록 이름을 알리고 싶었나 보다. 나서 살다가 죽는 것은 모든 존재의 숙명이다. 바위조차도 비바람에 스러져간다. 꼭 필요한 곳이 아니라면 표지기를 매달지 말자. 매달더라도 이내 사라질 재질로 족하자. 그래야 다음 사람도 표지기 하나쯤 매달 수 있지 않을까?
질매재에는 동물 이동통로가 만들어졌고 소를 형상화한 표석도 세워져 있다. 동물 이동통로 덕분에 생긴 터널에 주저앉아 등산화 끈을 풀었다. ‘쪼르륵….’ 신발을 거꾸로 들자 물이 흐른다. 양말을 벗었다. 물에 불은 발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소에게 쟁기나 수레를 걸기 위해 소의 목에 얹는 멍에의 경상도 사투리가 질매다. 생김새가 멍에를 닮아 질매재로 불리던 고개가 언제부턴가 우두령으로 불리기도 한다. 표석에는 ‘우.두.령’ 글자가 또렷하다. 우두령은 질매재에서 남쪽으로 한참을 더 간 김천의 대덕면과 거창의 웅양면을 잇는 고개 이름이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 지형에서 고개를 이르는 이름은 -령, -재, -현, -고개, -치, -티 등으로 다양하다. 고개의 규모나 생김새, 생활권 등을 고려해 이름을 달리했던 지명은 일제가 현대적 지도를 만들면서 왜곡되기도 했지만 ‘세계 제일’ ‘최초’ 등으로 이름을 내려 하는 잘못된 인식도 왜곡에 한몫했다. -치, -현 뒤에 다시 ‘령’자를 붙이는 경우도 흔하다. 우두령이라는 이름도 그런 배경으로 변경됐을 것이다. 멍에가 소머리가 된 셈이다.
백두대간은 질매재를 지나 바람재∼황악산∼궤방령∼눌의산∼추풍령으로 이어지며 경상과 충청을 가른다. 목장이 자리잡고 있는 해발 953m 바람재는 40여 년 전 과거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미군들이 사용한다는 무선증폭 시설은 모르겠지만 사용하지 않는 지하벙커 시설은 내년이면 철거된다. 바람재 임도길에 지천으로 열린 산딸기를 한 웅큼 따 입에 넣었다. 새콤하면서 달다. 비를 머금은 중나리꽃도 바람재의 복원 소식을 들었는지 붉은 빛이 유난히 밝다. 후년이면 바람재 능선에서 참나무와 억새, 산철쭉 등을 만날 수 있게 될 것이다. 걷히는 구름 사이로 잠깐씩 능선을 보여주는 황악산은 여전해 보인다. 최고봉인 비로봉(1111m)을 중심으로 운수봉(740m)·백운봉(770m)과 형제봉(1035m)·신선봉(944m) 등을 양쪽으로 거느려 백두대간을 잇는 산세는 여전히 힘차다. ‘-악산’으로 불리는 산들은 대부분 바위로 이뤄지는 험산이다. 황악산은 육산이면서도 악자를 갖고 있다. 그래서 산 이름을 두고 황학산이다, 황악산이다 논란이 있었다. 산에 기댄 직지사는 ‘동국제일가람황악산’이라는 현판을 걸고 있다. 황색은 동양의 방위 개념인 오방에서 중심을 뜻한다. 황악산에 기댄 직지사는 일주문에 ‘동국제일가람황악산’을 새길 수 있었던 것도 우주의 중심이란 자부심을 품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10년 전 직지사 스님들은 머리띠를 둘렀었다. 일주문 코앞에 모텔이 세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모텔이 들어서겠다는 직지사 앞은 공원과 박물관, 문학관 등이 들어섰다. 공원의 몇몇 시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모텔에 비할 것은 아니다.
오르고 또 오르니 구름도 자고 가는 추풍령황악산을 벗어난 백두대간은 다시 고개를 낮춰 궤방령을 연다. “영동군 땅에 설치한 시설물을 철거하라.” 김천시가 세운 궤방령 표석 앞에 영동군 매곡면 이장단협의회 명의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김천시가 세운 궤방령 표석이 영동군 당에 설치됐다는 거다. 고개는 이편과 저편을 나누는 기준이 아니라 이편과 저편을 잇는 길이다. 오가는 이들을 위한 안내 표석이니 김천시라는 명의만 지우면 안 될 일일까?
추풍령을 향하는 백두대간의 마지막 여정. 눌의산을 오르는 길은 고통스럽다. 지친 탓보다는 다 올랐나 싶으면 다시 이어지는 오르막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올라선 눌의산에서 백두대간은 급격하게 고도를 낮춰 추풍령을 연다. 해발 232m. 추풍령에서 숫자는 의미가 없다. 그저 편편해 보이는 지형에서 마루금은 고속도로 지하로 이어져 철도를 무단 횡단해 추풍령 표석 앞에 도착한다. “구름도 자고 가는 바람도 쉬어 가는” 배호의 노래가 새겨져 있다. 배호가 노래한 추풍령은 눈을 감아야 보인다.
추풍령을 지나는 국도와 철도는 일제가 놓았다. 경부고속도로는 “박 대통령의 역사적 영단과 지휘 아래 2년5개월 만에 건설” 됐다. 철도와 국도는 착취하기 위해 열었다. 고속도로는 77명의 목숨을 앗아가며 세계 최단기간 건설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추풍령을 관통해 지나던 국도 4호선조차도 확장공사를 한다며 추풍령 표석 위로 고가도로를 짓고 마을을 지나쳐버린다. 길에서 소외된 마을은 쇠락하기 마련이다. 면소재지인 추풍령 마을이 오히려 10년 전보다 힘겨워 보이는 이유다. 길은 빨라졌지만 길가의 삶은 더욱 고단해졌다. 그 길은 누구를 위한 길일까?
서울 방향 추풍령휴게소에 세워진 경부고속도로건설기념탑에 새겨진 글에서 77명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오직 한 사람의 이름이 보일 뿐이다.
김천=글·사진 윤승일 기획위원 nagne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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