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아렌트와 토크빌을 읽었다 하는가〉
박홍규 지음, 글항아리 펴냄, 1만9800원
다작의 저술가인 법학자 박홍규 영남대 교수가 알렉시스 드 토크빌(1805~59)과 한나 아렌트(1906~75), 두 학자의 사상을 ‘자유와 자치의 민주주의’라는 관점에 따라 새롭게 해설한 책 를 펴냈다. 아렌트와 토크빌이 하나의 주제 아래 묶일 수 있는 것은 그들 사이에 내적 연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아렌트 자신이 토크빌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바도 있다. 그러나 국내 학계 동향을 보면 두 사람에 대한 관심에 큰 편차가 있다. 아렌트의 경우 최근 들어 저작들이 잇따라 번역되면서 ‘아렌트 르네상스’라 할 현상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토크빌에 대한 관심은 그리 크지 않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두 사람의 사상을 설명하는 데 동일한 분량을 할애하고 있지만, 특히 토크빌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아렌트에 비해 토크빌이 소홀히 다뤄지고 있다는 학계 현실을 고려한 것이기도 하지만, ‘자유와 자치의 민주주의’ 관점에서 볼 때 아렌트보다 토크빌이 훨씬 더 중요한 인물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토크빌이 를 출간한 것은 서른 살 때인 1835년이었지만, 그 책의 바탕이 된 경험은 스물여섯 살 때인 1831년의 미국 여행이었다. 귀족 출신의 판사였던 토크빌은 1830년 7월 혁명으로 들어선 프랑스의 새 왕정에 환멸을 느껴 ‘감옥 시찰’이라는 핑계를 대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아홉 달 동안 미국 전역을 돌며 이 신생 공화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를 세심하게 관찰했다. 그 결과가 인데, 여기서 토크빌의 강조점은 ‘미국’이 아니라 ‘민주주의’에 찍혀 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미국이란 나라가 실제의 미국 그 자체를 말한다기보다는 그의 관념과 소망이 투영된 ‘이상형’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토크빌의 민주주의론에서 특징적인 것은 그가 민주주의의 형식적 조건을 ‘평등’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상태의 전반적 평등’을 그대로 민주주의와 동일시하기도 한다. 이런 규정은 그가 민주주의의 반대말을 귀족주의라고 이해하는 것과 관련 있다. 이렇게 이해된 민주주의는 요즘으로 치면, 대중의 보통선거를 허용하는 형식적 민주주의와 다르지 않은데, 토크빌은 이런 민주주의가 자칫 잘못하면 ‘다수의 폭정’ ‘민주적 전제’로 타락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의 진정한 관심은 이런 평등 민주주의 혹은 형식적 민주주의를 제어하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할 요소를 찾아내는 데 있다. 그 요소란 ‘자유’다. 토크빌은 평등보다 자유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 민주주의 형식보다 내용에 더 주목했다는 이야기다. 이때 토크빌이 말하는 자유란 “신과 법을 빼고는 그 누구도 주인으로 섬기지 않고 거리낌 없이 말하고 행동하고 숨쉬는 기쁨”이다. 이렇게 이해된 ‘자유’가 자유방임주의나 시장자유주의 같은 부르주아 자유주의의 ‘자유’와 다름은 물론이다.
에서 토크빌은 ‘자치’와 ‘결사’와 ‘배심제’를 자유가 실행되고 실현될 근거로 제시했다. 중앙집권에 대항해 마을 자치를 실행하는 것, 국가의 일방적 지배에 맞서 정치적·사회적 결사를 행하는 것, 사법 독재를 막는 장치로 민중이 재판에 참여하는 배심제를 실시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타락을 막을 방어장치인 것이다. 지은이는 2008년의 촛불이 토크빌이 말한 그 직접민주주의의 한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토크빌은 에서 민주주의 교육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오늘날 사회를 지도하는 사람들에게 부과된 제1의 의무는 민주주의를 교육하고, 가능하다면 그 신앙적 믿음을 다시 일깨우고 … 민주주의 정치를 때와 장소에 적응시키고, 인간과 조건에 따라 수정하는 것이다. 새로운 세계에는 새로운 정치학이 필요하다.” 토크빌은 ‘지도자’들이 ‘대중’을 그렇게 교육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의 상황은 정반대인 듯하다. 대중이 ‘지도층’에게 민주주의를 가르치고 있으니 말이다.
고명섭 한겨레 책지성팀장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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