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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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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콘·콜라 준비 완료, 광고 볼 시간!


불황기에 전성기 맞은 극장 광고… ‘꼼짝없이’ 화면 향해 앉아 있는 20~30대 고객을 공략하라
등록 2009-01-22 10:40 수정 2020-05-03 04:25
광고 불황? 왜 이래, 아마추어같이!

광고는 당대의 가장 뜨거운 장소를 찾아다닌다. 어디에 광고가 몰리느냐는 어디에 사람들이 모이느냐를 반영한다. 그런 면에서 광고는 시대의 거울 같다. 시대가 바뀌면서 광고 현장도 변했다. 공중파 방송에 나오는 이들이 “본방 사수”를 외쳐야 할 만큼 공중파를 보는 사람은 빠르게 줄었다. 이제 사람들은 저녁이면 드라마를 보기 위해 일제히 텔레비전 앞에 앉지 않는다. 유선방송의 재방송으로 드라마를 보고, 인터넷으로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시청한다.
SK브로드밴드는 TV 광고의 틀을 유지하면서 극장에 맞는 아이콘과 카피로 극장 광고를 만들었다. TV 광고를 연상시키면서 새로운 내용을 더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냈다.

SK브로드밴드는 TV 광고의 틀을 유지하면서 극장에 맞는 아이콘과 카피로 극장 광고를 만들었다. TV 광고를 연상시키면서 새로운 내용을 더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냈다.



극장도 이제 단순히 영화만 보는 곳이 아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 관객은 먼저 광고를 보아야 한다. 극장 광고는 너무 많다고 관객이 짜증을 낼 만큼 늘었다. 방송 광고는 불황이라고 아우성인데, 극장 광고는 오히려 호황이다. 지금 극장은 매력적인 광고 매체다. 유행을 선도하고 구매력도 왕성한 20~30대가 모이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버전의 극장 광고는 방송 광고와 또 다른 매력으로 소비자를 유혹한다. 방송 광고도 더 이상 전파에만 의지하지 않는다. TV의 15초짜리 광고는 ‘맛보기’로 보여주고, 인터넷에서 풀버전을 확인하라는 광고가 늘었다. 이렇게 불황의 겨울이 한창이지만, 그래도 광고는 진화한다.

팝콘이 터진다. 오징어가 날아다니고, 필름이 흘러내린다. 앙증맞은 캐릭터가 넘쳐나는 애니메이션. 여기에 노래가 나온다. “팝콘, 콜라, 오징어 모두 준비 완료~ 자 이제 불 꺼진다 애인 손 잡자~ 솔로 부대도 당당해지자~.” 그렇다, 여기는 극장이다. 마지막 마무리는 익숙한 멜로디. “시 더 언신(See The Unseen) SK브로드밴드~.” 그렇다, 이것은 극장 광고다. 이제 광고가 영화의 시작을 알려주는 시대다.

‘15초짜릴 30초로 늘리기’ 식은 옛말

말하지 않아도 안다. SK브로드밴드 극장 광고는 여성의 경쾌한 노래로 익숙한 TV 광고를 활용한 것이다. 딱 들으면 알지만, TV 광고와 같지는 않다. TV 광고의 콘셉트와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화면의 아이콘을 극장에 맞는 팝콘·오징어 등으로 바꾸고, 가사도 극장의 상황에 맞게 고쳤다. 이제 TV 광고 15초짜리를 30초로 늘려서 극장에 내보내는 시대는 지났다. 이처럼 ‘극장용’으로 따로 제작된 광고가 늘고 있다. SK브로드밴드 강승우 차장은 “광고 제작 단계부터 극장 광고를 따로 기획해 만들었다”며 “관객의 입장에서 영화관에 앉아 광고를 본다면 어떤 것이 좋을까를 고민했다”고 말했다. 극장에 들어온 이상 꼼짝없이 객석에 앉아 볼 수밖에 없는 극장 광고는 몰입도가 높아 효과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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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 광고 속으로. 이번엔 윤은혜 ‘언니’ 옆에 여자 아니 남자가 앉아 있다. 영화관의 객석처럼 맞붙은 의자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 양배추 머리에 뿔테 안경을 낀, 배 나온 남장 여자가 ‘진상’을 떤다. 옆의 은혜씨 쪽으로 힘껏 팔을 휘두르고, 슬쩍 손을 만지려 든다. 극장의 어둠 속에서 여성들이 흔히 당할 법한 ‘추행’이다. 그러나 유연한 은혜씨, 유려한 웨이브로 스킨십을 피한다. “퍼억~.” 오히려 추행 미수범을 치는 은혜씨. 그리고 들리는 여성의 목소리, “오~ 효과 만점!” 이어서 은혜씨는 유연한 몸놀림으로 비비안 웨이브핏 브라를 광고한다. 공중파 광고(후반부)에 극장용 광고(전반부)를 더해 만든 것이다. 비비안 홍보실 박종현 실장은 “극장의 주 관객층인 20~30대 여성과 비비안 타깃층이 정확히 겹친다”며 “연령과 지역을 특화해 타깃에 집중하는 최근의 광고 경향에 극장이 딱 맞는다”고 말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비용도 고려했다. 박 실장은 “TV 광고에 견줘 부담이 적은 극장 광고를 계속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렇게 20~30대가 주요 타깃인 제품에 극장 광고는 효과적인 매체다.

이렇게 타깃이 정확하고 몰입도가 높아 광고주의 선호도가 높아졌다. 실제 극장 광고 규모는 2005년 500억원, 2006년 710억원, 2007년 840억원, 2008년 900억원(추정치)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08년에만 7% 성장이 예상돼 전체 광고 성장률에 견줘 상당히 높은 편이다(표 참고). LG텔레콤 오주상사 광고를 만든 HS애드 공진성 팀장은 “케이블·위성 방송의 인기로 젊은 층이 갈수록 공중파 방송을 적게 봐서 이들을 잡으려면 극장 광고 등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극장 광고는 현장에서 관객의 반응을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고 말했다. 갈수록 공중파 방송은 광고가 줄어 고전하는데, 극장 광고는 오히려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인 것이다. 극장 광고는 특히 설이나 방학 같은 연휴에 집중된다. 단순히 TV 광고를 변형하는 단계를 넘어 극장 광고를 따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 SK텔레콤의 ‘생각대로T’ 캠페인은 “생각대로 하면 되고~”로 끝나는 광고 음악은 살리면서 극장 광고는 따로 찍었다. 생각대로T 캠페인의 모델인 최다니엘이 지휘자로 나오는 광고다. “극장에 오늘 영화 또 보는 양다리 처녀들도~”라고 특유의 선율에 가사를 얹은 노래가 나오면 객석의 ‘양다리 처녀들’이 의자 아래로 몸을 숨기는 내용인데, 역시나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에티켓, 상영 시작 알림, 예고… 경계 없어

극장 광고의 또 다른 형태는 ‘에티켓 광고’다. 윤은혜가 등장하는 비비안 광고도 극장 에티켓을 우회적으로 보여주지만, 삼성 카메라 VLUU는 영화 관람시 지켜야 할 에티켓을 직접 환기시킨다. 하이힐을 신은 여성이 길을 가다가 갑자기 멈춰서 길가에 버려진 캔을 발로 찬다. 그렇게 찬 캔이 뜻밖에 멀리 떨어진 휴지통에 정확히 들어간다. 원래 TV 광고에 나왔던 장면인데, TV에서는 동영상과 정지 화면이 함께 되는 기능을 알리는 것으로 쓰였다. 하지만 극장 광고에선 같은 화면에 다른 카피가 나온다.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버려주세요.” 이렇게 익히 알려진 광고가 스스로를 패러디해 또 다른 웃음을 자아내는 방식이다. 이 광고는 삼성 VLUU가 극장 CGV와 함께 제공하는 광고이자 안내다. 이런 에티켓 광고는 이제 흔해져 영화 상영을 알리는 알람 구실을 할 만큼 익숙하다.

광고시장 규모

광고시장 규모

아예 영화와 광고의 경계를 흔드는 경우도 있다. 영화 예고편을 이용한 극장 광고다. 팬택 휴대전화 ‘스카이’(SKY)는 지난해 등 4편의 영화 예고편을 활용해 극장 광고를 만들었다. 먼저 ‘본 광고는 영화 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스카이의 광고입니다’라는 자막이 나온다. 그리고 강철중(설경구)이 “이 씨발놈아 뒤진다!”라고 욕하는 장면이 나오면 “욕도 아니다!”라는 카피가 얹히고, 다시 강철중이 사직서를 내미는 장면이 나오면 “배짱도 아니다!”라는 문구가 따라온다. 화면이 전환돼 이번엔 유명한 면도기, 질레트 광고를 패러디한 장면이 나온다. ‘후진’ 면도기로 듬성듬성 면도되는 장면을 보여주고 “남자의 카리스마는 수염, 정말 대충대충 깎이는 스카이 카리스마 면도기”라는 카피를 더한다. 남자의 카리스마는 욕도, 배짱도 아니고 수염이라는 말씀. 그리고 마지막에 휴대전화 ‘스카이 네온사인’이 뜨면서 “자매품 스카이 네온사인”이라는 말이 나오고, ‘스카이는 대충대충 만들지 않습니다’라는 자막으로 마무리된다. 이렇게 극장이란 특성을 살리면서 지난해 하반기 스카이가 벌였던 ‘자매품 시리즈’의 콘셉트도 담았다.

화장실 벽까지 극장 곳곳이 광고터

이렇게 스카이 광고는 영화 예고편에 광고 패러디를 더해 ‘독특함’ ‘엉뚱함’이란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했다. 스카이 광고를 만든 ‘이노션’ 김재광 차장은 “어떤 극장 광고를 만들까 고민하다 영화관에 오는 사람이면 영화를 좋아할 테니 예고편을 이용해 광고를 만들면 주목도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예고편을 이용한 광고를 만드는 고충도 있다. 예고편은 영화 개봉 한 달 전쯤에 나온다. 이것을 활용해 광고를 만들려면 시간에 쫓길 수밖에 없다. 더구나 영화 예고편 10분의 영상만 활용해 광고를 만들어야 하는 제약도 있다. 여기에 제품과 영화의 궁합이 잘 맞는지뿐만 아니라 영화의 흥행성도 따져야 한다. 영화가 흥행이 안 되면 광고도 금방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영화사라는 또 다른 광고주 하나가 생기는 난관도 있다. 김재광 차장은 “광고를 만들고 나서도 영화사나 배우가 영화의 홍보 방향과 맞지 않는다고 반대해 내보내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고 전했다. 이렇게 영화의 예고편을 활용한 광고 비용은 기업과 영화사가 함께 부담한다. 제품을 광고하는 기업이 광고 제작비와 극장 시간을 빌리는 매체비를 지불하는 대신에 영화사는 배우의 초상권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비용을 공동 부담한다. 영화에 나온 장면을 광고에 쓰려면 초상권 문제 등이 생기는 것이다. 이렇게 제품 광고와 영화 흥행에 일석이조 시너지 효과를 내는 극장 광고는 갈수록 확산되는 추세다. 현대카드도 지난가을에 영화 을 활용한 극장 광고를 했다. 아예 한국도로공사의 하이패스 광고는 할리우드 재난영화의 느낌을 살리는 극장 광고를 만들었다.

영화냐 광고냐, 경계가 모호한 광고들이 나타났다. 스카이는 영화의 예고편을 재편집한 영상에 광고 메시지를 결합하는 새로운 극장 광고를 선보였다.

영화냐 광고냐, 경계가 모호한 광고들이 나타났다. 스카이는 영화의 예고편을 재편집한 영상에 광고 메시지를 결합하는 새로운 극장 광고를 선보였다.

극장 광고는 방송 광고가 제한된 기업에 안성맞춤이다. 공중파는 물론 유선방송까지 광고가 제한된 경마장을 운영하는 한국마사회는 2008년 하반기에만 4편의 극장 광고를 만들어 25억원의 광고비를 썼다. 마사회는 2007년 홍보 계획을 세우면서 극장 광고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래서 2007~2008년 인쇄 광고를 빼면 극장 광고에만 집중했다. 극장은 마사회에도 매력적인 장소였기 때문이다. 마사회 홍보실 홍용현 과장은 “경마장 이미지가 부정적인데 젊은 층에서 이미지 변화가 빨랐다”며 “관객이 젊은 극장이 광고하기에 적재적소였다”고 말했다. 젊은이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광고도 재미와 반전을 주는 내용으로 이어갔다.

한편 극장 광고가 길어지면서 관객의 항의가 이어진다. 갈수록 광고가 늘어나 상영 예정시간이 10분 이상 지난 다음에 영화를 시작하는 경우도 적잖은 탓이다. 그래서 왜 강제로 광고를 보아야 하느냐, 불만을 토로하는 시민도 많다. CGV 홍보실 윤여진씨는 “관객의 불만을 모르지 않는다”며 “광고 시간 10분을 마지노선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스크린에서 나오는 극장 광고뿐 아니라 극장 공간을 활용한 광고도 갈수록 늘고 있다. 강변CGV에는 지난 11월 ‘생각대로T 극장’을 선보였고, 지난해 용산CGV에는 면도기 ‘질레트 퓨전관’이 있었다. ‘생각대로T 극장’은 강변CGV 매표소부터 로비, 상영관 통로까지 ‘생각대로 T’의 이미지로 까는 것이다. 용산CGV 화장실은 내부 벽면까지 소주 광고로 도배가 됐고, 강변CGV 화장실엔 광고가 나오는 모니터가 설치됐다. 불황기에 비용은 적게 들고, 타깃은 확실한 극장 광고를 광고주들이 선호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극장 입장에서 불황을 타개하기 위한 자구책이다. 이렇게 극장은 어느새 광고의 중심에 서 있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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