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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미국이 만든 동북아의 체스판

등록 2008-08-22 00:00 수정 2020-05-03 04:25

미국과의 일체화에 골몰하는 일본 우파와 부화뇌동하는 한국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한국이 일본에 선전포고를 한다. 일본의 독도(다케시마) 영유 주장을 영토 침략으로 간주한 것이다. 그리하여 두 나라가 전쟁에 돌입한다. 터무니없는 상상일까?”

‘머리말’부터 도발이다. 독도 영유권을 둘러싼 한-일 간의 마찰을 곧장 전쟁 시나리오로까지 몰아간다. 그러곤 안면을 바꿔, 따지고 들기 시작한다. 꼼꼼한 셈법과 치밀한 논리로 네 편과 내 편을 가르고, 동북아 정세를 내리훑는다. 문제의 ‘본질’을 향해 거침없이 내달린다. (한승동 지음, 교양인 펴냄, 1만6천원)은 제목만큼이나 ‘과격’한 책이다.

독도가 한-일 전쟁으로 이어진다면?

“제한전이든 전면전이든 전쟁이 시작되면 한국·일본과 각각 동맹관계를 맺고 두 나라 모두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는 미국은 어떻게 나올까? 이 점이 중요하다. 미국이야말로 한반도 분단까지 포함해서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동아시아 질서를 만들고 유지해온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독도 문제가 한·일 양국 간의 영토 분쟁 차원을 단숨에 뛰어넘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 바로 이것, 즉 미국이 짜놓고 관리해 온 2차 세계대전 이후 동아시아 안보 질서가 냉전 붕괴와 거대 중국의 등장 등으로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1986년 언론계에 입문한 지은이(52)는 22년여 기자 생활 대부분을 “우리와 미국·일본 간의 신산한 관계, 분명 악연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질긴 인연”에 대한 취재와 집필에 매달려왔다. 그러니, 이를테면 독도 영유권 문제를 한-일 간의 문제가 아닌, 미국의 동북아 정책으로 확장해 바라보는 것은 오랜 세월 쌓인 ‘공력’의 자연스런 발현일 터다. 애초 “일제가 패망하면서 당연히 조선 영토로 복귀”했던 독도는 “중국 대륙을 미국의 기대와는 달리 장제스가 아니라 마오쩌둥의 공산 세력이 장악”하면서 그 지위가 변하기 시작했다고 지은이는 설명한다. “냉전 전략상 그렇게 하는 것이 미국 이익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일본 점령군 총사령부 문서에도 한국령으로 표기됐던 독도가 1949년 12월29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초안에서 일본 영토로 사실상 둔갑한 것은… 미국의 ‘일본 살리기’ 전략이라는 맥락 위에서 파악해야 한다. …일본 쪽의 독도 영유권 공식화에 발맞춘 미국 정부의 독도 지위 표기 변경은 일본으로 경사된 미국 위정자들의 동아시아관이 반세기 전, 1세기 전과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게 미국의 본색이다.”

‘아이 러브 부시’에 대한 경고

그렇게 지은이는 책 전반에 걸쳐 미국이 만들어낸 동북아의 ‘거대한 체스판’을 두 눈 부릅뜨고 들여다본다. ‘탈아입미’, 곧 미국과의 일체화에 골몰하는 일본 우파의 어리석음을 질타한다. ‘미사일방어’란 신기루를 좇는 미·일과 그에 부화뇌동하는 한국의 상황을 되돌아보며, “군사동맹은 항상 안전 보장을 이유로 결성되지만 실제 결과는 그 반대”였음을 기억해낸다. 역사를 반추해 오늘의 교훈으로 삼지 못한 채, 한-미 동맹에 ‘올인’하는 한국의 우파를 바라보며 깊은 탄식을 내뱉는다. “정말 미국 덕에 한민족은 행복한가?”라고 되묻는다.

“기회는 강자들의 속내와 장단점을 살피고 틈새를 노리며, 때론 이의 제기하고 반격하면서 냉정하게 계산하는 자에게 오는 법이다. 마냥 대국 만세 부르며 따라가기만 하는 자에게 오지 않는다. 만세만 부르는 자는 멍청하거나, 기존 질서나 체제 유지가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치고 있는 자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의 최근 방한길에 성조기와 ‘아이 러브 부시’라 적은 펼침막을 흔들며 열광했던 이들은 곱씹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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