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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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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다, 떠나자

등록 2008-07-04 00:00 수정 2020-05-03 04:25

여행전문가가 권하는 비와 어울리는 곳… 보길도 윤선도 유적지, 순천 선암사 등 비 오면 더 아름다운 곳

▣ 김경욱 기자dash@hani.co.kr

대청마루에 누워 한옥 처마 밑으로 시원하게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아삭아삭 수박을 씹으며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 스르르 잠이 들면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앞뒤로 시원하게 뚫린 대청마루는 주거 공간이 가질 수 있는 개방성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에 비해 딱딱한 콘크리트 벽과 두꺼운 유리창으로 둘러싸인 현대적 주거 공간은 폐쇄적이다. 변기가 놓인 곳 위에 다른 집의 변기가 놓여 있고 거실 위에 다른 집의 거실이 있는 아파트는 최소 면적으로 최대 효율을 실현하는 현대식 주거 형태의 대명사다. 나의 바닥이 남의 천장이고, 남의 바닥이 곧 나의 천장이 되는 구조는 효율성을 극대화한 결과다. 한정된 공간을 조금이라도 넓히기 위해 노력하고 방음에 신경쓰다 보니 비의 정취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비의 정취를 느끼러 도시를 벗어나 어디론가 떠나볼까. 비가 오면 여행을 떠나는 게 부담스럽다고 느끼는 이들이 많지만, 오히려 비가 올 때 더욱더 여행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

한국여행작가협회의 양영훈 회장은 비가 올 때 운치 있는 여행지로 전남 완도군 보길도 부용동의 윤선도 유적지를 추천한다. 보길도의 대표적 유적지는 십이정각, 세연정, 회수담. 그중에서도 양 회장은 세연정을 꼽는다. “세연정은 윤선도가 풍류를 즐긴 정자예요. 이곳에서 풍류를 노래한 ‘어부사시사’를 썼으니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습니까. 정자 주변으로 세연지와 회수담 두 연못이 있고, 멀리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어요. 비 오는 날 정자에 앉아 있으면 연못에서는 물안개가 피고, 마치 신선이 된 기분이 들죠.”

그는 전남 담양의 소쇄원과 순천의 선암사도 빼놓을 수 없는 곳이라고 덧붙인다. 소쇄원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정원으로, 비 오는 날 입구 쪽의 대밭을 울리는 바람 소리와 대 잎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좋다. 선암사는 여느 사찰과 달리 중축을 하거나 내부를 현대식 건축물로 꾸미지 않아 전통적인 산사 분위기를 느끼게 해준다. 비가 오면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해져 고즈넉한 분위기를 한껏 넉넉하게 즐길 수 있다.

의 저자 최정규(38)씨는 경북 영주시 봉화군의 청량사를 권한다. “청량사에는 비가 오면 안개가 잘 피어올라요.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안개가 산사에 자욱이 깔리면 그 분위기에 취해 몽롱해져요. 마치 꿈속을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죠.” 청량사가 위치한 자리는 풍수지리에 문외한인 사람이 봐도 명당임을 알 수 있다. 청량사에서 내려다보면 산 굽이굽이가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비가 오면 낮은 구름 사이로 온 산봉우리에 비가 내리는 장관이 눈앞에 펼쳐진다. 청량사 입구에는 사찰에서 운영하는 카페가 있다. 사방이 통유리로 제작돼 있어 비 내리는 풍경을 실내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며 편안히 느낄 수도 있다. 청량사에서 40분 안팎의 거리에 위치한 봉화 금강소나무숲도 또 하나의 볼거리. 무성한 소나무 숲이 빗방울을 막아 마치 다른 세상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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