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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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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주는 내가 본다

등록 2008-04-11 00:00 수정 2020-05-03 04:25

현대인의 불안을 타고 다시 유행하는 사주명리와 점… 보러 가던 시대에서 배워서 해보는 시대로

인생 내비게이션을 켜라

신은 심심할까? 사람들은 말한다.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니, 무엇에서 재미를 찾을 수 있겠냐고. 그러나 혹시 아는가. 모든 것을 조감하는 재미가 얼마나 쏠쏠한지. 신만 그 재미를 고이 누리려고 인간에게 예지의 능력을 내려주지 않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바야흐로 혼돈을 넘어 불안의 시대다.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른 세상에서 인간은 신과 달리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세상의 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헤매는지도 모른다. 최근 들어 인생이란 길 위에서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스스로 가늠해보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사주와 점을 배우면서 말이다. 몇m 앞에 과속 단속 카메라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내비게이션을 차에 달고 다니듯, 이들은 이제 ‘인생의 내비게이션’을 준비하고 있다.

▣ 김경욱 기자dash@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예전엔 사주에 도화살(桃花煞)이 있으면 남자는 난봉꾼, 여자는 기생이 될 팔자라고 쳤어요. 그런데 요즘은 그렇지 않아요. 산부인과 의사나 연예인·아나운서들 사주를 봐도 도화살이 많죠. 사주도 시대에 따라 해석이 달라져야 해요.”

지난 3월24일 저녁 7시 서울 동국대 사회교육원 207호 강의실. 동양철학을 전공한 이 대학 김동완 교수의 사주 원리 강의가 한창이다. 학생 70여 명이 빼곡히 들어찬 강의실은 빈자리를 찾기 어렵다. 수강생들은 교재와 ‘만세력’(앞으로 100년 동안의 천문과 절기를 헤아려 밝힌 책)을 펴놓고 김 교수의 설명에 귀를 세우고 있다. 강의를 녹음하는 이들도 보인다. 강의는 3시간짜리. 김 교수는 ‘역학’과 ‘음양’에 대해 1시간여 동안 설명하고, 나머지 2시간은 실제 사주를 뽑아보며 수업을 진행한다. 수강생들은 20대 학생부터 70대 노인까지 젊고 나이들고가 없다.

의사도 신기해하는 ‘육효진단’

3월2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 청학당한의원. 백발의 원로 역술인 조규식(94)씨와 청년 수강생들이 ‘육효’ 수업을 진행 중이다. 환자들의 괘를 뽑아본 노장이 정정한 목소리로 쉴 사이 없이 육효 풀이를 이어나간다. “이 사람의 괘를 보니 하초(배꼽 아래)가 냉하고, 간신(간과 신장)이 허하구만….” 공중보건의인 수강생 하민석(28)씨는 노스승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수첩에 꼼꼼히 적는다. 충북 진천 덕산보건지소에서 일하는 하씨는 수업에 참여하기 위해 금요일마다 일을 마치기 무섭게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싣는다. 이날 조씨가 뽑은 괘는 일주일 전 하씨를 찾아온 34살 여성 환자의 것. 하씨에게 “손이 자주 붓고 저리다”고 했던 환자다. 젊은 사람이 손이 붓고 저린 것은 흔한 증상은 아니다. 괘와 증상의 상관관계에 대한 조씨의 답은 명쾌하다. “간과 신장이 나쁘면 몸속의 노폐물이 몸 밖으로 잘 빠지지 않아 손이 붓고 저리게 된다.” 하씨는 “환자를 직접 보지 않고 증상도 모른 상태에서 이런 진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이 바로 육효의 매력”이라며 “육효를 더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주역 공부에 몰입할 생각”이라고 말한다.

이제 사주명리와 점을 보는 시대에서 직접 배우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장철학원 최장재희 원장은 “최근에는 단순히 사주나 점만 보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실력이 좋다고 입소문난 역술인들에게 직접 역술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다”고 전했다. 서울에만 해도 사주명리와 점을 강의하는 문화센터와 대학 사회교육원이 100곳을 넘고 전국적으로는 300여 개 강좌에서 어림잡아 8천~1만여 명이 수업을 받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동국대 사회교육원 교양교육 과정에는 명리학·풍수의 이름으로 모두 17개 강좌가 개설돼 있다. 수강생들은 저녁 7시에 시작하는 야간반에 몰린다. 김동완 교수 강의의 수강생들은 전직 대기업 사장, 퇴직 교사, 미용실 원장, 직장인, 주부 등으로 직업도 다양했다. 명리학에 빠져든 사연도 갖가지다.

신영진(29)씨는 지난 3월1일 ‘인간관계에 치여’ 직장을 그만둔 뒤 사주 배우기에 빠졌다고 한다. 신씨는 2002년부터 드라마 외주 제작사에서 일해온 방송제작자 출신. 지난해 문화방송 드라마 의 조연출을 맡았고, 최근 막을 내린 드라마 제작에도 참여했다. 그러나 방송 일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과 다투는 일이 잦았다. 촬영 일정을 잡고 현장을 섭외하는 와중에서 스태프들과 언성을 높이고 심지어 몸싸움까지 벌이기도 했다.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는 사람들이 있고, 이곳저곳에서 자신을 험담하는 말도 들려왔다. 제작 과정에서도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하루하루 주변 사람들 얼굴을 마주하기가 힘들었다. 결국 사직서를 냈다. 직접 드라마를 만들어보겠다는 꿈 하나로 달려온 6년을 접은 것이다.

힘든 일 털어놓는 손님에게 조언해주고파

그때 친구가 점을 한번 보자고 했다. 뭘 그런 걸 보냐고 통박을 줘도 소용없었다. 친구 손에 이끌려 간 점집에서 사주를 적어 냈다. 역술가가 보고는 대뜸 “20대 후반에 구설수가 끼어 있다”고 했다. 구설수는 남에게서 헐뜯거나 시비하는 말을 듣게 될 신수라고 했다. 그동안 실타래처럼 엉켜버린 직장생활이 떠올랐다. “조금만 일찍 알았다면…” 후회도 들었다. 신씨는 곧장 서점으로 달려가 주역과 육효, 사주명리에 대한 책을 사서 읽었다고 한다. 스스로 깨우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책만으로는 이해하는 데 한계를 느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백화점과 구청의 문화센터, 대학 사회교육원 등에 관련 강좌가 많았다. 그는 당장 동국대 사회교육원 강의를 신청했다. “인생이라는 큰 틀에서 내가 지금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이 밖에 동국대 사회교육원 강의에는 이제 막 태어난 손자의 사주를 직접 봐주기 위해 강의를 신청한 할아버지가 있는가 하면, 회사 사장이 같이 가자고 해서 마지못해 따라왔다가 재미를 붙인 직장인, 사주를 볼 때마다 풀이가 다르게 나와 직접 사주 풀이에 뛰어든 사람도 있다. 서울 명륜동에서 미용실을 운영 중인 박선미(39)씨는 가게 손님들에게 좋은 인생 조언자가 되고 싶어 참여했다고 한다. “머리 하러 온 손님들이 유쾌한 이야기보다는 대부분 어렵고 힘든 일들을 털어놓죠. 평소 사주와 점 보는 걸 좋아하는데도, 그럴 때 손님들한테 많은 이야기를 못해주는 자신이 답답했어요.” 그는 “사주나 점 보러 가서 어려움 당하는 이야기를 꺼내면 뭔가 도움되는 말을 해주듯, 저도 점을 배워서 조금이라도 남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개별 강의나 일대일 과외 선호

낮 시간에는 야간반의 절반인 35명 정도가 강의를 듣는다. 대부분 주부들이다. 오후 3시 강좌를 듣는 주부 이희숙(51)씨는 경기 안산에 산다. 남편이 출근한 뒤 집안일을 끝내놓고 학교로 나온다. 그는 “딸 다 키워 대학에 보내고 난 뒤부터 여가 시간이 많이 생겼다”며 “그 시간에 평소 관심 있던 명리학을 공부해왔다”고 했다. 가족들 반응이 어떠냐고 묻자 “딸이 ‘시간 나면 화투 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시간에 공부를 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하더라”며 “딸과 남편이 가끔 사주를 봐달라고 한다”고 웃었다.

역술을 배우려는 이들은 공개된 배움터로만 몰리지는 않는다. 역술인들의 골방에서 개별적으로 진행하는 강의나 일대일 과외도 성행하고 있다. 한 역술인은 “역술을 배우려는 사람 중에는 공부를 한 사람도 있고 처음 시작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일대일 과외를 선호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은 최근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는 게 역술인들의 말이다.

동국대 김동완 교수는 최근 휴대전화를 하나 더 만들었다. 새 휴대전화 번호는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에게만 알렸다. 3월 강의를 시작하면서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전화에 시달려야 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알았는지, 전화를 걸어 “과외를 받고 싶다” “사주·주역 동아리를 만들려는 대학생들인데 도움을 달라” “점 좀 봐달라” 등등의 부탁이 쏟아져 들어온다고 한다. 그는 “최근 사주카페와 타로카드점, 포장마차 점집 등이 늘면서 젊은 층의 관심이 유난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바야흐로 혼돈의 시대를 넘어 불안의 시대다. 물가는 치솟고 삶은 늘 불안정하다. 초등학생 살해 사건과 납치 미수 사건이 학부모들을 긴장시키고, “손이 가요 손이 가”라고 노래를 불렀던 ‘국민 안주’에서는 생쥐 머리가 나와 “손이 안 가요, 손이 안 가”라고 노래라도 불러야 할 판이다. 골치 아픈 시대를 명쾌하게 설명할 방도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성태용 건국대 철학과 교수는 “세상이 복잡하고 불안해지면 한 치 앞이라도 먼저 알고 싶은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며 “이런 욕구를 충족시킬 평생교육원 등이 많이 생겨나면서 사주나 점 강습 바람이 새삼 불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변화하는 세상을 설명할 방법을 원해왔고, 지금도 필요로 한다. 이는 신이 아닌 사람의 문제다.



여러 가지 괘 내는 법

방문시간, 옷차림도 괘가 된다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점 보러 ‘무릎팍 도사’ 집에 가도 될까? 굳이 간다면 말리지야 않겠지만 무릎팍 도사는 점을 치지 않는다. 예전 장두석이 부채를 잡았던 ‘부채도사’는 부채를 잡고 몸을 흔들거리다가 넘어지면서, 그 방향으로 운을 판별했다. 부채 방향으로 일종의 ‘작괘’(괘를 뽑는 것)를 한다는 말이다. 이에 반해 ‘무릎팍 도사’는 무릎으로도 무엇으로도 작괘를 하지 않는다.
점을 치는 바탕이 되는 괘는 고대 중국의 주나라 때 편찬된 에 뿌리를 둔다. 에는 기본 8괘가 있다. 8개의 괘 중 두 개를 뽑아(두 번째 괘는 첫 번째 뽑은 괘를 다시 집어넣은 뒤 뽑음) 그것을 위아래로 둔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괘의 조합은 모두 64가지다. 둘 중 위에 놓인 괘를 ‘상괘’라 하고 아래에 놓인 괘를 ‘하괘’라 한다. 상괘는 하늘을, 하괘는 땅을 의미한다. 괘에 있는 각각의 줄을 ‘효’라고 한다. 한 괘에 세 개의 줄이 있으므로 모두 여섯 개의 효를 가지고 있다. ‘육효’는 여기서 나온다. 이 육효를 과 을 참조해 해석한다.
신점을 치는 무당을 제외하고 역술가들이 일반적으로 점 칠 때 쓰는 방법이 육효다. 신산이수역학원의 김용연 원장은 “사주는 한 개인의 인생이라는 큰 틀을 통괄해서 보는 방법”이라며 “중요한 일이 닥쳐 어떤 선택을 해야 할 때나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사안 등을 볼 때는 사주보다 점을 쳐야 하는데, 그 방법이 바로 육효”라고 설명한다. 사주명리학은 생년·월·일·시라는 네 가지 시간을 통해 일생의 길흉화복을 판단하는 체계로, 사주를 풀이해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 오행의 기운을 알아 낸 뒤 이를 이용해 그 사람의 성정과 명운을 진단한다. 그러나 사주만으로는 구체적 사안에 대한 판단은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괘를 뽑는 방법은 역술가마다 다르다. 가장 일반적인 것이 산대를 쓰는 방법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역술가들이 대나무통에 가늘고 긴 나무 작대기를 넣고 흔드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그 작대기가 산대다. 보통 대나무를 가늘고 길게 깎은 뒤 한쪽 끝에 괘를 새겨넣는다. 산대를 넣는 통을 ‘산통’이라고 한다. 산통을 깨면 괘를 흩트려뜨릴 테니, ‘산통을 깨다’는 ‘일을 그르치게 하다’는 뜻이 된다.
김용연 원장은 산대 외에도 점을 보러 온 사람의 이름이나 그가 입고 온 옷으로 괘를 뽑는다고 한다. 이름으로 작괘를 할 때는 그 사람의 나이를 상괘로 삼고, 이름의 한자 획수를 하괘로 삼는다. 옷으로 작괘를 할 때는 옷의 색깔을 보고 판단한다. 그때 흰색은 금(金), 검정은 수(水), 붉은색은 화(火), 푸른색은 목(木), 노란색은 토(土)의 기운을 나타낸다.
청학당한의원의 조규식 원장은 손님이 자신을 방문한 시간으로 괘를 뽑는다. 하루를 나누는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시의 12시로 괘를 뽑는다. 그 밖에도 화투나 트럼프로 작괘를 하기도 한다. 카드점은 트럼프 카드 중 여섯 장을 내어 육효를 삼는다(홀수는 양, 짝수는 음으로 친다). 장철학원의 최장재희 원장은 “각자 적중률이 높은 방법으로 작괘를 한다. 여러 방법 중 어느 것이 더 좋고 나쁘다고 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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