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 가요 순위 프로그램 부활시키는 건 좋으나 공정성은 어떻게 보장하려나</font>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어릴 때 가장 큰 낙은 을 보는 거였다. 한주 한주 어떤 노래가 1위를 하는지는 별다른 놀거리가 없던 당시의 초·중·고딩에게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조용필은 노래만 발표했다 하면 5주간 1위를 차지한 가수에게 주는 골든컵을 받아갔고, 이선희나 전영록이 그 뒤를 잇곤 했다. 더욱 놀거리가 없던 군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엄정화가 1위를 차지하면 화장실에 앉아 있던 고참들도 달려와 그녀의 섹시한 자태에 황홀한 눈빛을 짓곤 했다. 방송이 끝나면 쫄따구들은 그날의 순위를 외웠다가 고참들이 “오늘 4위”라고 말하면 4위를 차지한 노래를 불러야 했다. 당시는 댄스음악의 전성기, 따라서 춤까지 추면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내가 ‘가요톱10 서열’에서 벗어나면서 마지막으로 불렀던 노래가 지누션의 였다나 어쨌다나.
기획사들의 파워 게임 될까
지상파 가요 프로그램의 순위는 2001년 한국방송을 시작으로, 2005년 문화방송의 이 순위제를 폐지하면서 사라졌다. 2000년대 들어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순위 프로그램 폐지 운동이 벌어졌고 계속 공정성 시비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한데 지난해부터 순위 프로그램 부활 이야기가 슬슬 흘러나오더니, 결국 살아났다. 으로 순위 프로그램의 대명사적 존재를 차지했던 한국방송이 먼저 터뜨렸다. 한국방송은 1월11일 오후 6시에 방송된 에 ‘K-차트’라는 걸 도입했다. 1위부터 50위까지, 한 주간의 가요 인기 순위가 줄을 섰다. 의 시청률 변화에 따라 문화방송의 과 SBS의 〈SBS 인기가요〉도 순위제를 도입할 건 분명하다. 명분은 가요계 활성화지만 실상은 음악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워낙 바닥을 기고 있는 탓으로 보인다.
순위 프로그램, 나쁘지 않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건 싸움 구경이다. 누가 일등을 먹을지 지켜보는 것처럼 쏠쏠한 게 어딨나. 그래서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신인들이 경쟁하는 대학가요제가 아직까지 관심의 대상이 되는 거다. 영화 저널들이 본격적으로 박스 오피스를 보도하기 시작하면서, 영화 흥행 순위는 이목을 끄는 뉴스거리가 됐다. 그런 맥락에서 매번 비슷비슷한 가수들이 나와서 비슷비슷한 노래를 부르고 들어가면 그걸로 끝인 현재 가요 프로그램의 방식보다는 순위제가 흥미거리가 될 건 분명하다. 더욱이 〈SBS 인기가요〉 모두 태생이 순위 프로그램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순위 없는 이들 프로그램으로서는 다른 이슈 포인트를 만들기도 어렵다. 가수가 노래를 부르는 것보다 버라이어티 쇼에 나와 웃긴 얘기 한 마디 하는 게 더 화제가 되는 세상이 됐다. 토크는 없고 노래만 있는 가요 프로그램에서 순위제는 버라이어티 프로에 대해 유일하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아이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제가 필요하다. 2000년대 초반과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 권력의 축은 방송에서 대형 기획사로 넘어간 지 오래다. 순위 프로그램 폐지 논란이 불거질 무렵 제기됐던 문제가 특정 방송사의 편파적 순위였다면 지금은 대형 기획사의 압력 행사가 더 위험하다. 예를 들어 A라는 특급 인기 가수를 보유한 B라는 회사가 있다고 하자. 그런데 B회사에서는 C라는 신인을 데뷔시켰다. 그런 상황에서 A가 순위 프로에 1위를 차지했는데 C도 어떻게든 끼워 팔고 싶다. 그러면 B회사는 A의 출연을 무기로 C의 높은 순위를 보장해달라는 요구를 한다. 방송사 쪽에서는 난감하다. 1위를 차지한 가수가 섭외가 안 되면 프로그램의 모양새가 이상해지니 말이다. 그래서 C는 실제와 상관없이 높은 순위를 차지하며 화제를 모은다. 말이 되냐고? 이와 비슷한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그래서 Mnet의 〈KM 뮤직 페스티벌〉이 한 해의 음악계 결산이 아니라 기획사들의 파워 게임으로 전락하지 않았나.
왜 한국에는 빌보드나 오리콘이 없나
쪽은 이런 폐단을 막고자 음반 판매량과 디지털 음원 판매량, 시청자 선호도 조사를 포함한 통합 차트를 도입한다고 한다. 심지어 1위 출연자가 섭외가 안 될 경우, 해당 가수 없이 그대로 방송을 내보낼 계획이라고 한다. 하지만 과연 잘될까. 시청률에 쫓기는 한국의 방송 제작 환경에서 그런 원칙이 얼마나 오래 지켜질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순위제 부활의 명분인 가요계 활성화를 위해서라면, 순위 프로그램 방영보다는 공신력 있는 차트를 만들자는 캠페인을 벌이는 편이 낫지 않을까. 어쨌든 한국에는 빌보드나 오리콘처럼 권위 있는 차트가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빌보드의 월드뮤직 차트에서 한국이 제외되고 있는 실정이고. 다시 한 번, 문제는 공정성이다. 가요계의 인기 순위를 투명하게 보여줄 능력을, 대형 기획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음악 프로그램이 얼마나 펼칠 수 있는지 지켜보겠다.
아, 그리고 690호에 실렸던 ‘한국 음악시장을 죽이는 자들’에 대해 한국음원제작자협회(음제협) 쪽의 해명이 있었다. 2002년 이동통신사와 모바일 음원 계약을 한 주체는 음제협이 아니라 개별 기획사들이었으며, 2005년 재협상을 통해 20%였던 제작자 요율을 25%로 올린 주체는 음제협이 아니라 한국연예제작자협회였다. 현재 모바일을 제외한 다른 온라인 음원의 요율을 다시 정하는 방안이 음제협을 통해 문화관광부에서 심의 중이다. 좋은 결과 있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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