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마룬5와 놀았다, 참 재밌었다

등록 2008-03-21 00:00 수정 2020-05-03 04:25

<font color="darkblue"> ‘미친’ 한국 관객의 정수를 보여준 내한 공연… 70년대 록 사운드를 떠올리게 한 연주도 일품</font>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봇물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최근의 내한 공연 러시를 보면, 과연 음반산업의 불황이 있기는 한 건가 의심될 정도다. 이제 두 달이 지났을 뿐인데 벌써 올해에만 마이 케미컬 로맨스, 비요크, 라울 미돈, 해리 코닉 주니어, 마룬5, 스피츠, 헬로윈, 감마레이 등이 왔다 갔다. 예정된 공연을 보자면 셀린 디온, 앨리스 쿠퍼, 제이슨 므라즈, 제임스 블라운트,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 파리스 매치, 닐 영, 도노반, 듀란듀란, 케런 앤…. 이건 뭐 한 10년치 내한 공연 리스트를 알집으로 압축해놓은 기분이다.

다른 약속 다 제치고 공연장에 갈 때마다 느끼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참 잘 한다’. 또 하나는 ‘참 잘 논다’. 3월7일 열린 마룬5의 라이브가 대표적이었다.

록과 팝의 절묘한 경계

마룬5는 요즘 록밴드 중에서는 보기 드물게 국내에서도 본좌급 히트를 한 팀이다. 라디오에서는 (This Love)가 꽤나 흘러나왔고, 미니홈피 배경음악(BGM)이나 휴대전화 컬러링으로도 큰 사랑을 받았다. 그들과 나란히 비교해볼 만한 팀은 자미로콰이다. 자미로콰이와 마룬5는 닮은 듯하면서도 다르다. 둘 다 흑인 음악의 그루브를 갖고 있는 백인의 음악이다. 하지만 자미로콰이가 솔과 펑크 등 흑인 음악 베이스에 백인 음악의 매끈한 감성을 입혀서 전세계 언니들의 몸을 들썩거리게 했다면, 마룬 5는 반대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모던 록의 포맷을 갖췄다. 여기에 펑크의 그루브를 살짝 얹었다. 자미로콰이가 흑빛의 농도가 더 짙은 반면, 마룬 5는 흰색의 농도가 더 짙다. 또 있다. 이들은 록밴드 형태를 갖고 있지만 전반적인 사운드나 멜로디는 영락없는 팝이다. 요컨대 흑인 음악과 백인 음악, 록과 팝의 절묘한 경계에 서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루하지 않고 부담스럽지 않다. 파티나 클럽에서뿐만 아니라 사무실에서 야근하면서도 흥겹게 즐길 수 있다. 일상의 바깥이 아닌, 생활 어느 곳에서나 배경음악 역할을 할 수 있는 게 마룬5의 음악이다. 그런 절충주의가 국내에서도 마룬5의 인기를 부채질했다.

그러나 사실 이들의 라이브에는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절충주의란 자칫하면 애매해지기 쉽다. 술에 맹물을 탄 음료를 마시는 기분이 든다. 워낙 음반이 매끈하게 잘 빠진 탓에, 이걸 과연 라이브로 재현할 수 있겠냐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웬걸, 기대 이상의 공연이었다. 마룬5의 라이브에는 음반에서의 매끈함 대신 현장의 열정이 있었다. 공연 내내 드럼과 90도 각도 위에서 스틱을 내리치는 맷 플린의 파워는 가히 일품이었다. 인기의 핵인 보컬 애덤 리바인은 말할 것도 없었다. 게이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만큼, 남자가 봐도 섹시했던 그는 특유의 비음 섞인 목소리로 1시간20분 정도의 공연 내내 제 몫을 다 했다. 무엇보다 놀란 건 이들의 기타 사운드가 전체적으로 70년대 록 스타일이었다는 점이다. 음반에서는 한없이 깔끔하고 통통 튀던 사운드는 레드 제플린이나 지미 헨드릭스 시절의 밴드처럼 걸쭉했다. 70년대를 괜히 록의 전성기라 부르는 게 아니다. 70년대 록 사운드는 언제 어디서나 사람을 들뜨게 한다. 그런 사운드였다는 걸 감안해도, 또 이들이 현재 가장 ‘핫’한 밴드라는 걸 감안해도, 객석의 온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비등점 이상이었다.

표값을 내리면 그들은 보답하리

우리나라에서 마니아를 상대로 하는 공연과, 일반인을 상대로 하는 공연의 차이는 하나다. 객석에서 야광봉이 흔들리느냐 아니냐다. 야광봉이 없다면 필시 마니아를 위한 공연이다. 그러나 마룬5는 명색이 록밴드임에도 수천 개의 야광봉이 드럼 스틱이 오르내릴 때마다 흔들렸다. 어느 밴드의 공연보다 여성 관객이 많았다. 함성이 아니라 비명이 올림픽 체조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마룬5도 신기했을 것이다. 공연 내내 모든 노래를 따라 부르고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야광봉 퍼레이드를 펼치는 관객이 자못 감동스러웠을 것이다. 공연의 하이라이트였던 (Won’t go home without you)에서 밴드가 연주를 멈춰도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 꽉 찬 인원이 부르는 때보다 더 크고 우렁찬 싱얼롱이 울려퍼지더니, (This Love)가 시작되자마자 객석에서 터진 초고음역대의 비명은 귀가 아플 정도였다. 결국 첫 앙코르의 마지막 곡이었던 (Sweetest Goodbye)에서 애덤의 입은 귓가까지 찢어졌다. 그런 ‘미친’ 관객에게 마룬5는 특별 서비스를 했으니, 다른 나라에서는 하지 않았던 두 번째 앙코르 무대를 마련한 것이다. 이때 연주한 노래는 프린스의 (Purple Rain). 이들의 음악적 배경을 볼 때, 아마 소싯적 밴드를 결성하고 카피했던 노래의 하나가 아니었을까. 정말이지, 참 잘하고 참 잘 논 공연이었다. 참 잘 논 쪽에 방점을 찍고 싶다. 괜히 공연 기획자들이 한국 공연의 메리트는 바로 관객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세상에 공연 보러 가기 전에 노래 가사를 외우며 ‘예습’하는 관객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런데 한 가지만. 이렇게 훌륭한 관객이 있는데, 표값을 좀 내려서 더 많은 사람을 불러모으면 자산을 몇 배쯤 불릴 수 있지 않을까? 공연이 많아질수록 통장 잔고를 걱정해야 하는, 심지어 적금도 깨야 하는 애호가들의 심정을 좀 헤아려줬으면 한다. 그들은 몇 배 이상으로 그 헤아림에 보답할 테니.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