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 경부운하 지나는 길에 국보·보물 등 지정문화재 72점… 복원 약속했던 청계천 수표교는 어떻게 되었던가</font>
▣ 충주·여주=글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예로부터 사람들은 강에 기대어 살았다. 원시시대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은 강의 물을 퍼내 마셨고, 고기를 잡아 끼니를 때웠으며, 논에 물을 댔고, 강의 흐름에 배를 띄워 강의 상·하류 사람들과 교역했다. 그 때문에 한강과 낙동강의 너른 모래톱마다 선사시대 집터와 유물들이 쏟아지고, 이제는 사라져버린 왕국들의 성곽과 보루가 출토된다. 강과 살을 맞대고 터 잡은 절과 서원들은 수십 개에 이른다.
100m 안 매장문화재 177곳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취임 뒤 1년 안에 공사를 시작하겠다”고 밝힌 뒤 경부운하 건설을 막기 위해 181개 시민단체가 모여 만든 ‘경부운하 저지 국민행동’(이하 국민행동)이 처음 꺼내든 대응 카드는 문화재였다. 국민행동은 1월3일 문화재청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보고한 자료를 토대로 운하 건설 예정지인 한강·낙동강 주변 500m 안에 국보와 보물 등 지정문화재 72점, 100m 안에는 발굴과 조사를 해야 하는 매장문화재가 177곳이나 된다고 밝혔다.
가장 우려스러운 곳은 충북 충주다.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북충주 IC로 나가 10분쯤 달리면 가금면 용전리 입석부락 어귀에서 국보 205호 중원고구려비를 만난다. 중원고구려비 앞 삼거리에는 남한강을 따라 늘어선 충주 지역 문화재들의 분포를 알려주는 입간판이 서 있다.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져 3km쯤 더 나아가면 국보 6호 중원 탑평리 7층 석탑이 나오고, 중원 창동 5층 석탑(6km·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8호)과 중원 창동 마애불(6km·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76호)을 지나 우륵과 신립 장군의 서글픈 일화가 전하는 탄금대(7km·충북기념물 제4호)에 닿는다. 1992년 충주시가 조성한 ‘중앙탑 공원’ 안쪽에 자리잡은 7층 석탑과 남한강 물줄기의 거리는 채 50m를 넘지 않는다.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은 “탑평리 7층 석탑이 운하로 매몰된다면 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가면 남한강을 놓고 백제·고구려·신라 3국이 혈투를 벌였음을 보여주는 장미산성(5km·사적 400호)이 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화가 있다. 이명박 당선자는 서울시장 재임 시절 문화재에 대한 인식을 드러낸 적이 있다. 2004년 2월, 서울시는 청계천 복원을 위해 서울 영풍문고 앞 네거리의 아스팔트를 걷어냈다. 아스팔트 지하에는 1410년 조선 태종이 개축한 광통교가 자리잡고 있었다. 두 차례 왕자의 난을 거쳐 보위에 오른 태종은 계모 신덕왕후 강씨를 증오해 그의 묘지석을 뜯어 다리 부재로 사용했다.
묘지석은 온전히 보존돼 있을까. 발굴 작업을 담당한 중앙문화재연구원 연구원들이 긴장되는 몸짓으로 현장을 지켜봤다. 다리 끝받침돌(교대석)으로 버려졌던 묘지석 표면에 새겨진 부처의 모습이 500년 넘는 세월의 벽을 뛰어넘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흥분한 역사학자들은 “국중대로인 남대문로에 놓인 광통교 위로 왕의 어가가 지난 만큼 제 위치를 보존하는 게 좋다”고 주장했지만, 대선을 마음에 품었던 이명박 서울시장에게는 그럴 마음이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임기 안에 공사를 마무리짓기 위해서였다. 서울시는 “광통교를 제자리에 두면 왕복 8차로인 남대문로가 왕복 4차로로 줄면서 교통 속도가 시속 17.8km에서 16.2km로 줄어든다”며 광통교의 해체 이전을 고집해 이를 관철했다. 이 당선자는 “광통교·수표교는 제 위치에 복원할 것”이라고 여러 차례 공언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결국 광통교는 제 위치에서 뜯겨 150m 상류로 이전됐다.
1년은 너무 짧다
이 당선자의 경부운하는 충주에서 남한강 본류를 버리고 지류인 달천을 따라 조령산을 넘는다. 달천변에 자리잡은 단호사에는 보물 512호인 고려시대 철불좌상이, 강 건너 저편에는 임경업 장군의 묘소(사적 189호)가 조성돼 있다.
한강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 경기 여주에 와 닿는다. 이곳에는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하는 신륵사가 있다. 신륵사에는 보물 226호 다층석탑 등 7개의 보물이 밀집돼 있다. 서울 주변은 말할 것도 없다. 한성 백제의 도읍으로 추정되는 풍납토성과 그 너머 강북 아차산의 고구려 보루군, 미사리와 암사동 선사 유적 등이 강을 따라 이어진다.
반발이 거세지자 대통령직 인수위는 “대운하는 모든 절차를 밟고 추진하겠다는 게 이명박 당선인의 생각”이라며 “그 과정에 1년 정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1년이 한반도 대운하라는 엄청난 사업을 추진하는 데 충분한 시간이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당선자는 청계천 옛 다리 가운데 하나에 불과한 수표교의 복원 시간을 6년으로 잡았고, 물론 그것도 지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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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기관 통폐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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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한반도 대운하 건설 과업을 위해 국립박물관과 문화재청은 한 몸으로 합쳐야 한다!’
초미의 현안으로 떠오른 한반도 대운하 건설계획이 문화재 기관 통폐합론으로 번지고 있다. 문화재청이 최근 대통령직 인수위 업무 보고에서 대운하 건설터의 사전 문화재 발굴 조사를 위한 국책조사단을 건의하면서 국립박물관 통합론을 슬쩍 끼워 보고한 것이 일파만파로 파장을 불렀다.
지난 1월9일 문화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간부들은 비상이 걸렸다. 이성원 차장 등 문화재청 간부들이 그 전날 인수위 업무 보고회에서 발언한 내용 때문이었다. 문화재청 간부들은 대운하 건설터의 문화재 발굴 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국책조사단 구성안을 언급한 뒤 질의응답 과정에서 ‘민감한 건의’를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국책조사단 결성 등의 업무를 원만히 풀려면 학예사들이 많은 박물관을 청 산하로 흡수해 전문가 인력풀을 내실 있게 확보해야 한다는 내용을 전달한 것이다. 문화재청-박물관 통합론은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효율적인 문화재 관리를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돼왔던 사안이긴 하다. 하지만 이날 구두 발언은 박물관은 물론 문화관광부와도 사전 조율 없이 나왔다. 대운하 건설이 피할 수 없는 대세라면, 문화재 조사 인력 확보란 카드를 내밀며 내친김에 조직 통폐합을 실행하겠다는 ‘노림수’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정원 500여 명의 박물관을 흡수하면 청의 직제 규모는 현행 700여 명에서 1300명 수준으로 급증해 현행 정부조직 최대 규모의 ‘공룡청’이 된다. 반면 문화부는 가장 유력한 산하기관을 잃게 된다.
보고회 현장에 배석한 문화부 직원에게서 이런 급보를 전해들은 문화부 쪽은 내부 대응 논리를 점검하고 인수위 쪽과 접촉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더욱 다급해진 것은 국립중앙박물관. 1월10일 오전 관장 주재로 간부회의를 열어 성격이 다른 양 기관의 통합은 절대 불가라는 원칙을 재확인하며 결의를 다졌다고 한다. 박물관의 한 중견 간부는 “2002년부터 반대 논리를 준비해왔다. 유물 소장품을 전시 연구하는 박물관과 전국의 문화재 행정을 다루는 청의 기능은 다르다는 관련 자료를 이미 인수위 쪽에 전달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김홍남 관장도 이달 초 문화부 인수위 업무 보고회에 배석해 이경숙 인수위원장에게 박물관, 문화재청 분리의 당위성을 역설했다는 후문이다.
통폐합론은 작은 정부 정책 기조와 배치되는데다 문화부, 박물관 쪽의 반발이 거세 실현 여부를 장담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박물관 쪽 내부 기류가 반대 일색만은 아니다. 문화부 관료들이 산하 박물관을 승진 대기소 정도로 하대한다는 내부 불만이 쌓여 있고, 갈수록 전시 중심 서비스 기관 쪽으로 위상이 강화되면서 고고부 등 현장 연구 조사를 중심으로 하는 학예직들의 위상이 정체된 것도 사실이다. 문화재청과 고고학계 일각에서는 대운하 건설을 피할 수 없다면, 박물관 유휴 인력을 돌려 절대 부족한 조사 인력을 보충하는 것이 현실적이란 의견도 없지 않다.
한편 유홍준 청장 퇴진을 앞둔 문화재청에서는 새 정권의 의중에 따라 사전 문화재 조사를 신속하게 밀어붙일 관료형 인사가 후임이 될 것이란 설이 무성하다. 유 청장도 1월10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대운하에 대한 견해를 묻자 “물길을 뚫을 수는 있어도 돌릴 수는 없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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