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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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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음악시장을 죽이는 자들

등록 2007-12-21 00:00 수정 2020-05-03 04:25

디지털 음원 수익을 이동통신사에 빼앗긴 음제협, 돈 벌 궁리만 하는 이동통신사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올해도 어김없이, 음반시장은 불황이었다. 불황이란 단어가 무색할 만큼 변함없이 바닥을 기었다. 이런 현실에 대한 가수들의 비관도 연초부터 연말까지 꾸준히 이어졌다. 한국 대중음악에 미래는 없어 보인다, 라고 하고 싶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다. 망한 건 음반시장뿐이다. 디지털 음원시장은 마지막으로 100만 장 이상 판매된 음반이 나왔던, 2001년의 음반시장 규모를 능가하고 있다. 디지털음악산업발전협의회 자료에 의하면 디지털 음악시장은 올해 약 37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2001년 음반시장 규모가 약 3730억원이었고 디지털 음원시장은 911억원이었다. 올해 음반시장은 600억~700억원 규모라고 한다. 정리하자면 음악을 소비하는 플랫폼이 음반에서 디지털로 완전히 넘어갔으며, 전체 음악시장은 2001년 수준으로 가고 있는 셈이다. 향후 디지털 음악시장의 성장 규모를 감안하면 음반의 전성기였던, 즉 찍으면 100만 장은 나간다는 큰소리가 통하던 90년대를 능가할 가능성이 높다.

소리바다만 때려잡아서 될 일이었나

그런데 왜 다들 죽는다고 할까. 알다시피 요율 배분 때문이다. 디지털 음원의 경우 이동통신사, 음원유통 사이트, 콘텐츠제공업체(CP사)가 66%를, 저작권자가 9% 정도를 가져간다. 이 중 이동통신사가 차지하는 요율은 전체의 50~55%에 달한다. 제작사에 돌아가는 요율은 25% 정도다. 반면 음반은 제작사와 가수가 40~45%를 가져간다. 그러니 제작사 처지에서는 부아가 터질 노릇이다. 게다가 500원짜리 MP3 팔아봤자 10원 남짓 가져가는 가수는 억장이 무너진다. 유통과 판매자가 제일 크게 먹고, 생산자는 쥐꼬리만큼 먹는 구조라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왜 이 비합리한 구조를 바꾸지 못할까. 2001년 SK텔레콤 등 이동통신사와 음반제작자협회(음제협)가 컬러링, 배경음악 등 디지털 음원 요율 계약을 할 때 이동통신사의 지분을 절반 이상 보장했기 때문이다. 아직 음반시장에 100만 장 이상 팔리는 상품이 있었을 때다. 그해 디지털 음원시장은 90억원을 갓 상회하는 수준이었다.

음제협이 보기엔 소리바다나 벅스뮤직만 없애면 음반시장이 계속 잘나갈 줄 알았을 것이다. 한 곡에 500원짜리 MP3는 푼돈으로밖에 안 보였을 것이다. 여기에 대기업의 노회한 전략이 더해졌을 것이다. 냅스터 파동이 일어났을 때 진작 디지털 시대에 대비했다면 멀티플렉스의 등장과 함께 영화시장이 급성장했듯 제작자와 가수들이 변화하는 디지털 환경을 주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음악이 공짜라는 인식이 생기기 전에, 자연스럽게 소비자를 음반에서 디지털 음원으로 유도할 수 있었다. 어쨌든 도장은 찍혔고 그해를 기점으로 음반시장은 급추락하기 시작했다. 반면 디지털 음악시장은 급성장에 급성장을 더해갔다. CD를 사는 건 바보라는 인식마저 생겼다. 최근 인터넷의 여론을 보자면 아예 저작권을 우습게 보는 풍조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음제협은 정말이지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했다. 디지털 음악을 때려잡아야 할 대상으로만 생각했지 새로운 플랫폼으로 보지 않았다(물론 이건 우리나라만의 얘기는 아니다). 그러니 뒤늦게 요율 배분이 잘못됐다며 이동통신사에 항의 방문을 해봤자 앞에서 계약서 흔드는 사람 앞에서는 할 말이 없다. 찍힌 도장 앞에 무슨 재간으로 따지겠나. 위조 계약서라면 몰라도 말이다. 음제협은 네티즌을 탓하기 전에 변화 앞에 안일했던 자신들을 반성해야 한다. 그들에겐 분명히 기회가 있었다. 그 기회를 보지 못했고 스스로 놓아버렸을 뿐이다.

제작자 탓만 할 수는 없다. 투자 비용 회수를 내세워 50% 이상의 요율을 꿀꺽하고 있는 이동통신사들도 당연히 문제다. 지금 영미권의 디지털 음원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아이튠스 뮤직스토어를 론칭하면서, 스티브 잡스는 자사의 요율을 딱 10%로 책정했다. 콘텐츠 생산자들의 권리와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이런 정책은 메이저 음반사들뿐만 아니라 인디 레이블들의 적극적 참여를 이끌어냈고 지금은 아예 어떤 음반사와도 계약을 맺지 않고 아이튠스 뮤직스토어를 통해서만 음원을 공개하는 뮤지션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나 우리의 이동통신사들은 대기업들이 보통 그러하듯, 절대적 ‘갑’의 지위를 놓치려 하지 않는다. 팔기만 하면서 전체 금액의 50%를 꿀꺽하다니, 이건 콘텐츠 생산자를 그야말로 개똥으로 봐도 유분수인 것이다. 양질의 다양한 음악이 꾸준히 생산되기 위해서는 뮤지션과 제작자에게 합리적인 요율이 돌아가야 한다고 해봤자, 씨알도 안 먹히겠지. 그들에겐 양질의 다양한 음악보다는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잘 잡는 고양이, 즉 돈 되는 음악이면 뭐든 상관없을 테니까 말이다.

콘텐츠 다양화에도 머릴 굴려라

쥐 잘 잡는 고양이를 양성하는 건 좋다. 그런데 고양이가 쥐만 잡나? 쥐는 못 잡아도 시암도 있고 페르시안도 있고 코리안쇼트헤어도 있고, 세상에 얼마나 고양이가 많은데. 그들도 좀 돌아봤으면 좋겠다. 한국 음악시장의 주도권을 이통사가 잡고 있는 지금, 음악을 통해 벌어들인 돈은 음악의 다양화를 위해 투자하란 얘기다. 음악 선진국의 시장이 그렇게 수많은 장르가 존재할 수 있는 건 메이저들이 돈 되는 음악뿐만 아니라 계속 새로운 음악을 발굴하고 대중에게 알렸기 때문이다. 휴대전화에 대한 수요도 없을 때 마케팅 잘해서 시장만 잘 창출하더니, 왜 음악에서는 그렇게 수요만 좇는 것일까. 음제협과 50% 요율 적힌 계약서에 도장 찍던 머리를 콘텐츠 다양화에 조금만 굴렸으면 한다. 그건 메이저의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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