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 주류든 비주류든 모든 음악을 음악성 하나의 잣대로 평가하는 2008 한국대중음악상</font>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3월5일 성균관대 600주년 기념관에서 2008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이 열린다. 독자들이 이 글을 읽을 때쯤이면 수상자들이 결정되고 발표만 앞두고 있을 것이다. 올해로 다섯 번째를 맞는 한국대중음악상은 ‘한국의 그래미’를 염두에고 두고 만들어진, 음악성을 주요 판단 기준으로 하는 상이다. 음악상에 음악성이 기준이 되는 건 당연하지 않느냐고? 어디 현실이 그런가. 지난해를 기해 사라진 지상파 중심의 가요 시상식은 늘 공정성 논란에 시달려왔다. 시상 기준에서 음악성은 사라지고 인기도만 반영된다는 비판도 만만찮았다. 뒤이어 등장한 음악전문 케이블 방송의 시상식은 더했다. 시상식이 끝나고 나면 해당 방송사의 게시판은 전쟁터가 되곤 한다. 특정 기획사 소속의 가수들이 주요 부문을 다 쓸어갔다는 의혹이 늘 제기되기 때문이다. 음악성은 물론이고 그나마 인기도도 희박해졌으며 연예기획사들의 세력 과시의 장으로 전락했다는 한탄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한국대중음악상은 이런 현실에 대한 반성에서, 음악평론가와 기자, PD, 교수 등 각계각층의 음악전문가들이 모여 준비해온 시상식이다.
인디음악상이라는 오해
이 시상식의 가장 영예로운 부문은 ‘올해의 음반’이다. 해외의 권위 있는 시상식들과 마찬가지로 음악 창작물로서 음반이 가지는 가치를 가장 높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 부분의 상을 받아간 뮤지션들을 1회부터 4회까지 살펴보면 이렇다. 더더, 마이앤트메리, 두번째달, 스왈로우. 상업성과는 거리가 먼 뮤지션들이다. 대중음악상은 그래서 오해에 시달려야 했다. 대중음악상이 아니라 인디음악상이 아니냐는 것이다. 일부 아이돌그룹 팬들과 그 팬덤의 기호에만 충실한 인터넷 ‘연예통신사’를 중심으로 그런 오해는 기정사실처럼 굳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올해의 음반’ 못지않게 중요한 부문으로 ‘올해의 노래’가 있다. 이승철의 , 윤도현의 , 이한철의 등이 이 상을 받았다. 그뿐인가. 지난해에는 엄정화가 최우수 댄스 & 일렉트로닉 음반을 수상했다. 섹시 퀸 이미지로만 각인된 엄정화의 일렉트로니카에 대한 애정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대중음악상에서 ‘어디’에 있느냐는 사실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무엇’을 하느냐를 볼 뿐이다. 이런 시각을 가장 극명히 보여주는 게 이번 시상식의 후보들이다.
‘올해의 음반’ 후보들을 우선 살펴보자. 이적, 에픽하이, 이승열, 이상은, 허클베리핀, 할로우잰이 이름을 올렸다. ‘올해의 노래’는 어떤가. ‘올해의 음반’과 마찬가지로 이적과 에픽하이, 이상은이 올랐고 여기에 원더걸스와 인순이가 가세했다. ‘올해의 신인’으로는 원더걸스와 윤하, 할로우잰, 그림자궁전과 정민아가 후보에 올랐다. 각 장르 부문으로 가면 이런 다양성은 더욱 강화된다. 서로 하고 있는 음악도 다르고, 서 있는 위치도 다른 뮤지션들이다. 다만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과 음악에 충실한 이들이다. 이래도 인디음악상인가? 그동안 인디 쪽 뮤지션들이 상대적으로 후보에 많이 오르고, 상도 많이 받아간 건 그만큼 주류 대중음악계가 ‘음악적으로는’ 빈약했다는 얘기가 된다. 상업성과 지명도를 후보 및 수상자 선정에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이다. 따라서 올해 대중음악상 후보들이 주류와 비주류를 막론하고 골고루 올라 있는 건 바꿔 말하면 지난해 대중음악계가 전체적으로 풍성했다는 얘기가 된다. 음반시장의 동향과 상관없이 뮤지션들은 꾸준히 좋은 음악을 만들었고,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걸맞은 가수들이 많이 나왔다는 거다.
문화 다양성에 보태는 벽돌 한 장
선정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최종 수상자 선정 회의 전날이다. 회의에서는 갑론을박이 오고 갈 것이다. 전체 선정위원의 표결을 토대로 한 자료를 가지고 밤늦도록 열변이 이어질 것이다. 대중음악상 선정위원은 명예직이다. 쉽게 말해 돈 한 푼 안 되는 일이다. 그럼에도 몇 차례나 계속되는 투표와 회의에 수고를 아끼지 않는 건 모든 위원이 같은 마음일 것이라 믿는다. 모든 음악상이 인기, 혹은 그 바닥에서의 권력관계에 의해 결정되는 한국 현실에서, 제대로 된 차트 하나 못 가져보고 사양길로 걸어간 음반 시장에서, 기대했던 다양성 대신 오히려 획일성만 심해지는 듯한 디지털 음원 환경에서, 다른 시각의 시상식 하나쯤 만들어보자는 절박한 심정 말이다. 이는 어설픈 계몽이 아니다. 자의적 권위를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입만 열면 얘기하는, 하지만 아직 한참 요원해 보이는 문화의 다양성에 하나의 벽돌을 더하고픈 소박한 욕구가 있을 뿐이다. 주류와 비주류라는 선입견을 배제하고 모든 음악을 동일선상에서 보고 싶다는 작은 바람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팬으로서 ‘섬기는’ 뮤지션이 후보에 없다고, 상을 못 받았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보다는 느긋하게 ‘아, 올해는 저런 사람들이 상을 받았구나’라며 관전했으면 한다. 그 유명한 철학자들도 결국 절대성을 포기했는데, 일개 시상식에서 절대적 객관을 기대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리라. 만약 그런 상이 있다면 그야말로 ‘신’이 주는 상일 것이다. 그런데 신은 이미 니체에 이르러 죽었으니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다. 대중음악상을 지켜보는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는 방송에서는 만날 수 없던 다양한 가수들의 음악을 모아 들을 수 있다는 거다. ‘요새는 들을 음악이 없다’고 투덜대는 이들에게 종종 하는 얘기가 있다. 들을 음악이 없는 게 아니라 들리는 음악이 없을 뿐이라고. 올해의 후보작들을 들어보라. 그러면 쉽게 부인할 수 없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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