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 ‘영국 학교의 실패’를 진단한 닉 데이비스의 </font>
▣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영국의 학교는 실패했다. (이병곤 옮김, 우리교육 펴냄)에서 닉 데이비스는 단언한다. 저자는 18개월 동안 학교 현장을 취재한 결과를 1999년부터 아홉 차례에 걸쳐 에 실었다. 책은 이것을 보충해 펴낸 것이다. 연재하는 동안 당시 교육부 장관의 반론이 나오고 독자의 반응이 뜨거웠다. 그가 ‘대규모 교육 투자 사기’를 밝힌 것은 눈에 보이는 성과다. 보수당에 이어 집권한 신노동당의 블런켓 장관은 국민을 향해 35조4천억원의 추가 예산을 반복해 거론했다. 하지만 이는 ‘이상한’ 증액이었다. 그러니까 첫해 5조5천억원을 증액하고 두 번째 해에는 6조5천억원을 증액하는데, 두 번째 해 것은 첫 번째 증액분을 더해서 12조원을 증액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세 번째 해에는 두 번째 증액분에다 그해 증액분을 더한다. 3년간의 증액분은 이 모든 증액분을 합친다. 발표 뒤 바로 국회 재무부 상임위원회는 변칙 계산법의 부당성을 지적했지만 언론들은 블런켓 장관의 수치만 받아 적고는 말았다. 어처구니없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이야기다. 문제는 영국에서도…, 라는 것이겠다.
‘교육이 실패했다’고 말하는 닉 데이비스는 원인 분석에 들어간다. “이 모든 혼란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해답이 있다. 이토록 분분한 논쟁과 불신 속에서, 학교의 성패를 좌우하는 하나의 원인이 있다는 것이 이상하긴 하지만 말이다.” 그 해답은 학교의 성적은 학교 내 저소득층의 비율과 반비례한다는 사실이 명징하게 가리키고 있다. 바로 가난이다. 우리가 여기에 불편하다면 교육을 통한 성공의 길이 열려 있다고 믿고 있기, 아니 믿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가난을 뚫고 성공하는 길이 교육 외에 뭐가 있겠는가.’ 영국 교육부도 마찬가지다. “가난은 변명일 뿐이다.” 그는 발품을 팔아 가난한 지역의 현장을 중계하면서 ‘평등은 허구’일 뿐이라는 사실을 까발린다. 가난한 지역 학교의 교장은 지갑을 도둑맞고, 지갑을 훔친 여학생은 이 지갑을 창녀 언니에게 주고, 언니는 교장의 신용카드를 사용하고, 경찰은 이를 근거로 아파트를 급습했는데, 범인은 헤로인 과용으로 남자친구와 숨진 채 발견된다. 선생은 아침마다 전화를 걸어 아프다고 하고, 학생은 출석만 부르고 사라진다. 다른 반대편에 첨단 기자재나 교수법이 아니라 “좋은 학생들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학교가 성공했다”고 솔직하게 시인하는 사립학교 교장이 있다. ‘가난이 변명이 아니라 실제 교육에 미치는 절대적 1요소’라면 가난한 자들에게 더 많은 지원이 ‘불평등’하게 행해져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시장경제는 이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신노동당은 숫자를 조작했지만 ‘교육시장’은 마거릿 대처 총리 시절 1988년에 창출됐다. 교육 예산 삭감과 ‘학부모의 학교 선택’이 결합하면서 부동산 가격에 따라 학군은 양극화됐다. 양극화는 조짐이 보이자 곧 가속됐다. 아이가 전학을 가면 아이에게 책정된 정부의 교육 지원비도 따라가고 학교는 더 낙후하고 학교를 지원하는 학생들은 더 없는 것이다. 가난한 지역의 공립중등학교는 폐교되거나 열악해져갔다. 이것이 시장이다. 경쟁력 없는 것은 퇴출되는 것.
실패한 땅으로의 유학? 대한민국 신문의 한 귀퉁이에는 ‘영국 사립학교 유학’ 광고가 가끔 실린다. 공교육의 한편에서 혜택을 입는 사립학교가 성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실패한 공교육과 성장하는 사교육, 교육의 양극화 문제가 지구 한 바퀴를 돌아 공명하고 있다. 책은 2000년에 나왔다. 영국의 과거는 한국의 미래일지 모른다. 현재 고교 선택제, 고교 등급제를 비롯한 경쟁체제의 도입, 교육시장 개방 등이 눈앞에 닥쳤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단독] 명태균이 받았다 한 ‘김건희 돈’ 어떤 돈...검찰 수사 불가피
엄마, 왜 병원 밖에서 울어…취직 8개월 만에 죽음으로 끝난 한국살이
‘해품달’ 송재림 숨진 채 발견…향년 39
[단독] 명태균 “김 여사 돈 받아”...강혜경 “5백만원”
‘윤 퇴진 집회’ 무리한 구속영장, 법원이 막았다
동덕여대 학생들 ‘공학 반대’…“검열 않고 여성 문제 논의하는 곳”
아이돌이 올린 ‘빼빼로 콘돔’…제조사는 왜 “죗값 받겠다” 했을까
[단독] 돌연 사직서 낸 이충상 “너무 많이 맞아…전의 상실했다”
삼성전자, HBM 반도체 천안서 생산
집회·탄원 독려…이재명 1심 선고 앞 친명계 전방위 사법부 압박 ‘눈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