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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오, 과학 독설의 재미!

등록 2007-06-29 00:00 수정 2020-05-03 04:25

에 이은 또 하나의 문제작 주디스 리치 해리스의

▣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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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스 리치 해리스는 젠체하는 사람이다. 유명 과학자 프리드먼 다이슨의 말을 인용한 뒤 “딴은 그렇다”라고 하는 모양새나, “나처럼 킨제이도 권위에 굽실대지 않으며”(15쪽)라는 말들이 농담처럼 들리지만은 않는다. 주디스 리치 해리스의 성격을 판단하도록 자극하는 것은 그의 글이다. 그는 몇 가지 정보를 접하고 성격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것을 인간의 본성이라고 말한다. (동녘사이언스 펴냄, 곽미경 옮김)은 무엇보다 주디스 리치 해리스의 ‘개성’이 잘 드러나는 글이다. 그는 어떤 사람인가.

주디스 리치 해리스는 자가면역 질환으로 알려진 루푸스와 전신성 경화증을 30년 가까이 앓고 있다. 병을 앓기 시작한 것과 비슷한 시기 그는 하버드대 심리학 박사과정에 있었는데 대학에서 ‘독립성과 독창성’이 하버드의 기준에 미달되어 떠나달라는 편지를 받았다. 이후 그는 대학교재를 쓰며 살다가 문득 그가 쓰는 글들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고는, 아동발달에 대한 세간의 일반적인 이론에 맞서는 논문을 한 편 써서 에 제출했다. 그 논문으로 그는 조지 A. 밀러상을 받는다. 조지 A. 밀러는 바로 떠나달라는 편지에 서명을 한 심리학과장이었다. 이 논문을 바탕으로 그는 (The Nurture Assumption)을 썼고 파란을 일으켰다. 이 책은 부모가 아이들의 성격 형성에 아무런 힘을 갖지 못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가 영향을 미친다고 지목한 대상은 ‘또래집단’이었다. 그는 발달심리학자들의 부모에 대한 강조는 단지 ‘가설’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두 번째 책 으로 다시 한 번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를 만반의 채비를 갖췄다.

루푸스병을 앓고 있는 그는 조금씩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뿐이다. 그가 침대에 누워 과학 가설을 세우고 무너뜨리면서 자신을 감정이입한 대상은 추리소설 의 앨런 그랜트였다. 앨런 그랜트는 수사를 하다가 부상을 입고 꼼짝도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는데 친구가 물어다주는 몇 가지 정보로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아간다. 주디스 리치 해리스가 뚫어지게 응시하는 질문은 이렇다. 왜 사람들은 다 다를까, 유전자가 똑같다는 일란성 쌍둥이들도 성격이 그렇게 다를까. 심지어 샴쌍둥이로 살다가 분리수술을 감행하면서 죽은 이란의 라단과 랄레흐 비자니 자매 역시 서로 너무나도 성격이 다른데, 유전자도 똑같고 거의 똑같은 대접을 받았을 텐데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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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여기에 흔하게 따라붙는 ‘환경’이라는 가설을 잘근잘근 씹는다. 그의 전제부터 그렇다. 유전적 유사성의 영향은 성격을 형성하는 데 평균 45%의 ‘책임’이 있다. 나머지 반을 넘는 55%가 수수께끼인데, 발달심리학자들은 이를 ‘비공유 환경’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55%를 ‘설명되지 않은 분산’이라고 명명한다. 책의 반은 이 55%를 설명하기 위해 과학자들이 내세우는 이유를 제거해나가고 나머지 반은 자신의 가설을 주장한다. 그가 하나씩 소거해가는 대상은 환경의 차이, 유전자와 가정환경의 복합적인 원인, 유전자-환경의 상호작용, 출생 순서와 가족 내 환경의 차이, 유전자-환경의 상관관계다. 아니, 도대체 이외에 성격을 설명하는 데 무엇이 더 있단 말인가. 그가 내세우는 세 가지 메커니즘은 관계 체계, 사회화 체계, 지위 체계다. 그는 결론에서 “새로운 이론을 창안한 사람과 이를 테스트하는 사람이 같아서는 안 되기 때문”에 증명할 의무를 살짝 빠져나간다.

새롭게 등장한 메커니즘이 앞에서 제거한 용의자들이 완전히 다른 어떤 것인지도 불분명할 뿐 아니라 그의 ‘탐정 방식’ 자체가 불공평하다. 셜록 홈스의 “불가능한 것들을 하나둘 제하고 나면 아무리 있음직하지 않아도 남은 것이 진실일 수밖에 없다”는 원칙을 따라 제거해나갔지만 그의 새로운 이론은 원래 용의자상에 오르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가 전제로 삼은 ‘환경 영향 0%’라는 가정부터 논란의 여지가 있다. 책은 무엇보다 ‘독설’ 취미를 잘 만족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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