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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기업이여, 집단지성을 이용하라

등록 2007-05-04 00:00 수정 2020-05-03 04:24

돈 탭스코와 앤서니 윌리엄스의

▣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인터넷 ‘위키백과’에서 ‘위키노믹스’(Wikinomics)를 정의하는 첫 문장은 이렇다. “위키백과(Wikipedia)의 Wiki와 경제(Economics)의 nomics가 합쳐져 ‘Wikinomics’라는 신조어로 만들어졌으며, 한국어로는 ‘위키 경제학’으로 해석된다.” 영어판 ‘위키피디아’의 첫 문장은 이렇다. “2006년 12월 돈 탭스코트와 앤서니 윌리엄스에 의해 발행된 책이다.” ‘일상용어’로 한국에 먼저 정착한 것일까. (21세기북스 펴냄)가 단어보다도 늦게 한국에 도착했다. 2006년 12월 출간 뒤 5개월 만이니 유례없이 빠른 출판이지만 역시 인터넷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나 보다. 이 속도가 바로 ‘위키노믹스’의 중요한 개념이다. 위키는 하와이어로 ‘빨리’라는 단어다.

그리고 ‘위키백과’의 각 페이지에서 이 단어의 개념을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을 볼 수 있다. “이 문서는 책에 관한 토막글입니다. 서로의 지식을 모아 알차게 문서를 완성해갑시다.” 앞 문장은 이 문서(웹페이지)의 ‘디렉토리(위치) 정보’이며 뒷부분은 이 단어의 설명이 만들어지는 방식이다. 인터넷에 접속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제시된 단어를 편집하고 추가 정보를 올릴 수 있다. 계속 위키백과의 정의를 따라가보자. “일반 군중들의 대규모 협업이 경제적으로 미치는 영향 및 파급효과에 대한 것을 말하는 것으로 웹 2.0 시대의 비즈니스 패러다임의 전환에 대한 이해를 밑바탕으로 하고 있다.”

위키백과의 설립 과정은 위키노믹스의 ‘효율성’을 잘 보여준다. 지미 웨일스는 1998년 백과사전의 콘텐츠 작업에 뛰어든다. 주제별 전문가와 학자들에게 급여를 주고 콘텐츠를 검토하고 승인하는 작업을 시켰다. 1년 동안 12만달러를 들인 이 프로젝트의 완성 항목은 고작 24개였다. 이 프로젝트를 용도 폐기할 즈음 직원 중 한 명이 ‘위키’를 소개했다. 그렇게 시작된 위키백과는 한 달 만에 200개의 항목을 수록하게 되고 1년 뒤에는 그 수가 1만8천 개에 이르게 된다. 현재 위키백과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보다 10배 더 방대하고 정확도 면에서는 거의 비슷하다고 한다. 웨일스는 이를 ‘다윈의 진화 과정’이라고 부른다.

이런 대중의 지혜를 모아 이익을 창출한다는 개념은 이익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대기업의 이념과 맞지 않다. 대기업들은 이런 동등체제(피어 파이오니어) 협업과 오픈 소스 전략이 신종 사회주의이며 자유 기업과 이윤 추구권에 대한 공격이라고 주장한다. 책의 진가는 여기서 드러난다. 조근조근하게 대기업 역시 ‘위키노믹스’를 활용할 때 성장을 이뤄낼 수 있다고 설득한다. 자사 컴퓨터에서만 작동하는 소프트웨어를 생산해내던 IBM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IBM은 1998년 리눅스와 아파치를 지원하면서 내리막길을 걷고 있던 회사를 되돌릴 수 있었다. 이는 비단 컴퓨터 산업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위키노믹스는 ‘프로슈머’의 전성기, 첨단과학의 공유를 통한 발전으로까지 나아간다.

원래 인터넷이 위키노믹스다. 아무도 소유하지 않고, 모든 사람이 사용하며, 누구나 서비스를 추가할 수 있다는 것이 인터넷의 황금률이다. 그런데 불법 다운로드도 여기서 ‘이론’을 건질 수 있지 않을까. 죄책감을 덜어보려고 사용하는 ‘공유’라는 말이 위키노믹스의 기본 개념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기대하지 말라. 책 전체에 뿌려진 단어 ‘혁신’ ‘가치 창조’ ‘부가가치’와 상관없는 것, ‘가치’ 없는 것들은 이 책의 분석 대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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