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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맘마’도 일본어랍니다

등록 2007-03-30 00:00 수정 2020-05-03 04:24

우리말 속 일본말 시간 여행기, 황대권의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오늘은 쪼시가 좋은 날이다. 세수를 하고 난닝구, 빤쓰 위에 메리야스 내복을 입으니 어머니께서 아침 밥상을 들여오셨다. 얼른 독꾸리 하나를 더 걸친 다음 밥상에 달라붙었다. …아침을 먹고 다시 등교 준비. 곤색 교복 우와기를 걸치고 거울을 보니 에리가 삐뚤어져 있기에 바로잡고 호꾸를 채웠다. …작은아버지는 오늘 관공서에라도 가시는지 와이사쓰에 조끼에 즈봉에 가다마이로 쭉 뽑으셨다. 옆에서 보니 삐까삐까한 게 고급 기지인 듯싶었다….”

위 글에는 일본어 낱말이 몇 개나 등장할까. 모두 15개다. 이 가운데 10개 이상을 실생활에서 사용해본 경험이 있다면, 당신은 1970년대 이전에 태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로 잘 알려진 작가이자 생태운동가 황대권씨가 새로 낸 (도솔오두막 펴냄)는 아련한 추억 속에 숨어 묘한 향수를 자아내는 우리말 속 일본말을 따라가는 일종의 시간 여행기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어쨌든 그 당시에 중국집에 들어가면 모조리 일본말을 써야만 했어. 누군가 ‘야, 자부동(방석) 던져’ 한다. 뽀이가 와서는 사람 수대로 시보리(물수건)를 나눠주고 동시에 엽차가 든 고뿌(잔)를 놓지. 사라(접시)에 요리가 담겨오면, 각자 와리바시(나무젓가락)를 들고 달려든다. 맛있게 먹고 나서는 요지(이쑤시개)로 이를 쑤시며 나오지. 그 당시 우리가 가장 즐겨 먹었던 음식은 우동, 짬뽕, 자장면, 이 세 가지였다. 반찬은 으레 다꾸앙(단무지)과 다마네기(양파) 썬 것이었고….”

미국 유학 도중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1985년부터 정확히 13년2개월을 복역한 지은이가 이 책을 쓴 것도 감옥이었다. 안동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1993년 1월31일 시작해 같은 해 5월14일까지 여동생에게 보낸 수십 편의 편지를 모은 이 책을 보면, 평소 우리말인 줄 알고 있던 말 중에도 일본말이 끼어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예를 든다면? 한국인이 ‘엄마’보다 먼저 배운다는 ‘맘마’라는 말, 이거 ‘먹을 것이라는 의미의 어린아이 말’이란다.

교도소에서 일본어 사전을 통째로 읽어가며 지은이가 대학노트에 추려낸, 1960~70년대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인 우리말 속 일본말 목록은 끝이 없다. 마당 한가운데 삼각형을 그려놓고 그 안에 있는 구슬을 멀리서 던져 맞혀 먹는 ‘깔빼기’ 놀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오야다마’(으뜸구슬)와, 일본말의 숫자 3과 우리말 ‘치기’가 어우러진 한·일 합작어 ‘쌈치기’까지. 술래잡기를 할 때 술래가 지키고 있는 ‘집’(지은이의 말대로 대개는 전봇대나 대문이었다)에 먼저 다가선 친구가 소리친 ‘야도’는 단순히 숙소나 집을 뜻한단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할 때면, 출발선에 ‘나라비’(늘어섬)로 서서 쪼그리고 있다가 선생님이 흰 깃발을 치켜들며 ‘요이(준비) 땅’ 하면 출발하곤 했다. 당구장에선 ‘후로꾸’(요행수)와 ‘겐세이’(방해)가 난무하고, ‘히네루’(비틀다·돌리다)는 ‘입빠이’(가득) 줘야 하는 법이다. ‘무데뽀’(무턱대고 밀어붙이는 행동) 정신으로 무장한 이들은 ‘야마’(산)가 돌면, ‘곤조’(근성)나 ‘뗑깡’(막무가내로 조르기)을 부린다.

독재 시절의 부패상은 서민들도 ‘와이로’(뇌물)를 쓰게 만들었고, 그 시절에도 음료수는 역시 ‘히야시’(냉장)가 잘돼야 했다. 매사에 ‘단도리’(마무리)를 잘해야, 주변에서 ‘야지’(야유·놀림)를 놓는 일이 없는 것도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지은이는 “1700여 쪽이 넘는 (일본어) 사전을 한장 한장 넘기면서 일본말로 얼룩져 있는 나 자신의 언어 세계와 언어를 통해 우리의 굴곡진 역사를 어느 정도 들여다볼 수 있었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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