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여학생’에 대한 이중적 시선을 발견하는 <신여성>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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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여성>(연구공간 수유+너머 근대매체 연구팀, 한겨레신문사 펴냄)은 1920년대 잡지 <신여성> 기사를 통해 근대적 ‘여성의 발견’을 찾아 떠난다. 이런 여행은 이제 우리에게 익숙하다. 한국의 모더니티가 학문적인 관심영역으로 떠오르면서, 근대 형성기의 시공간으로 ‘잠행’하는 책들이 많이도 쏟아져나왔다. <신여성>은 근대성의 한 범주로 다뤄져왔던 여성을 중심 주제로 내세워 우리의 근대 담론 전체를 공격한다. 근대의 주술을 풀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시도해볼 만한 한판 굿이다.
1920년대 <신여성>은 주로 ‘여학생’을 겨냥해서 기획됐다. 당시의 여학생이란 단순히 학교를 다니는 여자를 가리키는 지시어 이상의 의미다. 거리를 활보하고 다른 스타일과 다른 소비와 다른 삶의 방식을 가진 전혀 새로운 존재였다. 필자들은 이 여학생을 둘러싼 식민지 남성 주체들의 이중적 시선을 포착한다. 여학생은 문제적 대상으로, 시시비비의 대상으로 끊임없이 등장한다.
남성적 시선은 여학생에게 ‘순정함’이라는 윤리적 기제를 작동시킨다. 자칫 ‘풍기문란’의 함정에 빠질 수 있는 여학생에게 ‘불온한’ 하숙생활보다는 저 유명한 ‘B사감’ 같은 이들이 선도하고 있는 기숙사가 권장된다. ‘꼬이는 남성’과 ‘꼬임을 당하는 여성’이라는 이분법 속은 여학생을 미숙하고 허약한 존재로 바라본다. 새로운 시대를 담보해야 할, 그러나 끊임없이 선도하고 계몽해야 할 존재. 여기에 여성에 대한 이중적 시선이 있다.
이렇게 짧은 치마저고리와 단발머리로 상징되는 여학생의 스타일은 ‘허영’으로, 진고개(지금의 명동)와 데파트(백화점)를 들락거리는 신여성은 ‘사치’로 규정된다. 여학생에 대한 소문과 폭로가 인기를 끈다. ‘은파리’라는 필명은 여학생과 당시 유명 여성 인사들에 대한 관음적 시선을 지면에 그대로 담는다. 이때 여성은 대체로 사치와 향락에 물들어 정조를 버리는 조롱의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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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생은 자유연애의 상징이었다. 사회적으로 자유주의 연애론과 사회주의 연애론이 득세하는 시기였음에도, 정작 여성의 실제적 삶을 이야기할 때는 도덕적 규범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신여성> 필자들은 이론의 차원에선 누구보다 엄숙하게 연애의 중요성을 설파하지만, ‘성적 미숙아’나 수치심을 가진 존재라는 여성에 대한 편견을 버리지 않는다. 여기서 과학은 중요한 역할을 떠맡는다. 연애감정과 성욕에 대한 과학적 견해는 여성을 이상적인 결혼과 가정이라는 “흡수력 좋은 스펀지”로 빨아들인다.
‘가정학’이라는 과학은 여성을 모성에 가두게 된다. 이제 여성은 이상적인 가정과 육아를 위한 과학의 훈육을 받아야 한다. ‘좋은 어머니’가 되기 위해선 아이에게 젖을 먹이거나 음식을 만들어줄 때도 엄격한 규율을 따라야 했다. ‘근대적 여성’의 탄생은 이렇게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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