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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늙은 개를 보면 눈물이 난다

등록 2005-10-14 00:00 수정 2020-05-03 04:24

애완동물을 통해 인간의 삶을 돌아보는 <개를 기르다>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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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단순한 사실이지만, 사람이 개를 버려도 개는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 개는 몽둥이에 두개골이 으스러지고 불에 그슬리기 직전에도 주인에 대한 믿음을 거두지 않는다. 도대체 왜 그런 바보 같은 습성을 지니고 사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그 믿음을 비웃지는 말아야 한다.

<아버지>에 이어 만화가 다니구치 지로의 <개를 기르다>(청년사 펴냄)가 나왔다. 다니구치 지로의 만화는 착하다. 만화도 형식의 기교를 부리지 않고 이야기 중심으로 흐른다. 좁은 칸 안에 빼곡히 들어찬 글자들이 답답해 보일 정도다. 그러나 그의 만화는 심심하지 않고 읽을수록 이상하게 빠져들게 된다. 그것은 ‘진실됨’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잰 체하거나 계몽에 치우치지 않는다. 개인의 체험에 바탕을 둔 이야기가 물이 흐르는 듯 자연스럽게 전개되고, 거기에 은은한 서정성이 배어 있다.

만화의 첫 번째 주제는 ‘죽음’이다. 그 이야기가 가장 인상적이다. 만화 속 화자는 열네살 된 개 ‘마루’를 기르고 있다. 마루는 너무 늙어 네 다리로 서 있기도 힘들지만 화자 부부는 개를 부축해 꼬박꼬박 산책을 시킨다. 마루가 비틀비틀 걸을 때마다 그들은 지나간 옛 생각에 빠져들게 된다. 마침내 마루는 발작을 일으켰고, 링거를 맞으면서 한달 가까이 생명을 유지하다 조용히 숨을 거둔다. 화자는 말한다. “산다는 것, 죽는다는 것, 사람의 죽음도 개의 죽음도 마찬가지였다.”

두 번째 주제는 아마도 생명의 탄생이 아닐까 싶다. 탐을 잃은 부부는 엉뚱하고 게으른 고양이 ‘보로’를 입양한다. 보로는 집에 들어올 때 이미 임신한 상태였다. 그 게으른 고양이가 과연 새끼들을 잘 키울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보로는 놀라운 애정을 보여주며 새끼들 돌보기에 열심이다. 부부는 즐거운 마음으로 어미 고양이의 모성애를 바라본다. 그러다 결국, 다른 사람에게 줄 새끼마저 떠맡아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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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주제는 성장이다. 부부의 집에 어머니의 재혼 이야기 때문에 토라진 조카가 놀러온다. 말이 “놀러왔다”지 실은 가출이었다. 조카는 고양이들과 놀며 상심한 마음을 치료해간다. 결국 아이는 어머니의 재혼을 인정하고 도쿄로 돌아간다. “어른이 되면… 흘러가는 시간과 아이의 빠른 성장에 깜짝 놀라곤 한다.”

이 만화는 애완동물을 통해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려 한다. 죽어가는 개를 기르며, 새끼를 키우는 고양이를 보며, 인간은 삶과 죽음의 반짝이는 아름다움과 여운을 느낀다. 애완동물을 통해 인간이 위안과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은, 감정이입이 아니라 소통이다. 그것은 마음이 열린 사람들만이 동물에게 받을 수 있는 귀중한 선물이다.

당신은 열넷, 열다섯살이 된 개를 길러본 적 있는가. 집을 지키거나 주인에게 애교를 부릴 기운을 잃어버린 채 앙상한 갈비뼈를 드러내고 있는 개. 그러나 주인에게 보내는 믿음의 눈빛만을 흔들리지 않는다. 당신은 그 개 앞에서 이렇게 중얼거릴 것이다. “너를 지켜보고 있자니 그저 눈물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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