는 무엇을 해부하고 있는가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강성민 지음, 살림 펴냄). 3300원에 붉은 커버를 씌운 얇은 책은 날렵한 단도 같다. 물론 책이 찔러대는 곳은 학계의 온갖 금기들이다. 이 금기들에는 오랫동안 ‘고질적 병폐’라는 지탄을 받고 이제는 그 비판의 수사마저 닳고 닳아서 신선하지 않은, 이를테면 ‘대한민국 입시제도’와 같은 처지의 문제들도 포함된다. 책은 스승 비판, 전공 불가침, 딱딱한 논문 형식 등 잘 알려진 주제부터 파고들어간다. 그런데 으레 거쳐가기 마련인 우회로를 버리고 ‘단도직입’의 길을 선택하기 때문에 매우 날카롭게 보인다. 학술기자인 지은이는 서문에서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는 학계의 ‘무의식’을 다루고 싶었다고 말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학계의 금기들을 제외하고 이 책에서 가장 논쟁적인 비판들을 살펴보자. ‘진보 없는 보수, 보수 없는 진보’라는 장은 보수와 진보가 맞대결을 거듭하고 있는 세상에서 한쪽 진영이 다른 진영의 생각을 품더라도 표현할 수 없는 현실을 비판한다. 그는 특히 ‘진보 순결주의’에 의혹의 눈길을 보낸다. 이것이 학술 연구에 반영되면 많은 창의적 추론들이 ‘내부 강령’에 의해 배척된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이념적 강박을 버리고 진보 안의 보수와 보수 안의 진보를 고민하자고 제안한다.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생태주의도 도마에 오른다. 생태주의자들은 다른 집단과의 비평적 대화를 시도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는다. ‘공공의 적’인 개발주의자들에게 비판을 가하는 데 골몰하느라 내부의 한계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설령 인식한다 해도 내부의 인력을 통해 시도할 뿐이라는 것이다. ‘문화비평에 문화는 없다’는 매체마다 난무하고 있는 문화비평을 다룬다. 전문성 부족, 이해타산에 제한된 글쓰기나 유희적인 문화 합리화, 하위 문화 코드에 대한 무비판적 유통 등이 비판의 핵심이지만, 개별 평론가들에 대한 언급이 더 재미있다. 인디음악의 대부였던 김종휘는 영화비평에 대한 메타비평을 연재해왔으나 ‘뭔가’ 마찰이 있었는지 기자들과 영화평론가의 견해를 종합해주는 수준으로 전락했고, TV 진행자로 나서는 등 정체성이 혼란스럽다는 지적을 받는다. 진중권에게는 “쓴소리를 막 해대도 상관없는 정치판에서는 소신 있게 행동하면서 왜 연성의 물렁물렁한 글들이 넘쳐나는 문화판에 대해서는 모르는 척하면서 섞여드는가”라는 쓴소리를 돌려준다.
이 책의 아쉬운 점은 너무 날렵하다는 것이다. 비판을 툭툭 던져놓는 짤막한 에세이는 그 주제의 진지함을 소화하기에 부족하다. 예컨대 생태주의를 비판할 때 고구려사와 새만금 갯벌 투쟁에서 똑같이 ‘소유’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본다든지, 지역자치운동은 뭉쳤다 흩어졌다를 반복하면서 노마드적으로 존재해야 한다든지 하는 논지들은 논란의 소지가 있음에도 치밀하고 꼼꼼하게 따져들지 않는다. 그래서 지은이는 생태주의의 담론 상황이 아니라 생태운동 자체를 못마땅해하는 것은 아닌지 오해를 할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문화비평에 대한 글도 그 폭이 넓은 만큼 세밀한 진단이 필요한데, 이리저리 비판만 나열하다 보니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갈피를 잡기 힘들어진다.
어쨌든, 나와야 할 책이 나왔다. 학문을 사랑한다면 “이 글을 읽은 모두가 유쾌하지 못했으면 하는 바람이다”라는 지은이의 말대로 책을 사서 ‘불쾌한’ 경험을 해보시라. 책값도 싸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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