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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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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넌센스] 30불 중에서 3불만 고르세요

등록 2004-10-21 00:00 수정 2020-05-03 04:23

▣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국정감사란 국정의 ‘구멍’을 찾는 게임이다. 아니, 무차별하게 뒤지는 게임이다. 자신의 질의 차례만 되면 막말과 윽박지르기로, 없는 ‘구멍’에 억지로 골프공을 들이대는 몰지각한 의원님들 많다. 이분들의 특징은 자기 순서만 끝나면 ‘귓구멍’을 닫고 ‘콧구멍’을 파거나 존다는 것이다. 피감기관의 고위 공무원들은 간과 쓸개를 다 꺼내놓는 게 ‘감사용’(슈퍼스타 아님) 자세다. 그래봤자 의원들에게 “국정에 감사하다”는 말 듣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확률과 같다. 의원들의 목표는 언제나 장관들이 ‘쥐구멍’ 찾는 자세로 쩔쩔매며 몰리는 것일 뿐.
이참에 구멍과 인간을 사색한다. 허점 하나 없는 무균질 인간은, 때로 재수없다는 비난의 표적이 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구멍 보이는 인간이 아름답다. 멍~하게 실수도 하고 새는 맛이 있는 이에게 우리는 삶의 여백을 느낀다. 구멍은 추억이기도 하다. 개구장이 시절, 학교 담벼락엔 ‘개구멍’이 있어 아이들은 숨을 쉬지 않았던가. 도시인들이여, 쇼핑할 땐 대형 할인점만 찾지 말고 동네 ‘구멍가게’도 이용하자. 활활 타오르는 ‘연탄구멍’처럼 따뜻한 세상을 위하여… .
‘입가심’을 꼭 해야 하는가. 1차로 소주 마신 뒤 반드시 2차로 맥주 마셔야 하는 주당들이 있다. 잘못하면 ‘맛가심’의 주인공 된다. ‘2차’는 넘어선 안될 선을 노골적으로 은유하기도 한다. 거래처와의 1차 술자리 뒤에 이어지는 성접대. 여기서의 ‘2차’는 성매매특별법으로 ‘쇠고랑차’다. 마지막으로, 가기 싫어도 꼭 가야 하는 2차! 1차 건강검진 뒤 ‘2차 소환장’이 발부될 때다. ‘입 가시는’ 2차가 아니라 ‘위 가시는’ 2차로 이어질 수 있다. 내시경!!
열린우리당은 ‘4대 개혁입법’ 당론을 확정했다. 이것이 1차에 통과될까 보수세력은 떨고 있다. 반대편 시민단체쪽에선 다른 아쉬움이 있어 2차를 가잔다. 어찌할 것인가. 헷갈리는 여당은 이런 마음을 먹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2차 요구, 모른 척 하고 뻥차!!”
몇살을 먹었든, 당신의 귀에는못이 박혀 있을 것이다. 인생을 살아오며 들어온 숱한 “하지 말라… 하지 말라”. 교육인적자원부의 3불정책 발표를 보며 그동안 온갖 곳에서 들은 잔소리가 떠올랐다. 그래서 그것들을 정신없이 나열해보았다. 당신이 신문을 보고 산다면, 다음 30불의 숲에 숨어 있는 3불을 찾을 수 있을 게다. “이불에 오줌 싸지 마, 이유 없이 칭얼대지 마, 방 좀 어지르지 마, 반찬투정 하지 마, 남의 숙제 베끼지 마, 수업시간에 잡담하지 마, 밤에 피아노 치지 마, 돈다발로 수능 대신하자고 떼쓰지 마, 노상방뇨하지 마, 공공장소에서 핸드폰으로 떠들지 마, 소리 내서 껌 씹지 마, 스팸메일 뿌리지 마, 화장실에서 보던 신문 바닥에 놓고 나오지 마, 필름 끊어질 때까지 술 마시지 마, 대학 본고사 부활하게 해달라고 고사 지내지 마, 어른한테 대들지 마, 채팅으로 아무나 만나지 마, 인터넷 자유게시판에서 중상모략하지 마, 횡단보도 빨간불에 건너가지 마, 침 아무 데나 뱉지 마, 음주운전하지 마, 여인숙에서 혼숙하지 마, 신용카드 미친 듯 긁지 마, 영화상영중 커피 들고 입장하지 마, 연애하면서 양다리 걸치지 마, 남 뒷다마 까지 마, 살기 어렵다고 강물에 퐁당하지 마, 고교간 학력격차 인정해줘야 한다고 신문사에 전화 걸어 기자들 귀찮게 하지 마, 돈주고 성매매하지 마, 지금 보시는 것처럼 잔머리 굴려 기사 쓰지 마….” 불, 불, 30불… 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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