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아이가 아프면 온 가족이 아프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함께 4대 중증질환 앓는 아동 있는 103가구 사례 분석. 부모와 형제자매, 우울증·분리불안 등 시달려… 병원비 대느라 ‘빚더미’ 걱정도
등록 2016-05-04 16:16 수정 2020-05-03 04:28
희귀난치병 ‘길랭바레증후군’을 앓고 있는 신애(12)는 한 달에 두세 번 경기나 고열로 구급차를 타고 병원을 찾는다. 4월18일 폐렴 증세를 보인 신애는 2주간 입원했다. 엄마가 끼워준 알록달록한 구슬 팔찌 아래로 항생제·항히스타민제 등 약이 들어가는 주삿바늘이 꽂혀 있다. 류우종 기자

희귀난치병 ‘길랭바레증후군’을 앓고 있는 신애(12)는 한 달에 두세 번 경기나 고열로 구급차를 타고 병원을 찾는다. 4월18일 폐렴 증세를 보인 신애는 2주간 입원했다. 엄마가 끼워준 알록달록한 구슬 팔찌 아래로 항생제·항히스타민제 등 약이 들어가는 주삿바늘이 꽂혀 있다. 류우종 기자

엄마는 하루 중 짬이 날 때면 색색의 고무줄로 딸의 머리를 묶어준다. 양 갈래로 나눠 묶고, 나눠 묶은 머리를 다시 땋아 ‘삐삐’를 만든다. 머리핀도 매일 다르게 꽂는다. 팔목에는 알록달록한 구슬 팔찌를 끼운다. 구슬 팔찌 아래로 각종 항생제·항히스타민제 등 약이 들어가는 주삿바늘을 고정하는 반창고가 붙어 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12살에 신생아가 되어버린 ‘삐삐’</font></font>

4월26일, 엄마 홍순금(46)씨와 신애가 다시 서울대 어린이병원에서 생활한 지 8일째다. 4월18일, 폐렴 증상으로 고열이 나 구급차를 불러서 왔다. 지난해 8월 퇴원한 뒤 한 달에 두세 번은 열이 나거나 경기를 일으켜 구급차를 불러 병원에 온다.

3년 전, 신애는 소녀시대 노래를 따라 부르며 춤도 곧잘 추는 개구쟁이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꾸미는 걸 좋아했다. 2013년 11월 중순, 아이가 갑자기 술 취한 사람처럼 갈지자로 걸었다. 병원에 갔더니 10만 명 중 한 명이 걸린다는 ‘길랭바레증후군’이라고 했다. 병원 3곳을 옮겨다니며 확진받는 데만 한 달이 걸렸다.

길랭바레증후군은 말초신경에 염증이 생겨 신경세포를 둘러싼 절연물질이 벗겨지면서 발생하는 급성 마비성 질환이다. 다리 쪽이 마비되기 시작해 예후가 좋지 않으면 상체 쪽으로 마비 증상이 올라온다. 호흡기까지 염증이 침범하면 숨쉬기도 어렵다. 신애는 벤틸레이터를 달아 호흡에 도움을 받는다. 매 순간 산소가 폐에 제대로 가고 있는지 산소포화도를 체크하는 기계도 연결하고 있다.

잘 버티던 신애 엄마의 가슴이 훅 무너진 건 지난해 2월이었다. 2013년 11월 쓰러진 뒤 1년간 입원하면서 신애는 많이 회복했다. 휠체어에 앉아야 했지만, 혼자서 밥도 먹고 의사표현도 했다. 그러다 지난해 2월19일 경기를 일으키며 호흡곤란 증세를 보여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에 왔다. 곧바로 중환자실에 가서 한 달 입원했다. 곧잘 말도 하고 인지능력도 있던 아이에게 뇌병변이 왔다. 그때부터 12살 신애는 신생아가 됐다. 앉아서 생활하던 아이는 누워서 생활했다. 깨어 있어도 눈만 끔벅이고 입을 오물댔다. 밥은 콧줄을 통해 매일 ‘밀크맛 영양제’를 먹는다.

엄마는 월 250만원을 받고 8년 동안 다녔던 세무사 사무실을 관뒀다. “맥이 풀려서 아무것도 못하겠더라고요.” 신애의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엄마는 매일 수십 번 가래를 뽑고, 벤틸레이터 연결 호스에서 공기가 새지 않는지 확인하며 기저귀를 갈고 몸을 뒤척여주고, 딸이 좋아하던 대로 머리를 묶어준다.

딸이 아프자, 가족 모두가 아팠다. 신애 아빠는 심각한 우울증을 앓았다. 지난해 2월 딸이 다시 병원 생활을 시작하면서 엄마가 일을 관두고 병간호에만 매달려 있을 때였다. “어느 날 남편이 산에 올라가서 혼자 죽을 생각도 했대요. 그 이야기 듣는데 너무 겁나더라고요.” 남편은 신경정신과에서 상담받고, 약을 먹으며 하루하루를 견뎠다. 돌봐주는 이 없던 신애 언니는 학교를 잘 가지 않았다. 지난해 유급돼 올해 다시 중학교 3학년을 다니고 있다. “아이가 아프면 그 아이만 아픈 줄 알죠. 사실 온 가족이 무너져요.”

<font size="4"><font color="#008ABD">“엄마는 아픈 오빠만 사랑해?” </font></font>
길랭바레증후군을 앓는 신애는 지난해 3월 이후 누워서만 생활하는 12살 ‘신생아’가 됐다. 오른쪽 사진은 신애의 상태가 악화되기 전 모습. 활발하고 밝은 아이였다. 류우종 기자, 홍순금 제공

길랭바레증후군을 앓는 신애는 지난해 3월 이후 누워서만 생활하는 12살 ‘신생아’가 됐다. 오른쪽 사진은 신애의 상태가 악화되기 전 모습. 활발하고 밝은 아이였다. 류우종 기자, 홍순금 제공

은 4월18~26일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함께 어린이재단에 의료비·생계비를 신청한 4대 중증질환을 앓는 18살 이하 아동이 있는 103가구의 상담 사례를 분석했다. 103가구 가운데 ‘보호자의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다’고 답한 경우가 31건에 달했다. 우울증, 공황장애, 심한 죄책감 등이 대부분이었다. 형제자매가 있는 76가구 가운데 19가구가 ‘형제자매가 분리불안, 폭력성 증대 등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대구에 사는 ㄱ(17)양은 미술 공부를 중단했다.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이 발병한 12살 동생을 치료하기 위해 엄마·아빠가 모두 서울로 가고, 집안의 모든 돈이 동생 치료비로 들어가기 시작한 직후였다. 그는 몇 달간 집에서 라면만 끓여먹으며 혼자 틀어박혀 지냈다.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단절시켰다.

ㄴ(16)양은 손목을 그었다.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동생도 희귀난치병에 걸려 엄마의 관심이 동생에게 집중되자 소외감을 느꼈다. 설상가상으로 엄마까지 교통사고가 나서 장기간 입원하게 되자 감당하기 힘든 부담감이 그를 덮쳤다.

<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50%" align="right"><tr><td height="22px"></td></tr><tr><td bgcolor="#ffffff" style="padding: 4px;"><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 bgcolor="#ffffff"><tr><td class="news_text02" style="padding:10px">
<font size="4"><i><font color="#991900"> “같이 재활하는 엄마들 보면 다 아파요. 공황장애, 분노조절 장애, 우울증…. 근데 아이 아픈 데 신경을 쏟다보니 자기 아픈 거 모르는 엄마가 더 많아요.”
-시후 엄마 김윤정씨</font></i>
</font>
</td></tr></table></td></tr><tr><td height="23px"></td></tr></table>

아픈 아동이 있는 가정의 보호자(30%)와 형제자매(25%)는 마음이 아프다. 이선영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옹호사업팀장은 “마음을 표현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실제 가족 구성원들이 심리적 고통을 겪는 수치는 더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뇌가 있어야 할 자리에 고름이 가득 들어차 우뇌가 없고 좌뇌 발달까지 지연되는 병(뇌농양)을 앓은 기현(7)이의 동생 수현(5·가명)이는 오빠가 아픈 걸 가장 먼저 알아차린다. 기현이가 한창 수술받고 치료받던 해인 2011년 수현이가 태어났다.

수현이는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엄마 품에서 떨어졌다. 오빠 치료 때문이었다. 이모, 엄마 친구, 엄마 친구의 엄마 등 친척과 지인의 집을 떠돌며 두 돌까지 생활했다. 두 돌 때부터는 같이 지냈지만, 오빠가 며칠 동안 입원하면 또 다른 누군가가 수현이를 돌보기 위해 데려가곤 했다.

그래서일까. 5살인데도 혼자서 척척 많은 일을 해내는 수현이가 갑자기 불안해하며 엄마에게서 안 떨어지거나 이불에 오줌을 싸면 꼭 기현이가 아프다. 오빠의 상태 변화에 민감한 것이다. “사실 진짜 아기는 수현인데, 저한테는 기현이가 아기처럼 느껴져서 기현이를 더 많이 감싸게 돼요. 안 그러려고 하는데 잘 안 되네요.” 수현이는 가끔 엄마에게 투정도 부린다. “엄마는 오빠만 사랑해?”라고 묻기도 하고 “엄마의 따뜻한 마음을 읽고 싶어”라고 말하기도 한다. 심각한 심리 장애를 앓지 않아도 아픈 아이들의 형제자매는 늘 엄마가 고프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103가구 중 ‘한부모 가정’ 31가구 </font></font>

가정불화도 많다. 전체 103가구 가운데 한부모 가정은 31가구였다. 아동의 발병 뒤 찾아온 경제적 부담,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배우자가 가출했거나, 이혼한 경우도 여기에 포함돼 있다.

22번 염색체가 3개인 삼염색체증에 더해 고관절탈구, 척추측만, 신생아호흡곤란증후군 등 열 손가락을 넘기는 진단명을 가진 시후(5)네도 부부싸움을 많이 했다. 경남 통영에 살면서 판소리, 장구 등 국악 교습을 했던 송현욱(38)씨는 천문학적 치료비를 감당하기 위해 낮일이 끝나면 밤일을 했다. 멸치 양식장에서 일하고 새벽 두세 시께야 집에 들어왔다. 경영학을 전공하고 무역회사를 다니며 중국·홍콩으로 출장 다니는 일이 잦았던 엄마 김윤정(38)씨는 임신 중에 영어 강사 일을 하다가 시후가 희귀난치성 질환을 앓으면서 모든 대외 활동을 못하게 됐다. 아픈 아이를 돌보는 일이 엄마 세상의 전부가 됐다. 그때부터 “남편을 들들 볶았다”고 윤정씨는 말했다.

“시후가 태어나고 40일이 지났을 때부터였어요. 아빠도 일을 두 개씩 하고 새벽에 들어와 힘든데, 저는 저대로 아이는 맨날 울지, 아이 데리고 혼자 통영에서 서울 병원으로 왔다갔다 해야지, 몸도 마음도 힘드니 늘 싸웠죠.” 당시 남편이 며칠 집에 들어오지 않기도 했고 이혼 얘기도 오갔다. 엄마는 스스로 신경정신과를 찾아갔다. 처음에는 우울증, 지금은 스트레스성 장애 진단을 받았다.

인지·작업·심리·언어 등 여러 가지 재활치료를 받고 인공와우 수술을 받아 청력을 회복하면서 시후의 인지능력이 조금씩 발달하고 있지만, 비장애 아동과 비교하면 여전히 느리다. 그나마도 하나부터 열까지 다 엄마 손을 거쳐야 한다.

우울증상은 좋아졌지만 하루 종일 아이의 재활치료 등을 위한 ‘병원 셔틀’에 매달려야 하는 상황이 크게 나아질 수 없기 때문에 ‘스트레스성 장애’는 엄마가 평생 안고 가야 하는 마음의 병이다. “같이 재활하는 엄마들 보면 다 아파요. 공황장애, 분노조절 장애, 우울증…. 근데 아이 아픈 데 신경을 쏟다보니 자기 아픈 거 모르는 엄마가 더 많아서, 또 그 안에서 마음 아픈 엄마들끼리 상처를 주고받고 그래요.”

<font size="4"><font color="#008ABD">부부가 열심히 벌어도 1년 만에 5천만원 빚더미 </font></font>
단역배우로 일하는 아빠는 짬이 날 때마다 시후를 잘 봐준다(왼쪽). ‘신연기수술’로 머리에 박았던 나사를 빼고 고정판 수술을 한 뒤 조금 좋아진 기현의 모습. 기현이가 동생 수현이가 부르는 노래를 조금씩 따라 부를 때마다 엄마·아빠는 행복하다(오른쪽). 류우종 기자

단역배우로 일하는 아빠는 짬이 날 때마다 시후를 잘 봐준다(왼쪽). ‘신연기수술’로 머리에 박았던 나사를 빼고 고정판 수술을 한 뒤 조금 좋아진 기현의 모습. 기현이가 동생 수현이가 부르는 노래를 조금씩 따라 부를 때마다 엄마·아빠는 행복하다(오른쪽). 류우종 기자

이들 가정이 겪는 마음의 병을 악화시키는 여러 요인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경제적 부담’이다. 신애네는 신애가 발병한 첫해 병원비 본인부담금만 3800만원이 나왔다. 신애가 겪는 길랭바레증후군은 분명 국민건강보험공단이 ‘희귀난치성 질환’으로 등록한 4대 중증질환에 해당한다. 그러나 전액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비급여 산정 항목과 특진비가 많다. 신애처럼 면역력이 낮아 중환자실 격리실이라도 이용하면 며칠 병원비로 수백만원이 깨지는 건 금방이다.

퇴원한다 해도 집에서 계속 돌봐야 한다. 가래를 뽑는 석션기, 기저귀, 식사로 먹는 강장영양제 등 각종 의료물품비만 1년에 1200만원 가까이 들어갔다. 정기적으로 병원 외래진료를 갈 때도 산소포화도 측정기, 벤틸레이터를 가지고 타야 해 장비를 연결한 채로 누워서 갈 수 있는 구급차를 불러야 한다. 구급차의 왕복 비용 15만원도 본인 부담이다.

개인사업자인 아빠와 세무사 사무실에서 일했던 엄마가 꾸준히 벌었지만, 1년 만에 신애 의료비로 5천만원의 빚이 생겼다. 신애가 완전히 드러눕게 되면서 엄마는 일을 그만뒀다. 지난해 (SBS), (MBC) 등의 모금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병원비, 의료용품비 등을 후원받았지만, 그마저 떨어지면 또다시 ‘부채의 늪’에 빠질까 걱정이다.

4월18~29일 입원치료한 진료비만 본인부담금으로 70여만원이 나왔다. “4대 중증질환도 (등)급이 있는 것 같아요. 길랭바레증후군은 정부가 등록해준 ‘희귀난치성 질환’에 포함돼 등록코드를 갖고 있지만, 비급여 항목이 많아 ‘뒷줄에 서 있는 희귀난치’예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난 4월20일 발표한 ‘2014년 건강보험환자 진료비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4년 4대 중증질환 보장률은 77.7%다. 2013년에 비해 0.2%포인트 올랐다. 고가의 항암제가 급여로 전환되는 등 100개 항목에 대한 급여가 확대됐다. 그러나 이 가운데 길랭바레증후군 환자인 신애에게 해당하는 급여 확대 항목은 없다. 한국 의료보장 체계에선 병에 걸린 환자가 많을수록 보장성이 높아진다. 병이 희귀할수록 보장되는 치료가 적다. 의료보장 영역에 다수결의 원리가 적용되는 것이다.

22번 염색체가 3개라는 ‘희귀난치성 질환’을 앓고 있는 시후에게는 아직 ‘희귀난치성 질환’ 코드가 부여되지 않았다. 이 질환을 앓는 이는 한국에선 시후가 유일하다. 시후 엄마 김윤정씨는 지난해 “통계청에 전화했더니 환자가 10명 미만이면 코드를 주지 않는다”는 답변을 들었다. “코드가 있으면 완전히 무료는 아니더라도 자부담률이 줄어들어요. 단지 10%라도 액수가 크면 큰돈이니까요.”

올해 3월부터는 보건복지부가 ‘희귀질환임에도 불구하고 환자 수가 적다는 이유로 산정특례 코드를 주지 않아 의료비 감면 혜택을 받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들여 통계청이 코드를 부여하지 않아도 14개 지정 종합병원에서 정해진 진단법에 따라 진단을 내리면 코드를 부여하도록 제도를 바꿨다. 시후 엄마는 이제 시후에게 ‘코드’를 부여하기 위해 서울대병원에 가서 다시 진료를 받을 계획이다. “내가 죽기 전에 시후에게 ‘22번 염색체 이상’으로 코드를 받아주는 게 목표”라고 말한다. 평생 병원 신세를 져야 할 시후를 위해 엄마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믿는다.

의료비 부담은 ‘적극적 치료’ 포기로 이어진다. 2010년 생후 100일께 기현이의 병을 알게 된 뒤, 정부가 불허한 ‘신연기수술’(두개골을 잘라 벌린 뒤 머리에 나사를 박아 고정하는 수술) 허용 운동까지 하며 적극적으로 아들 치료에 나섰던 기현이네 부모는 이젠 조금 주춤하고 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돈 때문에 ‘적극적 치료’ 포기하기도 </font></font>

건강한 아이의 두개골은 7~8살까지 계속 자라다가 그 이후 뼈가 붙는데, 기현이의 두개골은 일찍 붙어버렸다. 이 때문에 뇌가 숨을 쉬지 못하는 두개골유합증이 발병했다. 신연기수술을 세 차례 시행했다. 수술 뒤 뼈막이 생기지 않아 다시 뇌를 받치는 고정판을 넣는 수술을 했다. 기현이 머리에는 현재 15개의 고정판이 들어 있다. 앞으로 고정판이 제대로 자리하고 있는지 검사하고 뇌압을 측정해야 한다.

그러나 기현이 부모는 “이제 뇌압은 그만 측정하고 싶은” 심정이다. 뇌압 검사를 하면 항상 뇌압이 높게 나왔고, 그때마다 수술해야 했다. 지난해 기현이의 아주대병원 본인부담 의료비만 981만2550원이었다. 기현이네 역시 후원 방송에 출연해 ‘온정으로 모인 돈’에 기대 의료비를 치렀지만, 남은 후원금 400만원이 의료비로 모두 소진된 뒤의 일이 걱정이다. “뇌압 검사를 하면 또 수술해야 할 거고, 그러면 기현이는 (질환 특성상) 봉합이 안 돼 입원 기간이 길어질 테고, 그러면 의료비가 다른 아이들의 갑절로 나와요. 기현이 몸도 힘들고, 동생도 있는데….”

길렝바레증후군을 앓고 있는 신애의 엄마도 비슷한 말을 했다. “신애가 열나고 경기를 일으켜 병원에 올 때마다 아이 치료만큼 걱정되는 것이 진료비예요. 얘 또 중환자실 들어가는 거 아닌가 싶고….” 딸이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을지 염려하는 마음보다 수백만원의 의료비 걱정이 앞선다는 것이다. 그런 처지가 가련하고 그런 마음이 죄스러워, 엄마는 딸에게 그저 미안할 뿐이다.

<font color="#A6CA37">‘0~15살  아동  입원진료비를  국가가  책임지자’  캠페인… 제도화  앞서  ‘아픈  가족’  돕기  모금  시작</font>


아픈  어린이의  손을  잡아주세요


“아이의 치료비를 벌기 위해 보이기 싫은 것까지 마구잡이로 내보여야 하는 일이 상처가 됐습니다.” ‘모금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던 4대 중증질환 아동을 둔 한 가정에 인터뷰를 의뢰하자 돌아온 대답이었다. ‘모금’을 위해 가장 내밀한 개인의 건강 상태와 가족의 경제적·심리적 상황을 불특정 다수에게 내보이는 것은 사실 권장할 만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현재 한국 사회는 큰 병을 앓는 아동을 둔 많은 가정이 ‘모금’ ‘후원’ ‘온정’에 기대지 않으면 아이의 치료도, 가정의 정상성 유지도 어렵다. 어떤 가정은 상처를 감수하고 모금에 뛰어든다.
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0~15살(현 중학교 3학년) 아동의 입원진료비를 국가가 책임지자’는 캠페인을 진행한다. 이 의제는 지난 2월 ‘세상을 바꾸는 사회복지사’,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등 59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인 ‘어린이병원비국가보장추진연대’(이하 연대)가 제기했다. 연대는 △어린이의 생명을 모금에 의존하는 나라는 나라가 아니다 △780만 명 어린이의 건강권과 생명권 보장을 위해 5152억원에 해당하는 ‘어린이 입원진료비’를 국가가 보장하라는 주장을 펼치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아이들의 생명권은 국가가 보장해야 하는 기본권이다. ‘무상급식’ ‘무상의료’ 등 보편적 복지가 유행어처럼 세상을 휩쓸고 지나갔지만, 여전히 둘 다, 특히 후자는 현실과 가깝지 않다. 은 전면적 무상의료에 앞서 우선 0~15살 아동의 의료, 그것도 더 중한 질환 치료에 쓰이는 입원진료비를 국가가 보장하자는 주장에 대해 방법을 모색하고 뜻을 모으려고 한다.
이 정책이 실현될 때까지, 은 그 설득을 위해 모순되게도 아픈 아동으로 인해 감당해야 할 경제적·심리적 부담이 큰 가족을 만나고, 가족이 처한 어려움을 말하고, 정책 현황을 보여주고 허점을 짚는 연재를 시작한다. 5월5일 어린이날부터 카카오 스토리펀딩에서도 관련 연재를 시작하며, 제도가 실현될 때까지 도움이 시급한 가정을 우선적으로 돕는 ‘모금’도 함께 진행한다.
‘모금’을 통해 어려움을 해소해야 하는 이 ‘모순’을 없애기 위해 하루빨리 ‘아동 진료비 국가 보장’이 제도화돼야 할 것이다.
<font color="#C21A1A">*<font size="4">후원 계좌</font>  농협중앙회 10573964784416 (예금주 어린이재단),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희망나눔콜센터 1588-1940</font>
취재 박수진 기자, 사진 류우종 기자, 편집 황예랑 기자, 디자인 장광석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카카오톡에서 을 선물하세요 :) <font color="#C21A1A">▶ 바로가기</font>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