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가을, 미국만이 아니라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월스트리트 점거농성에는 1%의 부유층을 제외한 99%를 대표하는 다양한 얼굴들이 모여들었다. 공립학교 교사들도 그중 한자리를 차지했다. 교사들은 ‘공교육을 살리자’ ‘우리가 99%다’ 따위의 구호를 적은 피켓을 들고 시위대에 합류했다. 미국교원연맹(AFT)과 전미교육협회(NEA) 같은 교원단체들은 공식적으로 월스트리트 점거농성에 연대했다. 교실에서는 ‘누가 99%인가’와 같은 연계수업을 진행했다. 집회에서 발언을 하고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교육을 한 교사들이 그 이유만으로 정부로부터 징계를 당했다는 소식은 외신에 등장하지 않았다.
시국선언 교사들 민첩하게 중징계한 뒤
“공권력의 남용으로 민주주의의 보루인 언론·집회·표현·결사의 자유가 심각하게 훼손되고 인권이 유린되고 있다.” “‘사교육비 절반, 학교만족 2배’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오히려 무한 입시 경쟁을 부추기는 교육정책이 강화돼 사교육비가 폭증하고 있다.” 2009년 여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정부를 비판하며 발표한 ‘민주주의 수호 교사선언’의 일부다. 한국 정부의 대응은 달랐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시국선언에 앞장선 교사들을 민첩하게 중징계했다. 성실·복종·품위유지 의무와 집단행위 금지를 규정한 국가공무원법 조항과 교원노조법상 정치활동 금지 조항이 징계의 근거였다.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지함으로써 학생을 상대로 한 당파적 선전 교육, 정치 선전만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교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한 정치적 의사 표현의 자유까지 제한하고 있다.” 당시 시국선언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정직 3개월 처분을 받은 김아무개씨 등 전교조 교사 3명이 낸 행정소송에서 서울행정법원은 2011년 2월 헌법재판소에 교원노조법 제3조의 위헌성을 가려달라고 했다. “교원의 노동조합은 일체의 정치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 교원노조법 제3조에 대해 헌재는 이미 2004년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헌재는 10년 동안 한 걸음도 진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월 헌법재판소는 교원노조법 제3조에 대해 제기한 위헌법률심판 제청 사건에서 재판관 4(기각) 대 3(각하) 대 2(위헌)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냈다. “미성숙한 학생들에게 교사의 영향력은 매우 크기 때문에, 시국선언 같은 정치적 표현 행위를 한다면 학생들의 인격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학생들의 교육받을 권리가 중대한 침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같은 제한이 과도하다고 볼 수 없다.” 합헌 결정을 내린 이유다.
김이수·이정미 재판관은 반대 의견을 통해 “국가정책에 대한 공무원 집단의 비판 행위라 하더라도 그것이 국가 전체의 공익을 위한 건전한 비판 행위로서 부분 이익을 꾀하는 파당적 행위라고 볼 수 없는 경우에는 이는 장려되고 보호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대 의견 “장려되고 보호되어야”
“공무원의 정치적 기본권이 확대되어야 한다는 당위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전교조와 공무원노조의 주장이 아니다. 2012년 12월 헌법재판소가 간행한 논집에 실린 ‘공무원의 정치적 기본권 연구’의 한 대목이다. 이 간명한 당위를 인정하면서 ‘이론’의 여지만을 밀어붙인 것은 자기기만이다. 헌법재판소야말로 ‘이론의 여지가 없는 당위를 정치의 논리로 미뤄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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