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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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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장에 빼앗긴 땅에 봄은 오는가

헌재, 지역균형개발법 근거로 골프장 건설 위해
강제수용 승인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취지의 헌법 불합치 결정 내려
등록 2014-12-18 14:46 수정 2020-05-03 04:27

경남 남해의 한 아름다운 골프장엔 강제수용된 땅이 숨겨져 있다. 넘실대는 남쪽 바다 옆에 들어선 남해 사우스케이프오너스클럽은 국내에서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골프장 리조트다. 개장할 때부터 건축가들은 리조트를 칭찬했다. 부드러운 곡선을 가진 건물은 자연과 어울리며, 통유리창 내부에선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고급 스피커 시스템이 음악을 흘려보냈다. 독립된 각각의 호텔 방은 욕실과 침실 등에 최고급풍 인테리어를 갖췄다. 많은 비용을 들여도 최고급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부유층을 위한 시설이다.

고급진 리조트, 그 아래 짓밟힌 삶
그러나 이 골프장이 남해의 땅을 차지한 배경은 조금 다르다. 이 골프장이 위치한 지형은 바다의 아름다운 풍광을 품고 있어 원주민들이 포기하기 어려운 곳이다. 시행사인 한섬피앤디도 골프장 개발을 위해 이곳에 400여 평의 땅을 가진 곽아무개씨와 보상 협의를 했지만 협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민간 시행사는 법을 들이댔다. ‘지역균형개발 및 지방중소기업 육성에 관한 법률’(지역균형개발법)을 근거로 경남지방토지수용위원회에 수용을 신청해 2010년 12월 강제수용을 승인받았다. 지역균형개발을 위한다는 이 법 제19조 1항은 “시행자는 지구개발사업의 시행에 필요한 토지 등을 수용 또는 사용할 수 있다”고 돼 있다.

헌법재판소는 민간 개발자가 골프장을 만들면서 다른 사람의 땅을 강제수용할 수 있게 한 ‘지역균형개발 및 지방중소기업 육성에 관한 법률’ 조항에 헌법 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경남 남해에 위치한 사우스케이프오너스클럽. 사우스케이프오너스클럽 누리집 갈무리

헌법재판소는 민간 개발자가 골프장을 만들면서 다른 사람의 땅을 강제수용할 수 있게 한 ‘지역균형개발 및 지방중소기업 육성에 관한 법률’ 조항에 헌법 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경남 남해에 위치한 사우스케이프오너스클럽. 사우스케이프오너스클럽 누리집 갈무리

강제수용에 들어가자 곽씨는 2011년 7월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공익성이 낮은 사업에까지 시행자인 민간 개발자에게 수용 권한을 부여한 것은 위헌이라는 취지였다.

헌법재판소는 곽씨가 낸 헌법소원에 대해 2014년 10월30일 재판관 6 대 3 의견으로 헌법 불합치 결정을 했다. 헌재는 “고급 골프장 등이 넓은 부지에 많은 설치 비용을 들여 조성됨에도 불구하고 평균 고용 인원이 적고, 시설 내에서 모든 소비 행위가 이뤄지는 자족적인 영업 행태를 가지고 있어 개발이 낙후된 지역의 균형발전이나 주민 소득 증대 등 입법 목적에 대한 기여도가 낮다”고 했다. 이어 “사업 운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지방 세수 확보와 지역경제 활성화는 부수적인 공익일 뿐이고, 이 정도의 공익이 그 사업으로 인해 강제수용 당하는 주민들이 침해받는 기본권에 비해 기본권 침해를 정당화할 정도로 우월하다고 볼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개발업자와 건설업자, 이들과 이익을 나누는 공무원 등 이른바 ‘토건족’이 법을 근거로 민간의 땅을 강제수용하는 것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셈이다. 다만 위헌을 선고하면 공공 필요성이 있는 사업의 토지수용까지 허용되지 않는 결과가 돼 입법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운 법적 공백과 혼란이 예상된다며 법 개정 때까지 효력을 유지하는 헌법 불합치로 결정했다.

곽씨의 소송을 맡은 박종연 변호사는 “공익적 목적이 없고 영리 목적을 위해 법의 강제수용 제도가 남용되는 것을 막는 데 이번 판결의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미 수용된 땅에선 서울 등 멀리서 찾아온 관광객들이 골프공을 치고 있다. 박 변호사는 “강제수용된 땅을 되찾을 것”이라고 했다.

강제수용 가능한 법들 여전히 수두룩

박한철·김창종·강일원 재판관은 반대 의견을 냈다. 이들은 “행정기관이 시행자를 지정하고 실시계획을 승인하는 과정에서 개발사업의 공공성 유무 평가를 엄격하게 하지 않은 데 기인하는 것이지, 법률 조항 자체에 위헌적인 요소가 포함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지역균형개발법을 통해 남의 땅을 강제로 수용해 골프장을 짓는 것엔 제동이 걸렸지만, 아직 남아 있는 법들도 있다. 기업도시개발특별법이나 관광진흥법 등 다른 법률은 여전히 골프장 개발업자에게 토지수용권을 부여할 수 있다.


심사위원 20자평 ▶
오정진 개발과 공익은 애초부터 같은 것이 아니잖아요.
김성진 주거는 생존, 골프장은 돈벌이! 돈벌이를 위해 생존을 빼앗지 마라.
장완익 전국을 골프장으로 만드는 것이 지역균형개발은 아니지.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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