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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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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는 길에 머리가 많이 길었을 텐데”

김 전 대통령 전담하던 ‘동교동 이발사’ 주영길씨
“처음엔 무서웠지만 갈수록 편해져… 수심 젖은 최근 모습에 마음 아파”
등록 2009-08-25 12:54 수정 2020-05-03 04:25

서울 동교동 삼거리에서 500여m 떨어진 좁은 골목 안에 ‘우남이용원’이 있다. 누런 간판, 아귀가 잘 맞지 않는 알루미늄 미닫이 문이 가게의 첫인상이다. 이용원은 22년간 이 동네를 지키며 늙어왔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4개의 이용의자가 손님을 기다린다. 요즘 같아서는 비어 있는 시간이 더 긴 의자들이다.
8월18일 오후, 이발사 주영길(60)씨는 손님이 없는 가게 안에 화석처럼 앉아 있었다. 적막한 이용원을 시끄럽게 만드는 건 한쪽 구석의 텔레비전뿐이다. 텔레비전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속보가 흘러나왔다. 주씨는 4개 중 맨 끝 이용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지난 3년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머리를 손질해온 ‘동교동 이발사’다.

“진짜 이별이구나 싶습니다.” 지난 8월18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들은 ‘동교동 이발사’ 주영길씨가 ‘우남이용원’에 앉아 있다. 그는 자꾸 “목이 막힌다”고 했다.

“진짜 이별이구나 싶습니다.” 지난 8월18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들은 ‘동교동 이발사’ 주영길씨가 ‘우남이용원’에 앉아 있다. 그는 자꾸 “목이 막힌다”고 했다.

3년 전부터 매주 화·금요일 자택서 머리손질

하필이면 화요일이었다. 8월18일 화요일 아침, 주씨는 허전한 마음에 검정색 ‘출장 가방’을 쳐다봤다. 평소 같으면 김 전 대통령의 머리를 해드리는 날이다. 주씨는 일주일에 두 번, 화요일과 금요일 아침 9시에 동교동 자택으로 ‘출장 이발’을 갔다. 지난 3년간, 화요일과 금요일 아침에 눈을 뜨면 늘 ‘출장’ 갈 생각에 분주했다. 하지만 이젠 다시 화요일이 오고 금요일이 와도 김 전 대통령의 머리를 손질해드릴 수 없다. 속보를 듣는 순간, 주씨는 ‘이것이 진짜 이별이구나’ 싶어 목이 메었다.

‘마지막 이발’은 지난 7월10일 금요일이었다. 아침 9시에 동교동 자택에 갔다. 문 앞에서 집을 지키는 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가뿐한 걸음으로 계단을 올라갔다. 현관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가 이발실 문을 열었다. 2층 복도 끝에 3평 남짓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전용 이용원’이 있었다. 가방에서 가위와 빗을 꺼내고 이용 준비를 하고 있으니 휠체어를 탄 김 전 대통령이 들어왔다. 이용의자에 옮겨 앉게 한 뒤 거품을 내서 면도를 했다. 많이 약해진 모습이었지만 눈을 감은 표정은 편안해 보였다.

면도가 끝나면 머리를 감길 차례다. 허리가 좋지 않은 김 전 대통령은 허리를 앞으로 많이 숙일 수 없었다. 비서관이 도와 김 전 대통령을 부축한 채 머리를 감겼다. 손끝으로 지압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벌써 두 달째 이발실에 건너올 때도 휠체어를 이용했다. 어서 건강을 되찾길 바라는 마음을 손끝에 담았다.

그 다음, 주씨는 망설였다. 머리를 깎을 때가 다 돼가는데 오늘 할까, 다음주 화요일에 할까…. 주씨는 이발은 다음에 하기로 결정하고 드라이어로 김 전 대통령의 헤어스타일을 연출했다. 왼쪽으로 2 대 8 가르마를 타고 오른쪽 머리를 둥글게 띄운다. 그리고 그 위에 ‘물기름’(동백기름)을 바르면 끝이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이발이 다 끝나도록 아무 말이 없었다. 다 끝났다고 하자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그리고 사흘 뒤인 7월13일, 김 전 대통령은 폐렴 증상으로 신촌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다. 주씨는 그때 이발을 못해드린 게 마음에 걸렸다. 하루이틀, 입원 기간이 길어질수록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영화 에서 1980년대 ‘각하의 이발사’는 검정색 자동차를 탄 채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에 비하면 주영길씨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첫 만남’은 소박했다. 2006년 11월, ‘우남이용원’의 단골이던 한 신사가 “출장 이발도 하느냐”고 물었다. 주씨는 “예전엔 했는데 요새는 혼자 가게를 보니까 다른 손님이 허탕 칠 것을 생각하면 출장 가기 힘들다”고 답했다. 단골 손님은 명함을 건네며 좀더 생각해보고 연락을 달라고 했다. 명함에는 ‘김대중 대통령 비서관’이라고 적혀 있었다. 다음날 주씨는 그 번호로 전화를 했다.

“내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이발을 할 수 있다면 영광이라고 생각했죠.” 주씨는 아직도 그날의 일이 생생하다. 2006년 12월, 주씨는 검정색 손가방에 가위와 빗만 달랑 넣고 가게를 나섰다. 동교동 자택으로 오라는 전갈이었다. 천천히 걸어도 15분이면 닿는 거리였다. 골목을 나서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주씨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앞뒤로 손가방도 흔들흔들했다. 19살, 고향인 경기 일산의 한 이발소에 들어가 ‘견습생’으로 고생하던 시절부터 떠올랐다. 그때는 김 전 대통령이 신민당 국회의원으로 박정희 정권과 맞설 때였지만, 주씨는 먹고살기에 바빠 정치엔 관심조차 둘 수 없던 시절이었다. 주씨는 1999년엔 제3회 서울특별시 이용경기대회에 나가 고전형 부문 금상을 받기도 했다. 귀와 목 뒤를 깨끗하게 쳐내는 고전형을 연마한 것이 이렇게 훗날 김 전 대통령의 머리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서였다는 생각도 들었다.

전임 이발사는 강원도로 떠나게 됐다고 했다. 첫날은 전임 이발사가 이발하는 모습을 견학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인사만 나눈 뒤 별 질문이 없었다. 그렇게 ‘동교동 이발사’ 생활이 시작됐다.

복도에 불 다 켰다가 불호령 떨어져

초창기, 김 전 대통령은 ‘무서운 존재’였다. “쉽게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한동안 얼마나 덜덜 떨면서 살았는지 모른다”고 했다. 김 전 대통령은 말이 없다가도 잘못된 점은 바로 꾸짖는 스타일이었다. 처음엔 면도를 하러 김 전 대통령의 볼에 면도칼을 갖다 대는데 손이 덜덜 떨렸다. 그 손을 보더니 김 전 대통령이 말했다. “떨긴 왜 떨어?” 그 말에 더 떨렸다. 머리를 감기다가 김 전 대통령의 윗옷이 다 젖어버렸을 때는 차라리 눈을 감고 싶었다. 김 전 대통령은 “전임자는 안 그랬는데 왜 그러나”라며 주씨를 꾸짖었다. 주씨는 “이발 면허를 딸 때도 국가경진대회에 나갔을 때도 안 떨리던 손이 김 전 대통령 앞에서는 그렇게 떨리더라”고 했다.

노 전 대통령 영결식 뒤 부쩍 휠체어 의지

이발 과정만 문제가 아니었다. 처음에 자택 2층에 올라가 이발실로 들어서면서 복도가 캄캄하기에 김 전 대통령이 오는 길을 밝히려고 불을 모두 켜두었더니 불호령이 떨어졌다. “누가 복도에 전부 불을 켜놨느냐”는 호통이 들리더니 복도 끝에서부터 불 끄는 스위치 소리가 들렸다. 다가오는 김 전 대통령의 발소리를 들으며 주씨는 식은땀을 흘렸다. 양치질을 하고 가도 담배 피운 걸 알아채는 김 전 대통령 때문에 몇십년을 피우던 담배도 끊었다.

하지만 근래엔 수심에 젖은 김 전 대통령의 모습을 자주 봤다. 이발실에 휠체어를 타고 들어오는 일이 부쩍 잦아지던 넉 달 전, 김 전 대통령은 이발을 하는 주씨에게 “요즘 이발소가 잘 안 된다며?”라고 물었다. “요즘엔 남자 손님도 미장원으로 가는 바람에 이발소 수가 많이 줄었다”고 답하자 김 전 대통령은 “아, 세상이 바뀌었나 보다”라고 말했다.

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에는 더욱 말수도 줄고 표정도 어두워졌다. 5월26일 화요일에 김 전 대통령을 만난 주씨는 “서대문구청에 가서 노무현 대통령을 조문하고 왔습니다”라고 말을 건넸다. 주씨는 예전 같았으면 노 전 대통령 서거를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김 전 대통령과 알게 모르게 교감을 나누는 3년 동안 그에게도 변화가 찾아왔던 셈이다. 김 전 대통령은 주씨를 바라보며 “아, 그런가”라고만 했다. 주씨는 “어르신의 착잡한 심경이 깊게 느껴지더라”고 돌이켰다. 김 전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 영결식에 참석한 뒤로는 이발실에 올 때마다 휠체어를 타고 들어왔다.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한 날 저녁, 주씨는 이발소 문을 닫고 동교동 자택을 찾았다. 모든 게 그대로였지만 김 전 대통령도 부인 이희호씨도 거기 없었다. 뭐라도 도우려고 했지만 동교동 자택에서 할 일은 없었다. 다시 택시를 타고 세브란스병원으로 달려갔다. 장례식장에 들어서는데 기력이 쇠진한 듯한 이희호씨가 부축과 경호를 받으며 건물을 나서고 있었다. 차마 인사도 못하고 장례식장으로 들어섰다. 단정한 모습의 영정 사진을 보는 순간 다시 목이 메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는 머리를 하는 중에 손님이 와도 최대한 단정한 모습을 보이는 걸 중시했던 분”이라고 주씨는 추억한다. ‘그런 분이 가시는 길에 머리가 많이 길었을 텐데….’ 걱정을 하자면 눈물이 난다. 늘 건강하고 김 전 대통령을 잘 챙겼던 이희호씨도 걱정이다. 종종 이발실에 들러 “요 옆머리는 좀 길게 두시구려”라며 코치를 하던 부인이다. 흑갈색 염색약도 직접 선택하던 이다. 주씨는 수척해진 이희호씨의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주영길씨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화요일과 금요일 아침이 되면 허전한 마음으로 ‘출장 가방’을 바라볼 것이다.

주영길씨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화요일과 금요일 아침이 되면 허전한 마음으로 ‘출장 가방’을 바라볼 것이다.

허전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될 ‘출장 가방’

다음날인 8월19일, 주씨는 가게 문을 닫고 장애인 재활시설인 서울 은평구 구산동 은평천사원을 찾았다. 한 달에 한 번 그가 봉사활동을 하러 찾는 곳이다. 착잡한 마음이었지만 ‘머리하는 날’을 기다리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힘을 냈다. 주씨는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그는 가위질을 멈추는 날까지 누군가를 위한 이발사로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화요일과 금요일 아침이 되면 허전한 마음으로 ‘출장 가방’을 바라볼 것이다. 정치고 뭐고 잘 몰랐지만, “남북관계도 좋게 하시고 민주화를 위해 싸우고 노벨평화상까지 타신 분”과 함께 했던 3년은 그의 인생에도 긴 여운을 남길 것이다. 큰 어른을 모신다는 생각에 영광스러우면서도 늘 떨렸던 이발실의 풍경도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우남이용원’은 그렇게 한 시대를 보냈다.

글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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