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나도 김대중 대통령과 결혼하시겠어요?” 누군가의 질문에 이희호씨가 답했다. “말씀 드릴 수가 없어요.” 김 전 대통령을 포함해 그 자리에 함께 있던 모든 이들이 껄껄 웃었다. ‘네’ ‘아니요’보다 솔직한 대답이었다. 2008년 11월에 열린 이희호씨 자서전 출판기념회장에는 그렇게 웃음과 평화가 흘렀다. 이씨가 고문직을 맡은 재단 ‘사랑의 친구들’의 이정원 사무총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뒷얘기를 전했다. “선생님께 그렇게 답변하신 이유를 물었어요. 그랬더니 ‘진짜 태어날지 안 태어날지 알 수 없는데 뭐라 하겠어요’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날 사람들이 웃었던 이유와는 분명 달랐지만 대답이 쉽지 않은 질문이었음을 알 수 있는 말이었다.
1962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씨의 결혼식. 김 전 대통령은 5·16 군사쿠데타로 국회의원 당선 사흘 만에 자격을 상실한 뒤 수사기관에 불려다니는 와중에 이희호씨와 결혼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이희호씨는 정신적인 동지이자 삶의 동반자였다. 김 전 대통령이 ‘인동초’였다면, 그는 한겨울에도 잎이 지지 않도록 돕는 거름과 빛, 물이었다. 김 전 대통령이 정계에 입문해 온갖 고초를 겪는 동안 그는 늘 곁에 있었다. 사형수가 대통령이 되는 인생 드라마를 도운 것도 그다. 대통령으로 당선되던 날, 김 전 대통령은 이씨에게 “당신이 없었으면 나에게 오늘이 있었겠소?”라며 고마운 마음을 비쳤다. 시어머니와 병든 여동생, 두 아들이 있는 가난한 ‘정치 재수생’과 결혼해 47년을 살아온 이씨에게는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1922년 서울에서 태어난 이희호씨는 유복한 가정에서 많은 배움의 기회를 누렸다. 의사인 아버지와 신여성인 어머니로부터 “여자도 공부를 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으며 자랐다. 이화여전, 서울대 사범대를 나와 미국으로 유학까지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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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여성문제에 눈을 뜬 건 서울대 사범대를 다닐 때였다. 이희호씨는 갓 남녀공학으로 바뀐 국립대학에서 처음으로 우리나라 남성들에게 깊이 뿌리박힌 가부장제와 남존여비 의식과 부딪쳤다. 남녀공학에서 몇 되지 않는 여학생들은 기를 펴지 못했다. 빈 교실을 찾아 도시락을 먹고, 신입생 환영회에서는 수줍어 고개를 들지 못했다. 학교에는 남학생들이 중심이 된 묵은 관습이 많았다. 이를 불평등하다고 여겼던 그는 여학생들에게 고개를 들고 당당하게 다니라고 주문했다. 남학생들에겐 모임이 있을 때 여성들이 술 대신 마실 수 있는 사이다를 갖다놓으라고도 요구했다. 여성들이 스스로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는 사실을 남녀공학에서 깨달았다. 당시 그의 별명은 중성을 뜻하는 독일어 관사 ‘다스’(das). 늘 꼿꼿하고 당당한 모습에 남학생들도 그를 ‘누나’라 부르며 따랐다.
성평등 문제에 눈을 뜬 그는 촉망받는 여성계 지도자가 됐다. YWCA 총무를 맡고 있던 그가 김 전 대통령과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의 만류는 어쩌면 당연했다. 이희호씨의 50년지기로 한국여성재단 이사장을 지낸 박영숙씨는 “어려운 시기에 유학을 다녀온 석사로 미래가 촉망되는 여성운동가가 한 사람의 아내, 그것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정치인과 결혼하겠다니 말릴 수밖에 없었다”고 그때를 기억했다.
하지만 이희호씨의 결심은 확고했다. 1962년 5월10일,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렸다. 남녀평등 사회를 꿈꾸던 페미니스트 이희호씨는 정치인 김대중의 아내이자 동지가 됐다. 이희호씨는 자서전 에서 김 전 대통령과 결혼을 결심했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그에게 정치가 꿈을 이루는 길이며 존재 이유였다면 나에게는 남녀평등의 조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길 중의 하나였다. 남녀간의 뜨거운 사랑보다는 서로가 공유한 꿈에 대한 신뢰가 그와 나를 동여맨 끈이 되었다.”
그들에겐 달콤한 신혼도 없었다. 결혼한 지 열흘 만에 김 전 대통령은 ‘반혁명 혐의’로 체포돼 한 달여간 구치소 생활을 했다. 이후로도 신산하고 고통스러운 세월이 이어졌다. 남편은 대중에게 존경받는 정치인이었지만 독재정권에서는 눈엣가시였다. 감옥과 주택연금, 이국에서의 망명 생활 등 험난한 시간이 이어졌다. 그때마다 이희호씨는 적극적으로 남편의 억류 사실을 언론에 알리고, 구명 활동을 펼쳤다. 기도와 눈물의 나날이었다. 그 오랜 세월에 대해 이씨는 “독재는 잔혹했고, 정치의 뒤안길은 참으로 무상했다”고 자서전에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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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호씨는 대통령 부인으로서도 남달랐다. 대통령의 그림자로만 살지 않았다. 아동과 여성을 위한 일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정권 첫 해에 재단 ‘사랑의 친구들’을 만들었다. 결식아동과 독거노인 등을 돕는 일은 청와대에서 물러난 뒤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가 청와대의 안주인이 되면서 남녀가 평등한 사회를 위한 정책도 쏟아졌다. 역대 정권과 비교해 국민의 정부는 여성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를 시작으로 여성부가 만들어지고, 가족법이 개정됐다. “국민의 정부 여성정책 뒤에는 이희호가 있다”는 소문이 공공연히 들렸다. 여성 문제를 인권 신장과 민주주의 성숙의 잣대로 여기던 김 전 대통령은 이희호씨의 의견에 귀기울였다. 때론 그보다 앞서 챙겼다. 청와대 입성 전부터 동교동 집에 나란히 걸린 ‘김대중 이희호’라는 문패는 이희호씨도 생각하지 못한 거였다. 각료의 임명장 수여식에는 배우자도 초청했다. “공직을 수행하는 엄숙함을 부부가 공유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2002년 5월, 유엔아동특별총회가 열렸다. 한국이 의장국이 될 차례였다. 이희호씨는 아픈 남편을 대신해 홀로 외교순방길에 올랐다. 한복을 곱게 입은 그는 어느 나라 여성도 앉지 못했던 의장석에 앉아 회의를 주재했다. 남북 평화의 물꼬를 틀 때도, 노벨평화상을 받을 때도 그의 존재는 특별했다. 성인숙 전 청와대 제2부속실장은 “김 전 대통령이 늘 ‘존경하고 사랑하는 당신’이라고 표현했을 만큼 아내, 어머니, 국민의 어머니로 완벽했다”며 “세상 누구를 만나도 위축되지 않았고 자신을 뽐내려고도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김 전 대통령이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뜨던 날, 이희호씨는 자신이 뜬 벙어리장갑을 낀 남편의 손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지난 8월19일 빈소를 찾았던 성인숙 전 청와대 제2부속실장은 “김 전 대통령과 이별의 세리머니도 없었던 걸 안타까워하더라”고 전했다. 박영숙씨도 “인생의 동반자를 잃은 큰 상실감에 ‘미혼인 이길여 여사(경원대 총장)가 부럽다’는 말씀도 하시더라”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과 함께 고통과 환희의 양극단을 극적으로 체험한 삶을 살아온 이희호씨는 그렇게 홀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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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는 빈소에서 조문객을 맞으면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권양숙 여사가 여위었다”며 걱정하고, “장례위원회에 여성들을 많이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박영숙씨는 이희호씨를 가리켜 “한국의 엘리너 루스벨트 같은 분”이라고 말했다. 최영애 전 국가인권위원은 “이희호씨를 떠올리면 그의 걸음걸이가 생각난다”고 말했다. “불편한 다리로 조심스럽게 걷는 모습에서 소신을 따라 걸어온 흔들림 없는 인생이 느껴져 사뿐거리는 여성의 걸음걸이보다 아름다웠다”고 했다.
이희호씨의 자서전 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게 끝난다. “길고 험한 고난의 길이었지만 남편과 한 몸이 되어 서로 믿고 의지하며 굳건히 잘 걸어온 날들이었다. 남편의 평생 소원인 한민족의 평화가 빨리 정착되기를 소망한다. 아울러 또한 나의 지극한 염원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한다. 인구의 절반인 여성이 차별받지 않고 동등한 인격체로 인정받으면서 그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대한민국이 강자가 약자를 배려하고 보듬어 안아주는 따뜻한 사회가 되기를.” 남편을 먼저 떠난 보낸 지금, 그의 마음속에 담겨 있을 말 같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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