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 그린 나이 차이 큰 연상녀·연하남 커플, 현실 속에서 ‘나이주의’를 헤쳐가는 사람들
사랑은 나이보다 힘이 세다“제가 남자를 좋아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는 있었지만 역시나 나보다 훨씬 나이 많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도저히 인정하기 어려웠습니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고민상담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자신의 동성애는 인정할 수 있지만, 자신보다 나이가 ‘무척’ 많은 사람을 사랑하는 사실은 인정하기 어렵다는 고민이다. 그렇게 나이 차이가 큰 사랑은 심지어 동성애보다도 주변화된 관계이고 성적 취향이다. 세상은 20대 같은 ‘동안’의 30~40대 여성을 사랑하는 연하남의 마음을 인정하지만, 50대 같은 50대 아줌마나 60대 같은 60대 할머니에게 끌리는 청년의 마음은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차라리 공포에 가까운 관계다. 그렇게 나이는 힘이 세다. 그러나 어딘가에서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마침내 한국 영화는 말한다.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미안해 여보, 나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어.”
남편이 부인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부인이, 그것도 쉰 살인 부인이 20년 넘게 한 이불을 덮고 살아온 남편에게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이렇게 한마디 던지고 오밤중에 이불을 박차고 벌떡 일어나 방을 나간다. 그가 버선발이다시피 허겁지겁 뛰어가는 곳은 하숙생 청년의 문간방이다. 그리고 실루엣으로 21살 차이의 하숙집 아줌마와 하숙생 청년이 ‘암수 서로 정다운’ 자세로 안다가 급기야 방바닥으로 뒹구는 모습이 보인다. , 현재 개봉 중인 영화의 한 장면이다.
딸의 옛 애인과 사랑에 빠진 엄마
그녀의 이름은 봉순(김해숙)씨. 동네 사람들에게는 봉순씨가 아니라 정윤이 엄마로 기억되는 전형적인 한국 엄마이자 무표정한 한국 아줌마. 그렇게 표정 없는 세월을 살아온 그녀의 얼굴에 낀 기미는 그녀가 견뎌낸 세월의 증거다. 의 시나리오를 쓴 박윤 작가의 말대로 “특별히 즐거울 것도, 특별히 화나는 것도 없이 인생을 견뎌온 봉순씨”에게 늦사랑이 찾아온다. 하필이면 상대는 봉순의 집에 세든 하숙생이자 딸의 애인이었던 구상(김영민). 문제는 구상과 결혼하려던 딸 정윤(김혜나)이 갑자기 취직을 했다며 집을 나가면서 생긴다. 딸의 가출로 구상은 버려진 신세가 되고 술에 취해 동네 골목에 쓰러진 구상을 봉순이 부축해 방으로 데려다준다. 구토물이 묻은 구상의 몸을 닦아주다가 봉순과 구상은 뜻밖의 ‘사고’를 치게 된다. 구상에 대한 봉순의 측은지심은 연정으로 바뀌고, 급기야 봉순은 임신까지 한다. 그리고 선언한다. “나한텐 뒤늦은 보물”인 아이를 지우지 않겠다고.
그녀의 사랑은 소 같은 사랑이다. 의 오점균 감독은 “소처럼 일하던 아줌마가 소처럼 사랑한다고 생각했다”며 “소처럼 뚜벅뚜벅 나아가는 봉순씨의 사랑을 아무도 막지 못한다”고 말했다. 남편(기주봉)의 만류를 뿌리치고 동네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딸의 애원에도 멈추지 않는 봉순씨의 사랑은 너무나 무지막지해서 어떠한 현실도 이상한 무중력의 상태로 무력화해버린다. 심지어 그녀의 ‘무데뽀’ 사랑에 웃음마저 나온다. 하지만 봉순씨는 울지도 않지만 웃지도 않는다. 가끔씩 구상씨 앞에서 살짝 수줍은 표정을 보이는 정도가 세월을 견뎌온 그녀에게 가능한 최대치의 표현법이다. 하지만 그녀의 사랑은 거침없다. 그리하여 수줍게 고백한다. “나는… 나는… 그냥 니가 좋아.” 일찍이 조실부모하고 착실하게 세탁소를 운영하며 살아가는 구상씨가 대답한다. “나도 좋아요.”
이제 더 이상 연상녀·연하남 커플은 화젯거리가 아니다. 케이블방송 tvN의 리얼리티 프로그램 등 대중매체에 연상연하 커플이 넘쳐난다. 현실에서도 연상녀·연하남 부부는 늘고 있다. 전체 결혼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꾸준히 증가해 1999년 10%를 넘어섰고 2006년엔 12.2%에 달했다. 이제 서너 살 차이가 나는 연상녀·연하남 커플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이렇게 연상녀·연하남 커플을 지칭하는 ‘쿠거’(Couger) 열풍이 불고 있다.
외국엔 10살 이상 차이 나는 쿠거족 유명인도 적지 않다. 18살 차이의 데미 무어(44)와 애슈턴 커처(26) 부부를 필두로 10살 차이의 마돈나와 가이 리치 커플 등이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해왔고 최근에는 제니퍼 애니스톤과 올랜도 블룸 등 쿠거족 커플이 잇따라 탄생하고 있다. 이것이 할리우드만의 현실은 아니다. 2003년 미국은퇴자협회 조사에 바탕하면 40~69살 미국 여성 3명 중 1명이 연하의 남자친구를 사귄다고 밝혔다. 더구나 그중에서 4분의 1은 나이 차가 10살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2005년 딸의 애인과 사랑에 빠져 성관계도 가지는 엄마의 얘기인 영국 영화 가 개봉했을 때만 해도 그것은 먼 나라 얘기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제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2006년 개봉한 에는 고두심이 20살 이상 차이 나는 배우인 엄태웅과 부부로 출연했고, 현재 방영 중인 문화방송 드라마 에는 42살 연상녀와 30살 연하남의 띠동갑 커플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하지만 10살 이상 차이 나는 연하남과 사랑하는 세상의 ‘봉순씨’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한국이 ‘나이주의’가 강력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나이를 중심으로 사람의 관계가 결정되고 인생의 시간표마저 엄격하게 관리되는 나이주의 대한민국에서, 나이 차이가 큰 연상녀·연하남의 사랑은 불가능한 도전에 가깝다. 사랑에 국경은 없다지만, 나이의 장벽은 있는 탓이다. 그래도 여전히 ‘봉순씨’들의 무한도전은 계속된다.
서로 못 떠나는 49살 최씨와 27살 ‘그’
올해로 49살인 최정선(가명)씨가 그를 만난 지도 어느새 7년이 흘렀다. 당시 경기 안양에서 장사를 하던 최씨는 이혼한 뒤에 중학생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잠시 장사를 쉬는 사이에 그는 백운산 인근의 카페촌에 아르바이트를 나갔다. 거기서 일하던 청년인 김정훈(가명)씨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김씨는 군대를 마치고 그곳에서 일하고 있었다. 당시 김씨의 나이는 27살. 최씨보다 15살 어렸다. 화통한 성격의 최씨는 김씨와 때때로 술친구로 어울렸고 점점 가까워지던 어느 날 잠자리를 같이하게 됐다. 10년 넘게 결혼생활을 했지만 성적 쾌락을 몰랐던 최씨는 김씨와의 관계에서 첫 쾌감을 느꼈다. 아마도 그것은 의 오점균 감독이 봉순씨의 감정에 대해 “첫사랑의 설렘”이라고 생각한 것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한국에는 평생 사랑을 못하고 살아온, 성적 쾌락에 뒤늦게 눈뜨는 중·장년 여성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한때 같이 살았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혼자 살아온 김씨는 장사를 하느라 생활이 불규칙했다. 그런 김씨가 최씨는 늘 안타까웠다. 두어 해 살면서 살림을 돌보아주었지만 사흘에 한 번은 끼니를 거르는 김씨를 더 챙기고 싶었다. 그동안 자라서 고등학생이 된 딸의 양해를 얻어 김씨를 집에 들였다. 하지만 쉽지가 않았다. 사소한 오해는 잦은 다툼으로 이어졌고 결국은 따로 살기로 결정했다. 김씨가 멀리로 이사를 갔지만 관계를 정리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최씨는 “연락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술만 마시면 결국엔 전화하게 됐다”고 돌이켰다. 사실 40대 후반에 접어든 그에게 김씨는 포기하기 힘든 희망이었다. 세월이 흘러서 30대를 넘긴 결혼 적령기의 김씨도 젊은 여성을 사귀려 노력했지만 결국엔 돌아오고 말았다. 그렇게 서로를 사랑했지만 ‘차마’ 결혼의 장벽을 넘기는 힘들었다. 그들의 지인은 “결혼에 대한 김씨의 적극적인 의지가 부족해 보였다”고 전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계속되던 질긴 인연을 끊기 위해 남자는 올해 광주로 떠났다.
소서노도 주몽보다 10살 이상 많아
그것은 이름조차 없는 사랑이다. 어린 소녀와 나이든 남성의 관계는 ‘롤리타 콤플렉스’라 불린다. 영화평론가이자 심리학자인 심영섭씨는 “이미 콤플렉스라는 말에 비정상이란 의미가 들어 있다”며 “심지어 연상남·연하녀의 관계에서도 나이 차이가 크면 부정적으로 생각해왔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나이 차가 큰 연상녀와 연하남의 관계는? 심영섭씨는 “그들의 사랑은 금기조차 되지 못해서 아예 부정적인 이름조차 없다”고 말했다. 이렇게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연상녀·연하남 관계는 어쩌면 ‘정상적 사랑’이 배제한 최후의 식민지다.
하지만 젊은 남녀가 자유로운 의사에 바탕해 만나고 사랑하는 근대적 사랑의 개념인 낭만적 사랑이 시작되기 이전에 연상녀·연하남 커플은 이상한 존재가 아니었다. 김은실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는 “역사 속의 소서노는 주몽보다 10살 이상 많은 연상녀였지만, 현대의 드라마()는 소서노를 주몽과 나이가 비슷하거나 어린 여성으로 만들었다”며 “그렇게 연상남과 연하녀라는 낭만적 사랑의 각본에 맞추지 않으면 심각한 정치 드라마가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까이는 조선시대까지 연상녀·연하남 관계는 흔했다. 그렇게 사랑의 역사에서 나이의 문제는 절대적 가치가 아니라 상대적 기준이었다.
모든 사랑이 뜨거운 열정으로 시작되지는 않는다. 사랑과 우정 사이의 감정이 있듯이 애정과 모정 사이에 사랑이 위치하는 경우도 있다. 의 구상에 대한 봉순의 지극한 보살핌처럼 현실에서도 연상녀의 보살핌이 연하남의 감정을 자극한다. 오점균 감독은 “이기적인 의미가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온 필요라면, 필요에 의해서 같이 사는 관계가 나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박윤 작가도 “구상처럼 누군가의 배려를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 지극한 배려를 받으니 좋지 아니하겠느냐”며 “엄마인지 연인인지 경계가 애매한 종류의 사랑도 있다”고 덧붙였다.
물론 연상녀·연하남 커플을 바라보는 애정 어린 근심이 터무니없는 기우는 아니다. 40대 언니가 20대 대학원생과 사귄다는 주현정씨는 “경제력이 있는 언니가 아직 학생인 남자를 도와줄 때는 남자 집안에서 둘의 관계를 반대하지 않았지만 정작 두 집안의 상견례 얘기가 나오자 남자 부모가 반대하고 나섰다”고 전했다. 당초 결혼에 반대했던 여자 쪽 집안에선 결혼 적령기를 훨씬 넘긴 여성을 걱정해 반대가 누그러지지만 남자 쪽 집안에선 결정적 순간에 결혼을 반대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이다. 어렵게 결혼한 뒤에는 전혀 다른 문제도 겪는다. 지금껏 경제적 지원을 해왔던 연상녀 쪽에서 연하남이 이제는 경제력을 가질 것을 기대하기 때문에 생기는 갈등이다. 이렇게 우여곡절을 겪고 편견에 부딪히면서 연상녀·연하남 커플의 일부는 한국 탈출을 꿈꾼다.
영화 속 봉순씨 행복이 환상일지라도
그래도 봉순씨의 희망은 전진한다. 의 봉순씨는 가족도 구상도 포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담담하게 남편과 딸이 여전히 자신의 가족인 것처럼 “너도 가족이다”라고 구상에게 말한다. 그렇게 능청스럽게 밀어붙여 결국엔 일종의 대안 가족을 만든다. 심영섭씨는 “기혼 여성, 아줌마의 욕망을 다룬 최근의 영화인 나 에서도 결국엔 가정이 깨졌다”며 “은 기존 가족이 깨지지 않고 여성이 중심이 돼 새로운 가족을 만든다는 점에서 앞으로 나아갔다”고 평가했다. 물론 세상 속 봉순씨의 현실은 여전히 어렵고 영화 속 봉순씨의 행복한 결말은 환상일지 모른다. 그래도 봉순씨 파이팅! 익숙한 구호로 마무리하자면, 함께 꿈꾸면 현실이 된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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