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이윤에 눈먼 병원 때문에 6인실 못 구하는 환자들… 의료보험 적용받는 격리병실도 태부족 </font>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병으로 환자가 죽고, 병실료 때문에 가족이 죽고 있어요. 병원이 환자와 가족을 두번 죽이고 있습니다.”
남선희(33·서울 상계동)씨는 병원에 대한 울분을 삭이지 못했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에 병원비 부담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남씨의 아버지는 지난 6월1일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3개월 만인 8월31일 당뇨합병증으로 숨졌다. 입원 3개월 만에 청구된 병원비는 2700만원. 이 중 520여만원이 병실료였다. 6인실로 들어가지 못해 1인실과 2인실, 4인실을 전전했던 탓이다. 환자가 부담하는 6인실 병실료는 하루 1만원에 못 미치지만, 서울대병원의 2인실은 하루 병실료만 11만원이 넘고, 1인실은 하루 23만~27만원이 든다. 남씨는 “비용도 비용이었지만, 6인실을 구하지 못해 마음고생이 심했다”라고 돌이켰다.
남씨의 아버지는 입원 기간 동안 심장마비 위험 때문에 중환자실로 자주 내려갔다. 중환자실에서 올라올 때마다 6인실 병실이 없어 1인실 또는 2인실로 입원했다. 남씨는 “6인실은 아예 엄두도 내지 못했고, 4인실도 애원해서 겨우 옮겼다”라고 말했다. 남씨의 아버지가 6인실에 입원하지 못한 이유는 6인실 병실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서울대병원이 ‘단기병상제’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기병상제는 6인실 환자는 입원 2주일이 지나면 1인실 또는 2인실로 옮겨야 한다는 규정이다. 장기 입원환자는 수술을 받은 뒤 곧바로 1·2인실로 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2002년 시작된 단기병상제는 장기입원 환자를 줄여 병상회전율을 높이려는 취지로 도입됐다. 병원쪽은 병상회전율을 높여 다수의 환자에게 6인실 혜택을 주기 위해 만든 제도라고 주장하지만, 환자들은 6인실 입원을 막는 편법이라고 반박한다.
서울대병원 봐주기 행정?
병실은 크게 일반병상(6인실)과 상급병상(5인실 이하)으로 나뉜다. 보건복지부령으로 나온 ‘건강보험요양급여 기준에 관한 규칙’은 종합병원의 일반병상 비율이 전체 병상의 50% 이하일 경우, 상급병실료 차액(병원에서 정한 상급병실료에서 일반병상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비용을 제외한 금액)을 청구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서울대병원의 경우, 2002년부터 일반병상 비율이 42%(전체 병상 수 1489개 중 일반병상 수 626개)로 50% 기준에 못 미친다. 하지만 서울대병원은 상급병실료 차액을 꼬박꼬박 환자에게 부담시켜왔다. 건강세상네트워크는 “보건복지부는 서울대병원이 부당하게 취득한 상급병실료 차액을 모두 환자들에게 환불하라고 명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건복지부가 서울대 ‘봐주기 행정’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실제 건강보험관리공단이 일반병상 비율 50%에 미달한 다른 병원에 대해서는 상급병실료 차액을 징수한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대병원쪽은 “일반병상 비율을 채우지 못한 것을 죄송하게 생각한다”면서도 “96년 보건복지부에 응급실도 전체 병상에 포함되는지 질의를 했는데 복지부는 ‘포함된다’는 답변을 보냈다”라고 밝혔다. 응급실을 일반병상에 포함하는 ‘편법’으로 계산하면 현재도 일반병상 비율이 50%를 넘는다는 것이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9월에 어린이병원 개보수 공사가 끝나면 50% 기준을 채울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서울대병원의 일반병실 비율은 2001년까지 50.3%였으나 2002년 이후에는 오히려 42%로 낮아졌다. 2001년과 2002년 사이 일반병실을 약 150개 줄이고, 상급병실을 약 100개 늘렸기 때문이다. 건강세상네트워크는 9월8일 감사원에 서울대병원과 보건복지부에 대한 감사요청서를 제출했다.
응급실과 중환자실은 대기실로
다른 종합병원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건강세상네트워크의 분석에 따르면, 223개 종합병원과 42개 대학병원 전체의 일반병상 비율은 69.4%였다. 대학병원의 일반병상 비율은 64%로 종합병원의 72.0%에 비해 오히려 낮았다. 큰 병원일수록 상급병상 비율이 높은 것이다. 지역별로는 부산(60.8%)과 서울(62.4%)이 일반병상 비율이 가장 낮고, 전북(83.6%)과 강원(83.0%)이 가장 높았다. 환자가 많은 지역일수록 상급병상 비율이 높은 결과다. 이처럼 환자가 많은 지역의 큰 병원일수록 상급병상 비율이 높은 이유는 상급병상이 많을수록 수입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일반병상은 의료보험 적용을 받아 수가가 정해져 있는 반면, 상급병상은 비급여로 병원이 마음대로 병실료를 정할 수 있다. 상급병실 병원료는 병원마다 차이가 있지만 서울지역 대학병원의 경우 1인실 20만원 이상, 2인실 10만원 이상이다. 호텔 숙박료만큼 비싼 상급병실료 부담은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상급병실료 차액은 전체 비급여 비용을 100이라고 할 때 23~27%를 차지할 만큼 규모가 크다. 상급병실료 때문에 병원은 웃고, 환자는 울고 있다.
일반병실이 부족한 탓에 대학병원 응급실과 중환자실은 대기실이 됐다. 일반병실이 나지 않아 응급실에서 기약 없이 대기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회사원 조아무개(36·서울 이문동)씨는 지난 7월 말 일흔의 아버지가 유행성출혈열에 걸려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다행히 입원 이틀 만에 병세가 호전돼 병실로 옮기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내과 병동에 빈 6인실 병상이 없었다. 중환자실에서 기약 없이 기다렸다. 답답한 마음에 치료를 받을 때마다 “6인실 언제 비느냐”고 물었지만, “우리도 모른다”는 대답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중환자실의 환자들이 숨지는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의 병세가 악화되는 것 같아 결국 일주일 만에 2인실 병실로 옮겼다. 다음날 다시 6인실로 옮기고 기뻐했지만, 이튿날 아침 퇴원하라는 ‘허무한’ 통고를 받았다. 물론 중환자실에 머무는 동안 일반병실에 비해 하루 2만5천원 정도의 추가 비용을 부담했다.
조씨에게는 병원에 대한 ‘안 좋은 기억’만 남았다. 그는 “환자 보호자들의 아침인사는 ‘입원실 어떻게 되셨습니까’였고, 병실로 옮기는 환자와 보호자에게는 ‘축하합니다’라는 인사가 쏟아졌다”라고 돌이켰다. 조씨는 “빨리 병실에 올라가고 싶어 원무과에 음료수를 사들고 가는 보호자들도 있었다”라고 전했다. 건강세상네트워크는 “일반병실에 입원하지 못하는 환자가 넘쳐나는 것은 일반병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매우 적다는 뜻”이라며 “보건복지부가 일반병상 보유 비율을 상향 조정해 일반병실을 늘려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건강세상네트워크 김상덕 간사는 “환자가 상급병실을 ‘선택’한 경우를 제외하고, 일반병실이 없어 상급병실에 입원한 경우는 일반병실료를 적용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팔짱만 껴야 하는가
큰 병원의 격리병실도 절대 부족한 형편이다. 중환자를 치료하는 종합전문 요양기관에 격리병실은 필수적이지만, 국립의료원·고대구로병원·삼성서울병원·경희대병원 등은 아예 격리실을 두지 않고 있다. 연세대세브란스병원 등 42개 주요 병원의 격리실 병상의 수는 모두 합쳐 306개로, 총병상 수 대비 1%에도 못 미친다. 격리실 역시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격리실의 건강보험 수가는 하루 6만3천여원으로 정해져 있고, 이 중 본인부담금은 1만2600여원이다. 병원이 격리실을 두지 않고 격리가 필요한 환자를 1인실에 입원시키면 병실료 수입은 5배까지 늘어난다. 하지만 보건의료 관리 법규에는 보험 수가는 정해져 있지만, 격리병상 설치 의무 규정은 없다. 수익성을 앞세우는 병원이 의무 규정도 아닌 격리병실을 운영할 리 만무하다. 하지만 격리실이 필요한 환자는 생기게 마련이다. 결국 전염병 환자, 면역력이 약한 환자, 심한 화상환자 등은 상급병실에 ‘울며 겨자먹기’로 입원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격리병실을 두고도 편법으로 운영하는 병원도 있다. 에이즈 쉼터에서 일하는 한 간호사는 “부산의 한 대학병원은 에이즈 감염인은 격리실에 받아주지도 않는다”며 “병원이 규정을 어겨도 처벌 조항이 없어 편법 운영이 고쳐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환자와 가족들은 병실 때문에 병이 들고 있지만, 병원은 병실을 이용해 돈벌이에 몰두하고 있다. 정부는 그 사이에서 팔짱 낀 채 수수방관하고 있다. 최소한의 의료 공공성도 공문구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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