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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 바탕 위에 행복 무럭무럭

근무시간·장소·휴가 마음대로… “복지 아니라 효율성 고려”

기업문화로 자리잡아… 삼성 계열사도 ‘스타트업 방식’ 선언
등록 2016-11-16 23:57 수정 2020-05-03 04:28
일, 행복 그리고 기업
스마트스터디의 기업문화를 듣는 자리에 독특한 직책을 가진 사람이 함께했다. 윤혜경 시엘오(CLO·Chief Life Officer)이다. ‘입사에서 퇴사까지’ 구성원들의 회사에서의 삶을 돌보는 것이 그의 일이다. 스마트스터디는 일하는 시간과 공간, 휴가를 구성원이 선택할 수 있다. 이런 제도가 과연 효율적인 기업 운영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 윤 시엘오는 “자율적인 근무 환경은 ‘복지’ 차원에서 시행하는 것이 아니다. 분명히 ‘효율적’이기때문에 채택했다”고 말했다. 복잡하고 바쁜 출근길에 에너지를 다 소진해버리고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겠느냐는 이야기다.
스마트스터디 사무실 전경. 사내 카페테리아와 사무 공간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쓴다. 사무 공간 역시 회의실과 기술 개발 공간을 제외하고 칸막이가 없다. 한겨레 이정연 기자

스마트스터디 사무실 전경. 사내 카페테리아와 사무 공간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쓴다. 사무 공간 역시 회의실과 기술 개발 공간을 제외하고 칸막이가 없다. 한겨레 이정연 기자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 창업 열풍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그 가운데 일터에서 삶의 질을 높이고 싶다는 기대도 스타트업으로 사람들이 몰리는 데 영향을 줬다. 쌍방은커녕 수직 소통구조에, 승진 등을 두고 동료와 무한 경쟁을 해야 하는 마당에 국내 일반 기업에서 ‘일터에서의 삶의 질’을 논하기란 한가한 소리로 들릴지 모른다.

스타트업 업계에서 훌륭한 ‘기업문화’는 한가한 소리가 아니다. 사업 내용뿐 아니라 일터 자체를 중요하게 여기는 기업인들은 훌륭한 ‘기업문화’를 일구는 일을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쯤으로 여기지 않는다.

이런 노력은 서서히 가시화하고 있다. 지난 7월5일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는 ‘스타트업 인식 및 근무 환경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내용을 보면 스마트업에서 일하는 사람들 가운데 46.4%가 현재의 근무 환경에 만족한다, 14.9%가 매우 만족한다고 답했다. 대기업 및 공공기관에 다니는 사람들이 근무 환경에 매우 만족한다고 답한 비율은 7.7%, 만족한다고 답한 비율은 40%에 그쳤다.

스타트업 창업 또는 취업이 일터에서의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일하는 사람들이 일터에서 높은 만족과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기업문화’는 이제 없어서는 안 될 스타트업의 존재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삼성그룹 계열사 같은 대기업들이 ‘스타트업 방식’을 추구한다고 선언한다. 이런 소식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건 ‘정말 기업문화를 절실하게 바꾸려는 의지가 있는가?’ 하는 의문 때문이다. 자유롭고 효율적인 기업문화는 스타트업의 디엔에이(DNA)가 되어가고 있다. DNA는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바꿀 수 없다.

‘정책 없음’이 정책인 곳  

일하는 사람들의 행복과 기업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스타트업들의 기업문화 DNA는 어떻게 형성되어가는 걸까? 어떤 의지와 목표가 있기에 방임에 가까운 ‘자율’을 끝까지 놓지 않고 추구하는 걸까? 창업 3~6년차 스타트업에서 규모를 키워가면서도 출발 때의 ‘기업문화’를 놓지 않는 기업들을 찾았다. 스마트스터디, 비바리퍼블리카, 알지피코리아 세 곳이다. 일터에서의 삶의 질 향상은 이제 꿈이 아니다.

분홍색 여우 캐릭터 ‘핑크퐁’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다. 유아동 교육 콘텐츠 및 애플리케이션 등을 만드는 글로벌 콘텐츠 스타트업 ‘스마트스터디’의 대표 콘텐츠다. 핑크퐁 시리즈 앱은 2016년 6월까지 1억1천만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아이들은 핑크퐁을 보고, 구직자들은 스마트스터디를 눈여겨본다. 스마트스터디의 기업문화 때문이다. 스마트스터디는 2010년 3명으로 출발한 스타트업인데 이제 116명의 구성원이 모였다.

스마트스터디의 기업문화를 듣는 자리에 독특한 직책을 가진 사람이 함께했다. 윤혜경 시엘오(CLO·Chief Life Officer)이다. ‘입사에서 퇴사까지’, 구성원들의 회사에서의 삶을 돌보는 것이 그의 일이다. 윤혜경 시엘오가 맡은 부서 이름은 더욱 특이하다. 엔피시(NPC·Non Playing Character)그룹이다. ‘엔피시’는 롤플레잉 게임 등에서 게임 참여자를 돕는 캐릭터를 일컫는다. 스마트스터디의 엔피시그룹은 일반 기업으로 치면 인사총무팀 정도가 된다. 구성원들의 일터에서의 삶을 책임지고 지원한다.

이 정도 되면 기업문화와 관련한 사내 정책이 많을 거라 생각했다. 의외의 답이 돌아온다. 윤혜경 윤혜경 시엘오는 “우리는 ‘정책’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책이 없는 것’이 정책이다”라며 “상식을 기준으로 둘 뿐이다”고 말했다. 스마트스터디의 상식은 ‘자율’을 바탕에 둔다. 일반 기업에서는 결코 ‘상식적’이지 않은 것들이 이뤄질 수 있는 바탕이다.

스마트스터디는 일하는 시간과 공간, 휴가를 구성원이 선택할 수 있다. 이런 제도가 과연 효율적인 기업 운영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 윤 시엘오는 “자율적인 근무 환경은 ‘복지’ 차원에 시행하는 것이 아니다. 분명히 ‘효율적’이기 때문에 채택했다”고 말했다. 복잡하고 바쁜 출근길에 에너지를 다 소진해버리고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겠느냐는 이야기다. 휴가는 무제한이다. 제한된 연차를 어떻게 쓸까 고민할 필요 없다. 스마트스터디 구성원들은 휴가 고민 대신 일에 몰두할 수 있을 거라 여긴다.

이런 자율적인 일터는 구성원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윤 시엘오는 설명했다. 그만큼 채용은 까다롭다. 스마트스터디는 대부분의 직군을 상시 채용한다.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와 방향에 동의하지 않으면 다른 구성원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오래 걸리더라도 가장 적임자를 찾는 데 드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100명이 넘는 구성원이 정말 한 배에 타고 있다는 공동체 의식을 갖기는 어려워 보인다. 무엇보다 구성원 사이의 소통이 어려울 법한데 해결책은 간단하다. 피지영 홍보 담당자는 “대표를 비롯해 116명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온라인 대화방이 개설되어 있다. 야근 때 저녁 끼니를 때우는 것부터 회사가 나아가는 방향에 대한 논의 등 거의 모든 소재를 평등하게 이야기한다. 이런 식의 자유로운 소통 속에서 구성원들이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곤 한다”고 말했다.

무한 자유, 무한 책임  

비바리퍼블리카의 사무 공간 한가운데 투명한 유리벽뿐인 회의실에 앉았다. 대부분의 구성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자유로운 분위기였지만 동시에 긴박함을 느꼈다. 온라인 간편 송금 서비스 앱 ‘토스’를 내놓은 비바리퍼블리카는 핀테크(금융과 기술이 융합한 금융서비스) 스타트업이다. 지난 8월까지 토스 누적 송금액은 1조원을 넘어섰다. 들떠 있을 만한 성과이지만,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여유를 부리기 어렵다. 비바리퍼블리카 사무실에서 느낀 긴박함은 여기에서 나온다.

프랑스혁명 당시 민중의 구호 ‘공화국 만세’를 회사 이름으로 삼았다. 그만큼 자율과 자유, 구성원 간의 수평적 관계·소통을 중시한다. 출퇴근 시간은 자율적으로 정하고 원격근무도 할 수 있다. 별도의 승인 없이 휴가도 무제한으로 쓸 수 있다. 3년 근속하면 한 달 휴가도 준다. 구성원들은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세대에 걸쳐 있지만 서로 ‘○○님’이라고 부른다. 자유로운 소통은 이런 장치가 있기에 가능해 보였다.  

자율과 동시에 강조하는 것은 단 하나, ‘책임’이다. 장해남 인사담당팀장은 “자율에 기반한 독특한 기업문화를 갖출 수 있는 것은 전문가(스페셜리스트)들이 모여 있어서다. 직무를 책임지고 해낼 수 있는 역량 있는 사람들이 있어야 자유로운 분위기가 형성되고 그 자체가 일하고 싶은 ‘동기’가 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자율과 책임 그리고 그에 따른 보상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스스로 일을 개척하고 다른 사람보다 많은 성과를 내면 그만큼 더 많은 연봉을 받는 구조라고 장 팀장은 설명했다.

비바리퍼블리카에 ‘윗선’에서 내려오는 일은 없다. ‘내가 주도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런 일이 있느냐가 중요하다. 그만큼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과 일하느냐’이다. 직무에 뛰어난 능력을 갖췄지만 구성원 사이의 합리적 토론이 불가능하다면 과감히 포기한다. 이런 까닭에 비바리퍼블리카는 구성원을 직접 찾아 스카우트한다. 그렇게 찾아 나선 인재 가운데 최종적으로 함께 일하게 된 구성원은 100명 중 5명도 안 된다. 장해남 팀장은 “비바리퍼블리카의 채용 인터뷰는 테크 인터뷰, 컬처 인터뷰로 나뉘는데 기업문화에 적합한지 판단하는 컬처 인터뷰가 단연 까다롭다”고 말했다.

서비스 규모가 커지고 시장에서의 경쟁은 심해지는 와중에 이렇게까지 까다롭게 사람들을 거르면서 기업문화를 유지한다는 것이 비효율적이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비바리퍼블리카는 더 나은 기업문화 추구와 기업 성장이 동시에 가능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싶어 한다. 올해 1월 비바리퍼블리카로 이직한 장해남 팀장은 “이승건 대표를 비롯해 리더들이 자율적으로 일하면서도 잘나가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신념이 강하다. 나 또한 그런 신념이 마음에 들어서 합류하게 됐다”고 말했다.

몸과 마음을 모두 챙겨라  

배달앱 ‘요기요’와 ‘배달통’은 소비자에게 매우 친숙한 브랜드다. 두 앱은 모두 알지피코리아가 서비스하고 있다. 독일에서 출발한 스타트업 ‘딜리버리 히어로’의 투자를 받은 회사다. 지난해 7월에는 기업문화를 전담하는 ‘컬처팀’을 만들었다. 알지피코리아에는 450여 명의 직원이 일한다. 인적 구성으로는 300명 이상이니 ‘대기업’이다. 그럼에도 스타트업 정신과 기업문화를 유지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이런 이유로 컬처팀이 만들어졌다.

알지피코리아 관계자를 직접 만나기 전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발리룸’ 운영이었다. 직원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심리상담사가 상주하는 전문 상담 공간을 만든 것이다. 그런데 6개월 운영 뒤 지난 5월 말 발리룸 운영을 중단했다. 기업문화를 건강하게 만들기 위한 시도를 너무 쉽게 포기했다는 생각이 들 만한 대목이다.

이동근 인재문화본부 컬처팀장이 오해를 풀어줬다. 그는 “발리룸이 직원들 사이에 인기 있었지만 회사 안에 상담 공간이 있어 가기를 꺼리는 분위기가 있었다. 이런 점을 보완하기 위해 직원들의 거주지 근처 상담소 등을 이용할 수 있게 제도를 보완 중이다. 정신상담 프로그램은 내년부터 다시 운영할 계획이다”라고 설명했다.

직원들의 몸 건강을 위한 프로그램 ‘헬스키퍼’는 지난 6월 새로 도입했다. 시각장애인 안마사 2명이 상주하는 ‘리조트룸’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 공간은 업무 시간 어느 때나 상관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송중길 인턴사원은 “아무리 자유롭게 이용하라고 해도 인턴 처지에 그 말을 믿기 어려워서 마사지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웠는데, 동료들이 왜 안 쓰냐고 눈치를 준다”고 말했다.

인턴 사원부터 대표까지 시설 이용뿐 아니라 분위기도 자유롭다. 인터뷰는 알지피코리아의 직원들이 제약 없이 언제나 이용할 수 있는 사내 카페테리아에서 이뤄졌다. 팀원들끼리 라면을 먹거나 삶은 달걀을 먹으면서 회의하기도 하고 그냥 수다를 떨기도 한다.

카페테리아 바로 옆 나제원 대표의 사무실이 있다. 반투명 유리벽에, 대표실의 문은 열려 있다. ‘이렇게 가까이 지켜보고 있는데 자유로운 분위기가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듦과 동시에 나 대표가 카페테리아 쪽으로 나왔다.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은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컬처팀 뒤를 지나갔다. 컬처팀 누구도 일어나서 그를 향해 인사하거나 신경 쓰지 않았다.

2주마다 한 번씩 열리는 ‘주간회의’는 직원 전체가 참여한다. ‘주간회의’라는 이름은 딱딱하지만 내용과 분위기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이동근 팀장은 설명했다. “주간회의 때 저희 배달앱 서비스를 한 달 동안 가장 많이 이용한 사람을 뽑아 상금을 주고 직원들이 환호해준다. 대단하지는 않지만 즐거운 회의 경험을 주는 자체가 기업문화 면에서는 의미 있다”고 말했다.

알지피코리아는 ‘차별 없는 일터’가 되고자 한다. 450여 명이나 되는 구성원의 이해와 요구를 반영하기는 쉽지 않다. 이 팀장은 소외 없는 일터를 일구기 위한 노력이 “손해 나는 일은 아닌 거 같다”고 말했다. 그는 “야간 소비자 상담 서비스를 없애야 했는데, 몇 명 안 되는 직원이었지만 이들이 바라는 바를 파악하고 또 업무 조정을 하기 위해 두 달을 들였다. 빨리 끝내기보다 직원들이 불합리하다고 느끼지 않게 하려 들인 노력이었고, 실제로 그들 모두 만족한 결과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이정연 경제부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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