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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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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자가 더 많은 것을 가진다’

글렌로이의 과감한 결단… 직원 인사 자료 화형식

“일 잘하게 하려면 유능한 일꾼 자부심 심어줘야”
등록 2016-11-08 21:03 수정 2020-05-03 04:28
일, 행복 그리고 일자리
“주 30시간 노동제 사회는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을 위한 시간뿐 아니라 시민들 간의 새로운 연대를 구축할 시간, 개인적 즐거움을 누릴 시간, 새로운 삶의 방법과 주체성의 모델을 창조할 시간을 허락할 것이다. … ‘일’을 노동시장의 고용체계로 규정하는 산업화 시대의 사고방식에서 이제 벗어나야 한다. 무엇이 일이고 일이 아닌지 그 정의를 일자리와 고용 여부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 일을 통해 돈뿐만 아니라 수많은 다른 가치를 추구할 수 있게 하는 사회, 그 덕에 각자의 일을 스스로 정의할 수 있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 오롯이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며 놀듯이 일하고 일하듯이 노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그 사회에서 우리는 어쩌면 지금보다 더 많이 ‘일’할지도 모르겠다.”
전국공공산업노조연맹 조합원들이 지난 9월22일 정부의 성과연봉제 시행 중단을 요구하면서 서울역에서 을지로 방향으로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전국공공산업노조연맹 조합원들이 지난 9월22일 정부의 성과연봉제 시행 중단을 요구하면서 서울역에서 을지로 방향으로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미국 위스콘신주 밀워키 교외에 위치한 글렌로이사의 직원용 주차장에는 가슴 한가득 인사 자료를 안고 있는 직원들로 가득했다. 그들은 55갤런짜리 드럼통에 회사의 모든 인사 자료를 쏟아넣은 뒤 기름을 끼얹고 불을 댕겼다. 언뜻 보면 불만을 가진 직원들이 ‘화형식’을 벌이는 장면 같았다. 그러나 드럼통 앞에서 연설을 시작한 사람은 놀랍게도 이 회사의 수석 부사장 마이크 딘이었다. “지금 들고 있는 것이 우리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우리의 인사 자료는 병가 일수나 교육 여부처럼 그저 직원들을 짜증나게 만드는 것을 기록해놓은 점수표에 불과했습니다.”

의약품·식품 포장 재료 제조기업인 글렌로이는 여느 회사와 마찬가지로 사장을 제외한 모든 직원을 여러 항목에 걸쳐 매년 평가하고 그 결과를 임금인상률에 반영했다. 회사는 평가가 코칭의 수단으로 사용되길 바랐지만 딘은 “상사의 평가는 상당히 주관적이었고 평가를 통해 긍정적 피드백이 이루어질 거란 생각은 환상에 불과했다”고 고백했다. 치열한 고민 끝에 글렌로이는 기존 평가제도를 버리기로 결정하고 사장을 포함한 모든 구성원의 성과급과 차등 임금인상률도 없애기로 했다.

글렌로이는 왜 일찌감치 평가와 차등 보상을 버리기로 결정했을까?

평가는 절대 객관적일 수 없다

글렌로이가 이처럼 과감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차등 보상을 위한 평가는 절대 객관적일 수 없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AT&T 사례다. 데이비드 벌루(David E. Berlew)는 AT&T 신입사원 62명이 입사 첫해에 받은 평가 결과가 향후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피기 위해 5년 동안 연구를 진행했다. 신입사원들의 연봉, 평가 점수, 성과 등의 데이터를 5년간 분석해보니, 첫해 회사에서 높은 기대를 받은 직원이 같은 해 높은 성과를 기록했다면 그 직원은 지속적으로 높은 성과를 내는 것으로 획인됐다.

어떤 직원이 첫해에 높은 기대를 받고 그에 상응하는 높은 성과를 거두면 회사는 그에게 각종 지원을 제공한다. 고급 과정의 교육 기회부터 고위 관리자가 멘토나 코치로 따라붙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 업무를 부여받는다. 자연스레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력도 커져 그 후로도 그 직원은 높은 성과를 달성하고 고액 연봉과 승진 기회를 거머쥔다. ‘가진 자는 더 많은 것을 가진다’는 ‘마태 효과’(Matthew Effect)의 전형적 모습이다. 이 사실은 객관적 평가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일깨운다. 지금껏 많은 경영학자, 컨설턴트, 인사 담당자들이 수십 년 동안 노력했음에도 객관적 평가 지표를 찾아야 한다는 외침은 끊이질 않는다. 그 이유는 객관적 평가 지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프랑스가 베트남을 식민 통치하던 시절, 프랑스인은 득시글거리는 쥐의 개체 수를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궁리하다 묘안을 생각했다. 베트남 사람이 쥐를 잡아 가죽을 벗겨오면 그 수대로 돈을 주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곧 프랑스인들은 베트남 사람들이 쥐를 사육하면서까지 돈을 받아 가려는 모습을 발견하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쥐가 박멸되기는커녕 전보다 오히려 들끓었다. 평가는 이처럼 평가 지표만 높이려는 잘못된 행동을 자극한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에이미 에드먼슨(Amy C. Edmondson) 교수는 6개월 동안 하버드대학 병원에 딸린 8개의 병동을 면밀하게 모니터링했다. 에드먼슨은 최고의 병동일수록 투약 실수가 적으리라 예상했지만 결과는 완전히 정반대로 나타났다. 최고라고 인정받는 병동일수록 투약 실수가 더 많이 발견된 것이다. 수간호사들의 업무 지시 능력이 뛰어날수록 투약 실수 건수가 높게 나타났고,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을수록 역시 투약 실수가 많았다. 관리자의 능력과 리더십이 긍정적으로 평가될수록 투약 실수가 더 많다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결과였다.

에드먼슨은 추가 분석을 통해 자신의 실수를 겉으로 드러낼 뿐만 아니라 상급자의 실수를 지적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연시하는 병동일수록 기록된 투약 실수 건수가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실수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실수를 통해 학습하려는 의료진의 자발적 노력과 문화 때문임을 알아낸 것이다. 반면 투약 실수가 적은 병동은 실수를 보고하거나 의사 처방에 반론을 제기하면 상급자에게 질타받거나 징계받는다는 두려움이 강해서 가급적이면 실수를 감추려는 동기가 작용했다. 투약 실수를 통해 평가받고 그에 따라 보상이 결정되는 현실에서 실수를 감추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심리였다. 이처럼 평가는 잘못된 행동을 오히려 부추긴다.

미국 연방 항공청은 모의실험으로 비행기에서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공포에 질린 승객을 어떻게 통제해 안전하게 탈출시킬지 연구한다. 하지만 모의실험 참가자들은 실험이라는 걸 알기에 혼돈스러운 상황을 연기하지 않았다. 참가자들은 노약자에게 길을 터주었고, 남성은 여성을 비상구까지 에스코트하는 매너를 보였다. 연구자들은 작은 트릭을 쓰기로 했다. 비행기에서 제일 먼저 빠져나온 사람에게 수고비의 2배인 22달러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효과는 아주 놀라웠다. 참가자들은 난폭하게 밀쳐냈고 노약자를 배려하는 행동은 찾아볼 수 없었다. ‘11달러 추가의 효과’는 매우 확실했다. 11달러밖에 안 되는 돈 때문에 협조와 배려가 사라졌다는 사실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개인 성과에만 초점을 맞춘 보상은 남보다 빨리 탈출하려고 폭력적 행동을 서슴지 않는 사람에게 돈을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차등 보상은 성과 향상과 무관

승객 모두가 비행기를 빠져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도, 1등 탈출자에게 상금을 지급하는 게 과연 옳을까? 개인 성과급을 받으려고 이기적으로 행동한 개인에게 성과급을 지급하는 게 과연 옳을까? 그렇지 않다. 모의 승객에게 “짧은 시간 안에 모두 탈출을 완료한다면 수고료를 추가로 더 드리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모두 신속하게 탈출할 수 있을지 잘 판단해 행동하세요”라고 말했다면, 참가자들은 협력적으로 행동함으로써 빠른 시간에 모두 탈출에 성공했을 것이다. 직원들의 협력을 이끌어내고 협력이 조직의 핵심가치가 되기를 바란다면 직원들에게 돈다발을 흔들어대는 방법은 옳지 않다. 협력이 사라지면 조직의 발전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잔 라메르(Jeanne M. LaMere)와 동료들이 ‘미시건 폐기물 서비스’를 대상으로 4년여에 걸쳐 진행한 연구 결과도 차등 보상이 성과에 끼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회사는 폐기물 수거 차량 운전기사의 생산성을 높이고자 차등성과급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기본급을 그대로 유지한 채 성과급 비율을 전체 연봉의 3~9%가 되도록 했다. 처음에는 성과가 향상된 듯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생산성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더욱이 성과급 실시 전의 보상 만족도는 26.1점이었는데, 실시 후 24.2점으로 오히려 하락했다. 기본급은 그대로 유지하고 성과급만 증가해 직원들은 전보다 돈을 더 받을 수 있었지만 생산성과 만족도는 그에 비례하지 않았던 것이다.

차등 보상을 도입하면 조직 성과가 높아질 거라고 무조건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다. 우연히 외부 환경이 우호적으로 변해 성과가 높아졌을 때 그것이 차등 보상의 효과인지 아닌지 장담할 수 없다. 차등 보상 때문에 조직 성과가 높아진 게 아니라 조직 성과가 높아졌기에 차등 보상을 실시할 금전적 여력이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해야 한다.

경영자들은 ‘차등 보상해야 열심히 일하려 할 거야’ ‘평가해서 잘하는 직원에게 돈을 많이 주겠다고 말하면 힘든 일도 감수할 거야’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사회심리학자 랜시스 리커트는 “직원들이 일을 잘하게 하려면 유능한 일꾼이라는 자부심을 심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때 사고의 유연성이 극대화되어 자발적 성과 창출이 가능하게 된다는 의미다. 직원에 대한 배려 없이 보상만으로 성과 창출을 기대하거나 강요하는 것은 인간을 비둘기나 쥐와 같이 보상과 처벌로 특정 행동을 강제당하는 동물 취급하려는 태도가 아닐 수 없다.

평가와 차등 보상의 문제는 이것 말고 아주 많다. 대안은 무엇일까? 바로 평가와 성과연봉제를 버리라는 것이다. 객관적 평가는 불가능하고, 평가로 인해 직원들의 행동을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유도하고, 협력과 소통이 깨지고, 조직 성과에도 무관하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2013년에 스택-랭킹(Stack-Ranking)이라는 악명 높은 상대평가를 폐지하기로 한 결정은 직원들이 협력하기보다 서로를 이기려는 경쟁으로 회사에 악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성과연봉제 도입에 앞장서던 컨설팅 업체인 딜로이트와 액센츄어도 기존 평가를 버리고 새로운 방식을 모색 중이다.

지속적인 피드백이 유일한 대안

평가를 버리라고 말하면 많은 사람이 “그러면 직원들의 연봉을 어떻게 결정하죠?”라고 반문한다. 이 질문이 바로 역량 계발과 동기 부여, 성과 창출이 평가의 본래 목적임을 상실하고 보상이나 승진 결정에만 쓰고 있다는 증거다.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직원의 90% 이상이 평가에 불만을 가진다면 당연히 폐기하는 것이 옳다. 고객의 대부분이 우리 제품과 서비스에 불만을 제기한다면 기존 제품을 없애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평가를 버린 뒤의 대안은 피드백을 강화하는 것이다. 기존 평가는 기껏해야 1년에 한두 번 정도 업무 피드백이 이루어진다. 자식의 잘잘못을 지켜보다 1년에 한두 번 피드백하는 부모가 어디 있을까? 피드백은 상시적으로 빈번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인식한 어도비(Adobe)사는 상대평가를 없애고 2012년 매니저의 코칭과 피드백을 기초로 한 ‘체크인’(Check-Ins) 제도를 도입했다. 규정된 폼 없이 매니저의 재량과 자율에 따라 언제든지 직원들에게 피드백하는 방식을 운영한 결과, 이직율이 30% 감소되는 효과를 얻었다. 시스템 통합업체 EDS는 직원들이 자신에게 피드백해줄 사람을 스스로 결정하는 파격적 방식을 일찌감치 도입했다.

평가하지 않아도 일 잘하는 사람에게 정당한 보상이 돌아가도록 하는 방법이 있다. IGN엔터테인먼트는 직원들이 동료의 성과급을 결정하는, 이른바 ‘바이럴 페이’(Viral Pay)를 도입해 직원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 자신의 일을 도와줬거나 남들보다 판매 촉진 활동에 열정적으로 임하는 동료에게 토큰을 주도록 했다. 1년에 두 번 토큰 개수에 따라 성과급을 나누는 방식을 취한다. 이를 악용할 소지가 있지만 IGN은 기본적으로 직원을 신뢰한다는 전제에서 이 제도를 운영한다.

유정식 인퓨처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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