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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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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중심 되는 기업문화가 관건

고성장 이뤘으나 행복은 빈곤… 한국형 GWP 관심 가져야

상사 신뢰, 즐겁게 일하는 동료애 등이 공통 요소
등록 2016-11-16 23:56 수정 2020-05-03 04:28
일, 행복 그리고 기업
스마트스터디의 기업문화를 듣는 자리에 독특한 직책을 가진 사람이 함께했다. 윤혜경 시엘오(CLO·Chief Life Officer)이다. ‘입사에서 퇴사까지’ 구성원들의 회사에서의 삶을 돌보는 것이 그의 일이다. 스마트스터디는 일하는 시간과 공간, 휴가를 구성원이 선택할 수 있다. 이런 제도가 과연 효율적인 기업 운영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 윤 그룹장은 “자율적인 근무 환경은 ‘복지’ 차원에서 시행하는 것이 아니다. 분명히 ‘효율적’이기때문에 채택했다”고 말했다. 복잡하고 바쁜 출근길에 에너지를 다 소진해버리고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겠느냐는 이야기다.
불필요한 야근을 없애기 위해 밤에 강제 소등하는 유한킴벌리 강남 사옥. 한겨레 이종근 기자

불필요한 야근을 없애기 위해 밤에 강제 소등하는 유한킴벌리 강남 사옥. 한겨레 이종근 기자

우리나라는 ‘2050’클럽에 가입한 세계 일곱 번째 국가가 된 지 오래다. 국민소득 2만달러에 인구 5천만 명이 넘는 국가 리스트에 포함된 것이다. 이뿐 아니라 세계시장을 석권하는 반도체·자동차·휴대전화 같은 제품을 생산하는 경제 대국이 됐다. 1960년대만 하더라도 최빈국으로 원조를 받던 국가에서 원조국으로 탈바꿈한 세계 최초의 나라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행복 관련한 지표는 세계 최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행복으로만 본다면 최빈국 수준으로 ‘해피니스 헝그리’(Happiness hungry) 국가요, 심지어 곳곳에서 묻지마 폭력 같은 분노로까지 분출되는 앵그리(Angry)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34개 회원국을 비교한 지표에서 한국은 산재사망률 1위, 자살률 1위, 노동시간 2위, 국민행복지수 33위를 기록했고, ‘삶의 질 지수’는 조사 대상 135개국 가운데 75위를 기록했다. 이는 필리핀(40위)이나 이라크(73위)보다 낮은 수준이다. 세상의 원리는 빛이 있으면 반드시 그림자가 드리우기 마련이다. 더구나 빛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림자는 더 짙게 드리운다. 고속 성장 속에 드러난 대한민국의 민낯이 고스란히 나타난 것이다.

말 타기를 좋아하는 인디언들은 무리지어 말을 타고 신나게 달리다가 문득 멈춰 선다고 한다. 빨리 달리다보니 그들의 영혼이 따라오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최단기간에 민주화와 경제 대국이 된 것을 많은 후발국이 부러워하고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는 대한민국 국민, 직장인들은 왜 그리 힘들다고 아우성이고 행복하지 못할까? 되돌아보며 질문을 던질 때가 되었다.

진심으로 직원을 존중하고 주인 대하듯  

일본 ‘경영의 신’이라 불린 마쓰시다 고노스케 회장이 구내식당에서 식사할 때였다. 그날 메뉴는 비프스테이크였다. 그러나 거의 식사를 하지 않은 회장은 식당을 나가며 주방장을 불러달라고 했다. 누구나 앞으로 벌어질 상황이 뻔히 예상되었다. 함께 자리했던 임직원들은 음식 맛이 없어 식사를 거의 못했으니 주방장을 혼내기 위해 부른다고 짐작했다. 하지만 마쓰시다 회장은 주방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 당신이 만든 음식은 아주 훌륭했지만 마침 내가 속이 좋지 않아 조금밖에 먹지 못했습니다. 혹시 내가 남긴 음식을 보고 당신이 불편할까봐 이렇게 불렀습니다.”

회장은 진심으로 직원을 존중하고 마치 주인 대하듯 행동했다. 이런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마쓰시다 회장에 대해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평생을 ‘인간존중 경영’을 실천한 진면목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직원이 행복한 인간존중 경영은 실제 기업 현실에서 경쟁우위 확보를 위해 중요한 핵심 전략이 되고 있다. 앞으로는 위대한 기업을 만드는 성공의 기준이 경영자들이 정한 성과나 목표의 빠른 성취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내가 재능 있고 창조적인 사람들에 둘러싸여 그들과 깊은 교류를 통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에 스스로 몰입할 것인가?’에 맞추어져 있다.

성공적인 조직은 다른 어떤 요소보다 사람을 중시한다. 미국 스탠퍼드대학 교수 제프리 페퍼(Jeffrey Pfeffer)는 (The Human Equation), (Hidden Value) 등의 저서에서 ‘조직이 지속적 경쟁우위를 제고하기 위해서는 인간존중 경영을 실천해야 한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즉, 어떤 기업이 경쟁기업에 비해서 더 높은 성과와 수익을 내도록 경쟁력을 높이고 경쟁우위를 가지려면 낮은 원가, 더 좋은 품질, 또는 고객만족을 우선순위 전략으로 추진하기보다 기업 구성원을 최우선으로 여김으로써 그들이 고객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고객의 로열티(충성도)를 높여서 누구나 쉽게 모방할 수 없는 지속가능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1980년대 이후 ‘일하기 좋은 일터’(GWP·Great Work Place)에 대한 연구가 전개되면서 상사 신뢰, 업무 자부심, 즐거운 동료애가 공통 요소로 판명되었다. 로버트 레버링은 기업의 GWP 수준을 진단하는 도구로 ‘신뢰경영지수’(Trust Index)를 개발하고 1998년부터 과 공동으로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을 발표해오고 있다. 우리나라도 해마다 ‘GWP 100대 기업’을 선정해 시상하고 있다.

결국 직원이 행복해야 고객을 행복하게 할 수 있고, 고객이 행복해야 이익이 많이 남아 주주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 GWP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일하기 좋은 기업 Top 10’의 평균 이직률은 2%이고 3배의 높은 성과를 창출한다.

한국도 일하기 좋은 직장 점점 늘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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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매년 에서 발표하는 ‘미국에서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과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기업의 7년간 연평균 성과 지표를 비교했을 때 전자가 후자에 비해 3배 정도 높은 성과를 보인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직원들이 좀더 직장 생활에 만족할 수 있도록 회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회사가 이제 단순한 직장이 아니라 꿈터(Dream), 비전터(Vision), 행복터(Happiness), 놀이터(Fun)가 되어야 한다.

일본 미라이공업은 선풍기를 틀어 가장 멀리 날아가는 쪽지에 적힌 이름부터 과장을 시키고, 볼펜을 던져 과장 승진자를 정하기도 해서 화제가 되었다. 7년 전 필자가 ‘사원 유토피아 경영’으로 유명한 이 회사의 야마다 아키오 사장을 초청해 인간존중 경영 세미나를 개최한 일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없던 사례 발표라 500여 명이 참석하여 대성황을 이루었다. 칠순에 접어든 야마다 사장이었지만 그의 경영론은 괴짜다 싶을 만큼 귀를 의심할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사원들을 놀게 해야 돼! 업무 할당량 따위는 필요 없어, 사원들은 다 알아서 해.”

당시 필자는 물론 참석자들은 입을 모아 그러한 경영 방식은 ‘선진국 일본이니까 가능하다’는 사실과 야마다 사장의 과거 전력이 연극배우였다는 개인적 차이 때문에 가능하다고만 여겼다. 선진 굴지의 기업(구글·SAS 등)에서나 가능할 뿐 여러 여건 때문에 국내에서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의견 역시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머나먼 외국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한 GWP를 표방하는 국내 기업들이 이미 생각 이상으로 많이 존재하며 그들의 이야기는 놀라움을 넘어 충격으로 다가올 정도다.

특히 우리 역사와 민족의 고유한 DNA인 신바람을 일으켜 한국인의 강점을 살려서 한국형 일하기 좋은 일터(K-GWP)의 모델을 만들어 조직문화를 과감하게 혁신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출발이 필요하다.

마음경영. 감성경영, 행복경영 같은 우리 정서에 맞는 새로운 방식으로 일하기 좋은 직장을 성공적으로 실천하는 국내 기업들이 점차 늘어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요 반가운 일이다.

필자는 5년 전 일본식 인사제도나 미국의 성과주의와 다른 ‘한국형 인사조직 모델’을 만들고자 연구회를 시작했다. 다양한 분야에서 인사관리 전문가로 활동 중인 50여 명의 연구회 회원들이 해마다 한국식 인사관리 모델을 연구하고 사례를 발굴하고 있다. 2015년에는 한국형 일하기 좋은 직장(K-GWP) 현장 사례 20개를 발굴했다.

내부 보고서 2집인 과 는 ‘한국형 인사조직 연구회’에서 심도 있는 연구 끝에 선별한 ‘한국형 GWP’ 현장 사례집이다. 직접 현장을 방문해 최고경영자(CEO) 강의도 듣고 각종 제도를 소개받아 구체적인 내용을 정리한 소중한 사례집이다.

이 책에 소개된 기업들은 채용제도, 연봉과 복지, 경영과 기업문화 등에서 일반인들이 언뜻 생각하기 힘든 파격을 선보이며 사람 중심의 행복경영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현재 진행형이며 앞으로 어떠한 결과로 나타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지만 사례에 소개된 회사들은 지금까지의 발전 과정이나 성장세로 볼 때 히든 챔피언, 글로벌 기업으로 가는 데 분명 뚜렷한 성과와 긍정적 결과를 낳고 있다.

이러한 국내 기업들의 변화는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한국 일터혁신그룹에서는 구성원 만족과 행복을 위한 한국형 K-GWP Index와 모델을 개발했다. 이는 서구에서 유행하는 GWP를 한국 기업 현실과 우리 풍토에 맞게 수정·보완한 것이다.

과거,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구성원 관점에서 삶의 질을 측정하는 종합 행복 진단 모델로, 회사의 비전·공정성·자부심·Fun·가족친화 등의 항목을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리얼 타임으로 측정할 수 있는 ‘한국일터행복지수’(Korea-Workplace Happiness Index)를 개발해 특허를 받아 적극적으로 보급하고 있다.

정부의 가족친화기업 인증제도는 여성가족부가 2008년부터 시행해오는 사업이다. 근로자들이 가정과 직장 생활을 조화롭게 병행할 수 있는 사회환경 조성을 촉진하기 위해 시작되었는데 올해 말까지 1800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세계중소기업협의회(ICSB) 한국지부, 중소기업청, 한국경제신문사 등이 2016년 3월7일 서울 잠실 롯데월드호텔에서 공동으로 개최한 ‘2016년 기업가 정신 중소기업 월드 콘퍼런스’엔 한국콜마 윤동한 회장, 서린바이오사이언스 황을문 회장 등 50명의 기업 대표가 모였다. 기업 규모와 업종은 다양했지만 이들의 목표는 단 하나였다. ‘사람이 중심 되는 기업문화를 만드는 데 힘쓰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직원이 발전해야 회사가 발전한다’는 사람 중심 기업가정신 운동이 저성장을 극복하고 한국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입을 모았다.

삼성경제연구소(SERI)도 2013년 직장인의 행복보고서를 냈다. 보고서에서 직장인의 행복(Worker happiness)이란 ‘직장생활 만족도가 높고 직장에서 긍정 정서를 가지고 있으며 직장생활이 가치 있다고 느끼는 상태’라고 정의했다. 직장인 행복의 3대 핵심 요소는 마음의 건강, 지원적 관계, 의미와 성장으로 나눴다. 6대 증진 방안으로는 긍정성 높이기, 에너지 충전, 의미 창조, 강점 개발, 감성리더, 사회적 관계를 제시하고 있다.

삼성은 이를 토대로 올해부터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기업문화를 구축하기 위한 로드맵을 본격 가동하기 시작했다. 5월에는 젊은 친구들을 위해 창의력을 발휘할 공간과 기회를 주고자 구글 캠퍼스와 유사한 1만 평 규모의 ‘센트럴파크’를 오픈해 임직원의 창의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벤처·동호회 공간, 헬스장 등 각종 편의시설로 구성했다. 이는 수직적이고 경직된 조직문화를 수평적이고 자유롭게 바꾸려는 ‘컬처혁신’ 시도의 일환인데 이러한 삼성의 변화가 다른 대기업들에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일과 사업을 통한 행복 추구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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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불황과 저성장으로 인한 성과주의 확산, 감원, 직장폐쇄 등으로 회사 분위기가 냉랭하기 쉬운 요즘, 직원들의 직장 내 만족도가 중요한 사실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의 국정과제가 창조경제요 국민행복이다. 더구나 대한민국호가 더 이상 ‘추격자’(Fast follower)가 아니라 ‘선도적인 경쟁력’(First runner)을 가지려면 자율과 창의는 물론 일에 몰입하는 것이 절대 필요하다. 자율과 창의 그리고 요즘 이슈가 되는 협업정신은 기존 기업문화나 일하는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

직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요인은 시대가 변함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다. 실제로 1960~70년대 가장 중요한 직원들의 동기 부여는 경제적 요인이었다. 1980~90년대를 거치며 성장 가능성이 직장 선택의 주요한 기준이 되었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는 직장이나 고용 안정이 직장 선택의 주요 요인으로 부각됐다. 지금은 사람 중심, 일과 삶의 조화 같은 자아실현이나 개인행복으로 키워드가 달라지고 있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직원이 행복하다는 의미가 무턱대고 잘해주고 복리후생이 넉넉한 것만 의미하지 않는다. 잘나가는 회사는 따뜻함과 함께 엄격함이 존재해야 하고 개개인이 회사 일에 몰입함으로써 개인이 성장하고 회사도 같이 동반 성장해 ‘지속가능경영’(Sustainability)으로 연결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러한 모델엔 우리 민족이 가진 고유 DNA를 살려 운영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우리 의식 속에는 정(情)이라는 게 있다. 정의 문화가 잘못하면 한(恨)이 서리지만 신바람으로 연계돼 나간다면 폭발적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에 주안점을 두고 한국형 모델(K-Model)로 발전시켜 미국·일본과 다른 형태로 진화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일하기 좋은 일터나 ‘사람 중심 행복경영’은 아직 완성 단계는 아니며 실험 중임에 틀림없다. 아무쪼록 머지않은 날 더 많은 직장인이 행복한 일터에서 웃으며 즐겁게 일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가재산 피플스그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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