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을 매개로 한 유흥문화는 도시 뒷골목 문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봉건사회와 근대사회를 가릴 것 없이 도시가 형성된 곳에서는 성의 문화가 활개를 친다. 조건에 따라 음지에서 암약하기도 하고 아예 양지로 나와서 활동하기도 한다. 이들이 지하경제와 도시풍속에서 차지하는 역할은 결코 작지 않다.
초보적 연구도 한 건 없어
100년 이전 조선시대에는 성의 문화가 기방(妓房)을 중심으로 전개됐다. 관청에 소속된 관기와 관의 예속을 벗어난 사창(私娼)들이 기방에서 성과 술과 음악과 춤을 팔았다. 도회지의 부유한 남자들은 돈을 싸들고 가서 기생들이 제공하는 성과 놀이를 샀다.
이른바 색주가에서는 남녀 간에 성을 사고파는 일들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조선 후기에는 큰 도회지마다 많은 색주가와 기생들이 존재했다. 예나 지금이나 이런 곳에는 돈이 모여들기 때문에 돈을 물 쓰듯 쓰는 곳이라 하여 ‘소금와자’(銷金鍋子)로 불렸다. 그렇기 때문에 색주가에는 기생에게 빌붙어 사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했다. 기생의 뒤를 보아주고 행세하는 기부(妓夫)를 비롯해 기생을 관리하는 기생어멈 가모(假母), 그리고 밥을 해주는 찬비나 잔심부름을 하는 행랑아범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기생을 찾아오는 오입쟁이를 기생에게 연결해주는 거간꾼이 있었다. 그런 남자를 조선시대에는 ‘조방꾼’이라 불렀다. 사전에는 창루 등에서 남녀 사이의 일을 주선하고 잔심부름 따위를 하는 사람을 조방꾼이라고 정의했다. 그런 제도가 사라졌으므로 지금은 이 말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조방꾼에 해당하는 말을 흔히 사용하는 말에서 찾아본다면 ‘뚜쟁이’라는 어휘가 그에 가깝다.
조방꾼이 행하는 일이 그리 떳떳하지 못하고 대단할 것이 없으므로 이들의 존재가 문헌에 나타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런 중에 겨우 몇 가지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연암 박지원의 저명한 작품인 에 등장하는 광문이 이러한 조방꾼의 성격도 지니고 있어 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또 연암의 ‘광문전 뒤에 쓴다’(書廣文傳後)란 글에 소아기(小阿其)란 이름의 기생과 최박만(崔撲滿)이란 이름의 조방꾼이 당시 한양에서 최고의 명성을 누린다고 밝혔다. 기생이 높은 명성을 누리는 것은 그다지 이상할 것이 없으나, 조방꾼이 큰 명성을 누린다고 병칭된 것이 주목을 요한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아마도 오입쟁이와 기생 양편에서 거간하는 조방꾼 역할의 중요성 때문이 아닐까? 음지에서 암약하는 기방의 속성상 그들 사이를 매개하는 거간꾼의 활약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당시 기방 사회에서 조방꾼의 존재는 예상보다 비중이 크고 힘을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조방꾼의 기능과 위상에 대해서는 초보적 연구가 한 건도 없다.
여하튼 한양 최고의 조방꾼이라고 연암의 글에서 분명히 제시된 최박만의 이름이 다른 저작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가 어떠한 이유로 유명한지 알 수 없다.
입이 무거워 ‘벙어리’라오조방꾼을 박지원은 ‘조방’(助房)이라 표현했다. 일반적으로는 ‘조방’(助幇)이라 쓴다. 그런데 이 표현을 ‘방한’(幇閒)이라 쓸 수도 있다. 조방꾼을 묘사한 에서는 이 표현을 썼다. 본래 이 어휘는 중국에서 사용해 봉건시대에 관료나 부호들의 보살핌을 받는 식객(食客)을 지칭한다. 부잣집 주인들이 바둑을 두고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릴 때 도와줘 주인의 여가생활에 동반자 노릇을 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다. ‘방한’은 원대 이래의 희곡에서 자주 등장한다. 저명한 소설가 루쉰(魯迅)은 이렇게 권력자와 부자들의 여가에 봉사해 먹고사는 부패한 문인을 분석한 글을 쓰기도 했다.
에는 우연찮게도 이런 ‘방한’으로 두 사람이 등장한다. 한 사람은 벙어리 방한(啞幇閒)이고, 다른 한 사람은 방한계의 우두머리(幇閒袖領) 이중배(李仲培)다. 이렇게 조수삼은 방한이란 용어를 썼지만 실제론 조방꾼이다. 이들의 행적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먼저 벙어리 방한부터 살펴보자. 그는 ‘벙어리 조방꾼’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성은 최씨다. 그러나 그가 실제로 벙어리였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벙어리이기는커녕 그는 용모가 준수하고 말을 매우 잘하는 사람이었다. 최는 기생과 오입쟁이를 맺어주는 능란한 재주를 지녔는데, 둘 사이의 은밀한 관계에 대해 절대 비밀을 유지했다. 그런 사연으로 그의 고객과 기생들에게 ‘벙어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는 한두 곳의 기방에 매여 일하는 자가 아니라 수많은 관기와 사창을 전체적으로 관리하는 이 바닥의 우두머리였다. 기생들의 정보를 손아귀에 쥐고서 그들을 돈이 많은 세도가와 부잣집 자제들과 중매해주는 일을 전문적으로 도맡아 했다. 조수삼은 그가 “날마다 세도가와 부잣집 자제들을 불러모아 꽃에 취하고 버들에 드러눕게 만들었다”고 했다.
그가 조방꾼 세계의 우두머리 행세를 하며 기방을 장악한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일종의 사업 방침을 갖고 있었다. 그는 남녀 간에 관계를 맺어주려고 하면 그 약속을 어기는 법이 없었다. 그리고 누가 누구와 하룻밤을 보냈는지 그 비밀스런 관계를 잘 아는 최씨는 그런 사실을 입을 봉했다. 비밀을 지킨다는 신의를 깨뜨리지 않았다. 그는 한평생 이 원칙을 버린 일이 없었다. 비밀이 보장된 만남을 주선하는 그를 바람기 있는 남자와 기생들은 아끼지 않는 자가 없었다. 그래서 최씨는 아예 ‘벙어리 조방꾼’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것이다.
10명에게 하룻밤을 약속하다전문적인 조방꾼으로서 최씨는 큰 세력을 갖고 꽤 큰 명성도 얻은 것으로 보인다. 그 덕분에 많은 돈을 벌었다. 그 자신이 그렇게 부유하지는 않았으나 손님들이 제공하는 재물을 받아 입는 옷과 쓰는 재물이 그의 고객인 부잣집 자제들과 차이가 없었다.
그가 고객을 기생에게 데려가는 구체적인 방법은 알 수가 없다. 다만 조수삼이 그를 평가한 다음 시에서 짐작할 뿐이다.
“황혼 무렵에 미인이 있답니다!” 말하려는 듯손가락을 해처럼 오므리고 시선은 서쪽으로 돌리네.
사람을 만나 홀로 꽃가지를 잡고 웃으니
젊은이들 앞 다투어 글자 없는 수수께끼를 짐작하네.
그가 암시를 하듯이 손가락과 꽃을 이용해 의중을 묻는 것이 나온다. 분명하지는 않지만 무슨 암호처럼 남녀 간의 약속을 맺어주기 위한 신호로 보낸다. 말로 거간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의 시선을 피해 고객과 약속하는 신호를 보내는 장면을 제시했다. 조방꾼 최씨는 이렇게 고객과의 비밀 약속을 잘 지켜준 것을 무기로 하여 당대에 명성을 누렸다.
조수삼은 또 한 사람의 조방꾼을 주목했다. 이번에는 손님을 농락하는 데 일가를 이룬 조방꾼이었다. 그가 바로 이중배다. 그 역시 조방꾼 세계에서 우두머리로 행세하던 사람이었다. 조수삼은 그의 다른 재능이나 특징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그가 언젠가 벌인 일종의 사기 사건을 비교적 자세히 기록했다.
이중배는 언젠가 자신과 거래를 하던 부잣집 자제에게 이런 통지를 했다.
“오늘 밤에 국색(國色)이 한 사람 나타났습니다. 오늘이야말로 그런 미인과 사랑을 나눌 절호의 기회입지요. 그러니 미인을 맞이하는 비용 1천전(錢)을 장만하여 옵시요!”
그런데 문제는 이런 통지를 한 명이 아니라 열 명의 손님에게 따로따로 보내어 약속한 다음 한 사람당 1천전씩 받아냈다는 점이다. 1천전이면 10냥으로 당시에는 매우 큰돈이었다. 각자 따로 약속을 정했기 때문에 서로들 눈치를 채지 못하고 천하절색과 밤을 보낼 단꿈을 꾸었다.
아홉은 가지 않고, 꽃그림자만 어른약속한 밤이 되어 열 명의 오입쟁이들이 하나둘 약속한 기생집에 이르렀다. 기름을 바른 창문은 깨끗하고, 창호지를 통해 새어나오는 등불빛은 환했다. 창문에는 고운 그림자가 내비쳤다. 무려 10냥의 돈을 선불로 내고 약속한 절세미인이 저 방 안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제각각 약속하고 찾아온 사람들은 모두 그 기생과 보낼 밤을 떠올리며 조바심을 냈다. 그러나 자리를 함께하고 기다리는 나머지 아홉 놈의 손님이 사라져야 가능하다.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면서 열 명의 남자가 제각기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저 아홉 놈이 어째서 지금 와가지고 이 어르신의 일을 망쳐놓는단 말이냐!’
그런 얄궂은 상황에서 이중배는 혀를 끌끌 차면서 낭패라는 듯이 욕지거리를 해대며 좌불안석 나갔다가 들어오기를 뻔질나게 했다. 빨리 약속한 만남을 이뤄줘야겠는데 손님들이 공교롭게 아홉 명이나 찾아와서 훼방을 놓고 있어 미치겠다는 투였다. 그런 이중배의 행동을 보고서 열 명의 손님은 이중배도 나머지 아홉 놈을 미워하고 있다고 하나같이 생각했다.
그렇게 제각기 아홉 놈이 빨리 자리를 떠야 일이 성사될 거라고 기다리다 보니 어느새 새벽닭이 울고 밤도 다 새버렸다. 천하절색과의 멋진 하룻밤을 고대하던 남자들은 기대가 물거품이 돼버렸다. 돈 10냥만 날려버린 꼴이었다.
먼동이 터오자 이중배는 자신도 무진 애를 썼지만 눈앞에서 너희도 확인한 것처럼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투였다. 자기 잘못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막걸리를 내오고 간단한 안주를 차려서 목을 축이게 하고는 손사래를 쳐서 날이 밝았으니 어서 돌아가라고 하여 보냈다. 문을 나서고서도 열 명의 사내는 이중배의 술책에 말려들었다는 사실을 여전히 눈치채지 못했다.
이중배는 돈 몇 푼 안 들이고 사내 한 명당 10냥씩 100냥이라는 거금을 단박에 손에 쥐었다. 창문 안에 앉혀놓은 여자가 천하절색인지 천하박색인지는 누구도 확인하지 못했다. 이런 맹랑한 사기를 쳤음에도 사기를 당한 자들은 자기가 당했는지조차도 몰랐다.
조수삼은 이런 이중배의 사기 사건을 이렇게 시로 묘사했다.
열 놈의 오입쟁이가 붙어앉아 돌아가지 않을 때주렴 너머 꽃그림자는 언뜻언뜻 어른거리네.
그들에게 그래도 박주산채일망정 주어 보냈다는,
이중배의 속임수가 지금껏 전해오네.
열 명의 오입쟁이가 앉아서 저쪽의 어른거리는 미인의 그림자를 곁눈질하며 조바심을 내는 장면의 표현이 재미있다. 이 사기 사건에서 하이라이트 중 하나가 바로 막걸리에 변변찮은 안주를 내놓아 목을 축이게 하는 장면이다. 끝까지 오입쟁이를 놀려먹인 대목으로 완벽한 사기를 멋지게 끝맺는 장면이다. 조수삼은 인상적인 두 장면을 시로 묘사해놓았다.
이 이야기는 조방꾼이 기생과 오입쟁이를 중매하면서 양쪽을 감쪽같이 속여 잇속을 차린 것으로 당시에는 꽤 인구에 회자된 사건이었으리라. 동시에 여러 명을 상대로 하여 사기를 치는 이러한 방법이 당시에는 고단수의 사기로 알려졌다.
뒷골목의 명성에 힘입어 당당히이러한 사기 사건과는 성격이 다르지만, 영조 때의 유명한 호걸인 김억(金檍)도 이런 술수를 부린 적이 있다. 그는 큰 부자인데다 천성이 호방하고 사치스러워 음악과 여색을 마음껏 즐겼다. 그는 늘 색깔이 화려한 비단옷을 휘황찬란하게 차려입고 다녔다. 칼 수집 벽(癖)이 있는 그는 칼을 구슬과 자개로 꾸며서 방과 장롱에 죽 걸어놓고는 날마다 한 개씩 바꿔 찼다. 칼이 많아서 1년을 하나씩 차도 다 차지 못했다.
그런 김억에게는 총애하는 기생 여덟 명이 있었다. 그들끼리는 서로의 존재를 모르게 했다. 어느 날 밤에 김억은 그 기생 여덟을 함께 불러 술을 마셨다. 기생들은 제각기 ‘김억이 총애하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다’라고 생각해 여덟 명이 동석하고서도 투기할 줄을 몰랐다.
김억이 쓴 권모술수가 앞에서 살펴본 이중배의 사기와 방식이 똑같다. 조방꾼은 직업상 이러한 술수의 발휘에 노련할 가능성이 높다. 어쨌든 이러한 허랑방탕한 인간까지도 도시 뒷골목의 명성에 힘입어 문사들의 붓에 당당히 오르게 되었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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