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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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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제일이었던 ‘낭독의 달인’들


높은 문맹률·낮은 경제력 때문에 소설 암송해 들려주는 전문가들 각지에서 활약
등록 2009-05-15 14:27 수정 2020-05-03 04:25

몇 년 전부터 방송과 신문에서는 책을 읽어주는 기획이 자주 등장했다. ‘낭독의 재발견’이라고 말해야 할까. 그저 눈으로 읽어 내려가는 독서(讀書) 또는 간서(看書)의 무미함에서 벗어나 소리내어 읽고 듣는 것은 혼자서 독서하는 고독함 대신 사람 사이의 교감을 선사한다. 대개 작가나 아나운서가 잔뜩 분위기를 잡고서 읽음으로써 청자의 감성에 호소한다. 이러한 낭송과는 달리 주로 아이들에게 이야기책을 읽어주는 일은 이전부터 꽤 많이 활성화됐다. 모름지기 책이란 눈으로 읽는 것만큼이나 입으로 낭송해야 한다는 게 오랜 전통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이 또한 전통의 복원이고 책 읽는 근본으로 되돌아가자는 노력의 하나이리라.

인기 제일이었던 ‘낭독의 달인’들 /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인기 제일이었던 ‘낭독의 달인’들 /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소설은 귀로 듣는 것이 더 일반적

그러나 더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이야기책은 아예 읽는 것이라기보다는 듣는 것이라고 해야 더 합당하다. 그런 이야기책의 대부분은 물론 소설책이었다. 조선 후기에는 남녀노소 신분고하를 따질 것 없이 소설을 널리 읽었고, 소설을 낭독하는 것이 대중의 일상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하지만 많은 소설책은 한문으로 쓰여서 읽을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 극소수였다. 한글로 쓰인 것이라고 해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조금 더 불어나는 정도에 그쳤다. 요컨대, 아무리 소설이 유행한다 해도 그 감상은 눈으로 하는 것보다 귀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만큼 문맹률이 높았다.

한편, 문맹과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제아무리 글을 읽을 줄 안다고 해도 책을 사거나 빌려서 볼 만큼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사람은 제한됐다. 이래저래 이야기책은 읽는 사람보다는 듣는 사람이 더 많았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시대가 제공하는 교양과 즐거움인 이야기책을 읽는 쾌락에 동참하고 싶지만, 읽지를 못하는 대중을 위해 새로운 직업이 탄생했다. 문맹자를 고객으로 이야기책을 읽어주는 사람이 그들이다. 그러나 문맹자만이 고객은 아니었다. 낭송의 기술이 발달하면서 소설을 읽어주는 것이 예술 단계로까지 성장했고, 글을 아는 사람도 듣는 즐거움을 위해 낭송자를 불러들였다.

조수삼의 에는 전기수(傳奇叟)란 이름의 직업적 낭독자가 등장한다. 그 사연의 전문을 들어보자.

“이야기책을 읽어주는 노인은 동대문 밖에 산다. 언문(諺文)으로 쓴 이야기책을 입으로 줄줄 외우는데 (淑香傳), (蘇大成傳), (沈淸傳), (薛仁貴傳) 따위의 전기소설들이다. 매달 초하루에는 청계천 제일교(第一橋) 아래 앉아서 읽고, 초이틀에는 제이교(第二橋) 아래 앉아서 읽으며, 초사흘에는 이현(梨峴)에 앉아서 읽고, 초나흘에는 교동(校洞) 입구, 초닷새에는 대사동(大寺洞) 입구, 초엿새에는 종루(鐘樓) 앞에 앉아서 읽었다. 그렇게 거슬러 올라가기를 마치면 초이레부터는 거꾸로 내려온다. 아래로 내려갔다가 올라가고, 올라갔다가 또 내려오면 한 달을 마친다. 달이 바뀌면 또 전과 같이 한다.

노인이 전기소설을 잘 읽었기 때문에 몰려들어 구경하는 사람들이 노인 주변을 빙 둘러 에워쌌다. 소설을 읽어가다 몹시 들을 만한, 가장 긴장되고 중요한 대목에 이르면 갑자기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 다음 대목을 듣고 싶어서 앞다투어 돈을 던지면서 ‘이게 바로 돈을 긁어내는 방법이야!’라고 했다.”

주기적으로 번화가 옮겨가며 공연

동대문 밖에 사는 노인은 동대문에서부터 종루까지 당시 서울에서 가장 번화한 곳의 한 모퉁이에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야기책을 암송해 들려주었다. 여섯 곳을 지정해놓고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사람을 불러모았다. 사람들은 그가 어느 날 어디에서 판을 벌이는지 알았다. 그의 레퍼토리는 과 을 비롯한 언문소설인데 이것들은 당시에 인기를 누렸다. 그는 단순히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소설의 장면과 인물의 개성을 살려서 들려주는 특별한 구연(口演) 실력이 있었기 때문에 많은 청중을 불러모았다. 그가 좌정한 곳은 당시 가장 번화한 거리의 목이 좋은 자리였을 것이다. 그런 장소를 독차지한 것을 보면 그는 제법 위세가 있는 행상 겸 기능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평범한 구연자와는 격이 다른 직업적인 전문가였다. 가장 긴장되고 드라마틱한 대목에서 중지함으로써 청중으로부터 보수를 받아내는 방법도 그런 수완의 한 측면이다. 이런 수완은 다른 기예에서도 종종 사용되는 방법이었다.

이야기에 빠져 이야기꾼 살해하는 일도

박지원도 에서 중국에서 이렇게 소설책을 읽어주는 장면을 구경하고 바로 조선의 골목과 시장에서 (林將軍傳)을 입으로 외워 구연하는 장면을 떠올렸다. 박지원이 떠올린 구연자가 에 등장한 전기수와 동일인은 아닐지 몰라도 크게 다름이 없다. 이렇게 불특정한 다수의 청중을 상대로 이야기책을 재미있게 읽어주는 직업인이 번화한 도시에서 출현해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런 사람을 조수삼은 ‘전기수’라고 불렀다. 전기는 소설이나 이야기책을 가리키므로 전기수는 이야기책을 읽어주는 노인이란 뜻이다. 그러나 이런 직업인을 부르는 일반적 호칭으로 사용됐다는 증거는 없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서울에서는 적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할 만한 증거가 남아 있다. 정조 14년 8월10일 우연하게 발생한 살인사건을 판결하면서 국왕 정조는 이렇게 말한 일이 있다.

“옛날 한 남자가 있었는데 종로 거리의 담배가게에서 소설책 읽는 것을 듣다가 영웅이 크게 실의(失意)한 대목에 이르렀다. 문득 눈초리를 찢고 침을 뱉더니 담배 써는 칼을 잡아 소설책 읽는 사람(讀史人)을 쳐서 그 자리에서 죽였다. 왕왕 맹랑하게 죽는 일과 우스운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국왕이 알고 있는 사실이므로 상당히 널리 알려진 사건일 것이다. 여기서는 소설책 읽어준 사람을 ‘독사인’이라고 했다. 사(史)는 곧 패사(稗史)로서 소설책을 의미하므로 독사인은 전기수와 같은 말이다. 종로에 있는 담배가게가 청중을 모아놓고 소설책을 읽는 장소로 사용됐다. 당시 종로의 담배가게는 다른 가게와 비교해 규모가 크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였다.

전기수나 독사인이 청중을 모으는 장소는 이렇게 인파가 모여드는 곳이었다. 상당한 인기를 끌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그들은 대단히 감동적으로 이야기책을 구연해 청중을 완전히 소설 속으로 몰입하게 만들었고, 그 때문에 현실과 허구를 분간하지 못하고 구연하는 사람을 살해하는 일까지 발생했던 것이다.

이런 사건을 보면, 당시 시장 한 모퉁이에서 수많은 청중에게 둘러싸인 채 이야기책을 흥미진진하게 구연하는 전기수와 그의 구연에 몰입한 청중들이 뿜어내는 분위기를 다소나마 유추해볼 만하다.

이러한 이야기꾼은 상업적으로 성공한 편에 속한다. 그러나 이들만큼 전문적이지도 못하고 상업적으로 성공하지도 못한 그룹으로, 떠돌이 행상처럼 이곳저곳 그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이야기책을 읽어주는 부류도 있었다. 에 등장하는 이자상(李子常)이란 사람이 이런 부류에 속한다. 이자상은 총명하고 기억력이 뛰어나 각종 술서(術書)를 모두 읽었다. 그는 백화문으로 쓰인 소설책을 모조리 꿰뚫었다. 그렇지만 혼자 힘으로 생계를 꾸려나가지 못할 만큼 가난해서 재상집에 출입했는데 소설책을 잘 읽는 솜씨를 인정받은 때문이었다. 나이가 들어서는 군문(軍門)으로부터 적은 봉급을 받았고, 친지들의 집에 자주 기식했다.

에 실렸으므로 당시에는 꽤 명성을 획득한 사람으로 볼 수 있다. 그의 장기는 바로 소설이란 소설을 모두 꿰뚫고 있는 전문성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생계를 꾸려나가지 못했고, 대신에 소설을 잘 구연해 그 재능으로 재상가를 돌아다니며 먹고살았다. 그는 앞서 나온 전기수나 독사인처럼 시장으로 나가 청중을 모아놓고 소설책을 읽을 만큼 상업적인 수완이 없었다. 본격적으로 전기수로 나서지도 못하고 다른 생계도 없었다.

여성에게 접근하는 ‘작업’ 수단?

이런 부류의 이야기책 읽어주는 직업인이 한양과 시골에서 활동한 증거가 제법 나온다. 예컨대, 구수훈(具樹勳)의 (二旬錄)에는 여장한 남자가 사대부집을 출입하며 성적 추문을 일으킨 사건이 실려 있다. 그런데 여장 남자가 여성들에게 접근한 중요한 방법 중 하나가 소설책을 잘 읽어주는 기술이었다. 이렇게 재상가의 사랑방이나 사대부가의 안채에 사람들이 모여 소설책을 잘 읽는 전문가를 초빙해 감상했다. 많은 사람이 모여 앉아 가락을 넣어 소설책을 흥미진진하게 구연하는 것을 듣는 장면을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다. 독자 한 사람이 책과 대면하는 고독한 독서 행위에 익숙해진 현대인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 시절 여러 목소리로 낭송하는 한 사람과 그 주변에 모인 많은 청중이 책을 매개로 이야기의 세계로 몰입하는 방식은 고풍스러우면서도 낭만적이다. 하나의 문화로, 하나의 유흥거리로 퍽 많은 인기를 누렸다.

그렇다면 소설책을 구연하는 것을 들은 청중의 느낌은 어떠했을까? 홍봉한(洪鳳漢)의 아들인 홍낙인(洪樂仁)이 역관 김홍철(金弘喆)이 구수하게 구연한 을 듣고서 이런 시를 남겼다.

청탁(淸濁)과 높낮이를 입놀림에 내맡기고

깊은 밤 등불 앞에서 안석에 기대 누웠네.

정강(靖康) 시대 호걸들이 산채로 들어갔다니

김성탄(金聖嘆) 문장은 소설가 중에 으뜸이지.

변화가 무궁하여 귀신들도 놀라게 하고

결말을 예측 못해 용도 내쫓네.

궁조(宮調)와 우조(羽調)가 서로 어울려

변방에서 저녁 뿔피리 듣는 것보다 훨씬 낫구나.

혼자서 을 읽는 것을 들었으므로 전기수가 구연한 것과는 꽤 다르다.

그런데 소설책을 구연하는 독특한 방식이 조선의 한양에만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 중국에서도 일찍부터 발전해 인기가 있었다. 앞서 말했듯이 박지원도 중국에서 를 암송해 들려주는 장면을 목도했다. 이렇게 소설을 구연한 대표적인 명인이 명나라 말엽의 설서가(說書家) 유경정(柳敬亭)이다. 장대(張岱)가 지은 (柳敬亭說書)에 그의 사연이 흥미롭게 묘사됐다. 중국이나 다른 나라의 비슷한 문화는 더 이상 말하지 말자.

조선으로 돌아오면, 한양만이 아니라 향촌에서도 이야기책을 읽어주는 직업인들이 찾아들었다. 경기 안산에 살았던 문사 유경종(柳慶種)의 (海巖稿)에는 를 암송하는 떠돌이 구연자를 만난 일이 기록돼 있다. 그는 “엊그제 남의 집에서 를 암송하는 자를 보았다. 한문과 언문을 섞어 외웠는데 소리가 유장하고 곡절이 있어 정말 들을 만했다. 아깝다! 그 재능을 잘못 사용하여 남에게 부림이나 당하다니!” 그리고 이런 시를 지었다.

서유기 외우는 자 나타나

쉴 새 없이 말이 쏟아져나오네.

기이한 재능을 헛되이 쓰는 것은 아까우나

환상적 사연을 자세히도 말하네.

한 부(部)의 (授神記) 책과도 같고

천 가지 연극 마당인 듯하네.

청아한 목소리에 곡절도 교묘하여

오래도록 귓전에 맴돌아 잊지를 못하겠네.

이 사람은 여기저기 초청을 받아 소설책을 들려주고 삯을 받는 사람으로 보인다. 아예 를 통째로 외워서 흥미 있게 들려준 모양이다. 소리가 유장하고 곡절이 있어 지극히 들을 만했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 단순히 암송하지 않고 등장인물의 성격을 목소리로 잘 묘사한 듯하다. ‘천 가지 연극 마당’이라고 했으므로 등장인물의 개성을 여러 가지 목소리와 태도로 잘 살려서 구연한 듯하다. 이렇게 안산 등지까지 소설책을 외워서 멋들어지게 구연해주는 직업인이 활동했다. 그만큼 수요가 있고, 그에 따라 그런 직업인이 공급됐다.

향촌에서도 활약한 낭독자들

이야기책을 읽어주는 전기수 문화는 언제까지 인기를 얻고 사라졌을까? 19세기에도 18세기를 이어 성행한 것으로 보이고, 이들의 후예는 20세기 초까지도 꽤 활동해왔다. 그러나 근대적인 고독한 소설 읽기가 성행하고, 대중의 기호를 자극하는 현대적 대중문화가 도시로 몰려오면서 이야기책 읽어주는 사람은 옛 문화가 잔존하는 향촌에서만 명맥을 유지했다.

지금도 전기수의 후예라고 부를 만한 분이 남아 있다. 정규헌씨는 1936년생으로 충남 청양 출생이다. 부친인 정백섭씨를 따라 어릴 적부터 소설을 가락을 얹어 읽어주는 활동을 했으나 생활이 안 돼서 1968년을 끝으로 다른 직업을 가졌다. 충청도에서도 오지라고 할 만큼 교통이 불편한 청양에 현대 문물의 세례가 가장 늦게 들어왔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는 등을 외워서 그를 초청한 사람들에게 들려주었다. 가락을 얹어서 구수하게 소설을 구연하는 그는 기능을 인정받아 충남도지정문화재 제39호로 지정받았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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