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또 다른 ‘완득이’를 위하여


유독 우리나라에만 지지부진한 ‘청소년문학’, 출판사를 위한 것인가 진정 청소년을 위한 것인가
등록 2008-11-27 17:31 수정 2020-05-03 04:25

질문을 던져보자. 당신의 아이가 책을 많이 읽기를 바라는가? 만약 그 대답이 ‘그렇다’라면, 책을 읽어 절로 공부가 잘되기를 바라는가? 아니면 책읽기 자체를 즐기기를 바라는가? ‘솔까말’해서 전자의 경우라면 우리는 지금 이대로 살면 된다. 가끔 그 사실이 마음에 걸리면, 시리즈나 사서 안겨주면 되고. 하지만 후자라면 좀 생각해볼 문제들이 있다.
여러 국적과 장르의 소설들이 한 번씩은 번갈아가며 유행의 권좌를 차지한 지금, 한국의 문학 시장에서 최후의 미개척지는 바로 청소년 문학이다. 서구 출판계에서는 이른바 YA(‘Young Adult’의 약자)라 불리는 청소년 문학이 하나의 어엿한 장르로 튼튼하게 자리잡은 지 오래지만, 한국에서 청소년은 출판 분야에서도 오랫동안 ‘낀’ 세대였다. 어린이 책 중에서 분량이 두꺼운 책이 청소년 도서로 취급되고, 나 등 성인들의 베스트셀러가 똑같이 팔리며, 심지어 나 처럼 20년 전의 책들이 여전히 대물림되기도 한다.

또 다른 ‘완득이’를 위하여. 한겨레 자료

또 다른 ‘완득이’를 위하여. 한겨레 자료

다들 이런 사실을 모르는 게 아니면서도 분야의 개척이 생각보다 빠르게 이어지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청소년 문학에 대한 가상의 수요는 늘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을 실제로 바꿀 길은 ‘입시’를 비롯한 여러 가지 거대한 장벽에 가로막혀 있다.

청소년 책의 구매 과정은 크게 보면 세 가지로 나뉜다. 가장 많은 경우는 역시 부모가 책을 사주는 경우다. 주로 베스트셀러나 전집 단위의 구입이 많다. 둘째, 청소년 자신이 용돈을 털어 구매하는 경우다. 팔리는 책은 앞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는 않으나 ‘NT노벨’처럼 그들이 실제로 즐겨 읽는 상업적 장르문학이 다소 포함된다. 셋째, 학교 도서관에서 구입하는 경우다. 대개 학교 도서관은 1년 동안 가용할 수 있는 예산이 정해져 있고, 주로 연말에 한꺼번에 구입하거나 1년에 두 번 정도 정기적으로 구입한다. 어느 고등학교 교사의 말에 따르면, 대개 출판사에서 보내는 카탈로그나 ‘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책따세) 혹은 사서 모임 같은 단체에서 권하는 리스트를 참조해 그대로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현재로서 ‘청소년 전용’ 문학을 펴내는 출판사들이 가장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건 바로 세 번째 경우다. 웬만한 베스트셀러가 아닌 이상 부모가, 또는 아이가 스스로 청소년 문학서를 고르는 경우는 많지 않으며, 아이들이 책을 고를 때 사서 교사나 국어과 교사의 추천에 의존하는 경우가 짐작보다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루트를 통한 판매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 그나마 참여정부 시절에는 각 중·고등학교에 도서관 예산이 예전보다 넉넉히 배정됐고, 한동안 사서 교사를 육성하기 위한 프로그램이 가동되어 내 주위의 일부 편집자들도 재교육을 받고 사서 교사가 된 경우가 더러 있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뀐 지금, 도서관의 양적·질적 확대 정책이 얼마나 일관되게 지속될 수 있을까 하는 건 차치하더라도, 문제는 MB 정부가 펼치는 교육정책의 기본 방향이다. 서울시교육감이 된 이의 됨됨이나 잇따른 정책 소식을 접할 때마다 과연 청소년들에게 책을 읽을 물리적 시간이 확보되겠는가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이런 마당에 책을 기획하는 입장에서는 현실적으로 지금의 우리에게 청소년 문학이라는 분야가 과연 필요한가를 다시 한번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이 필요는 그저 출판사들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진정 독자인 청소년을 위한 것인가.

물론 그렇다고 출판사들이 마냥 한숨만 쉬고 있는 건 아니다. 최근 4~5년 사이, 보물창고나 바람의아이들, 푸른책들 등 본격 청소년 문학을 펴내는 출판사들이 늘어가고 있으며, 사계절출판사의 ‘1318 문고’ 같은 히트 시리즈도 굳건히 존재한다. 올해는 창비와 문학동네, 그리고 민음사의 아동서 자회사인 비룡소가 한꺼번에 청소년 문학 시리즈를 열었다.

또한 올해 출간된 책들 중에서 의 약진은 눈여겨볼 만하다. 어린이·청소년 분야는 유독 국내 저자에 대한 편호가 높은 편인데, 이를 대충 감안하고 보더라도 잘 팔리는 국내 청소년 소설들 중에는 담고 있는 문제의식에 비해 서사 구조나 문체가 다소 취약한 작품들이 대다수다. 는 이런 문제들을 씩씩하게 뛰어넘은 작품으로, 한국적 가치와 문제를 고스란히 담아내는 동시에 성인 독자층들도 만족시킬 만한 완성도와 기획력을 성취해 상반기 베스트셀러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당신의 아이가 정녕 책을 즐기고 가까이하기를 바란다면, 또 다른 의 탄생을 위해 작가들과 출판계가 분투하는 동안, 당신에게도 할 일이 있다. 이 정부의 교육정책과 도서관 정책 방향을 예의 주시하고 비판하는 일이다. 이 시점에서, 청소년 독서 인구의 양적 증가는 전적으로 교육정책 시스템과 국민인 부모의 의지에 달려 있으며, 더더군다나 질적 고양은 그 이후에나 찾아오는 열매이기 때문이다.

태풍클럽 출판 편집자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