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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통’이 없는 사람들?

등록 2001-01-17 00:00 수정 2020-05-02 04:21

‘윗사람 권위’의 굴레를 벗어던진 노르웨이 사회… ‘식민지적 체통문화’가 학계를 좀먹어서야

한국사회에 남아 있는 가장 강력한 유교적 유습 중 하나는, 어느 정도의 위치를 차지하는 사람들의 ‘체통’을 중요시하는 관습이다.

‘체통’이라는 개념은 그 의미가 다양하고 여러 방법으로 해석될 수 있지만, 사실상 직업, 관등, 연령의 위계 질서를 의례적으로 일상적인 언행에서 확인하는 측면도 있다. 즉, 가장 일상적인 예는, ‘윗어른’의 ‘체통’으로서 지위·연령이 낮은 사람에게 먼저 찾아가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은 한국사회의 상식이다. 마찬가지로 유교의 그릇된 식민지적 해석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개인의 발언권도 이 ‘체통’의 개념에 의해서 상당히 제한된다. ‘윗어른’의 말에 직접 대놓고 반대하는 일이, 부정적인 의미가 강한 ‘말대꾸’로 불리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학술대회에서도, 발표자와 토론자의 연배·지위상의 안배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인다. 그리고 실제로 문제가 있는가 없는가를 떠나서, ‘윗어른’의 허물을 지적하는 ‘반(反)체통적인 행위’는, 보수적인 한국 학계에서 ‘배은망덕’ ‘반역’으로밖에 인식되지 못한다.

먼저 연구실로 찾아온 학부장

이번의 ‘이명원 사건’- 즉, 한 원로의 표절 사실을 밝혀낸 젊은 학자 이명원의 정당한 지적에 대한 학계의 발악적인 반응- 의 문화적인 본질은, 바로 보수적으로 해석된 이 ‘체통’의 개념에 있지 않은가? ‘윗어른’의 학설이 아무리 일본·미국 통설의 ‘재탕삼탕’에 불과하다 해도, 그 ‘체통’을 감히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이다.

노르웨이에서 필자가 처음부터 감지한 것은, 서로 수평적인 관계를 가진 개개인의 존엄성이 잘 지켜져도, 수직적 관계를 전제로 하는 ‘체통’이라는 개념은 애당초 없다는 것이다. 이 사실이 필자에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오슬로대학에 부임한 지 2∼3일 지나서였다. 연구실에 앉아 있는 필자에게 느닷없이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는데, 전화하는 사람이 ‘인문학부 학부장’이라고 자기를 소개했다. 필자는 조금 당황했다. 필자에게 이미 익숙해진 한국적인 관례대로라면, 직계 상사이자 연배가 훨씬 더 높은 학부장한테, 젊은 신임 교수인 필자가 먼저 가서 ‘인사를 드리는’ 것은 부임의 당연한 절차였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상하의 위계 질서도, 이 질서를 의례화시킨 ‘윗사람’의 ‘체통’도 서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이와 같은 현실이 그때까지 기억에 생생히 남았던 필자는, 재빨리 학부장한테 “가서 인사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반응에 매우 놀란 듯한 상대방은, “왜 옵니까? 5분 내에 내가 당신의 연구실로 찾아가겠다”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 대답을 들은 필자는 처음에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러시아에서도 한국에서도, 상사가 나이 적은 부하에게 와서 먼저 인사하는 일을 한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5분 뒤에 백발이 성성한 학부장은 정말로 나타났다. 학부장과의 초면의 자리에서, 필자가 ‘인사를 드리는’ 것이라기보다는, 학부의 행정부가 필자의 연구에 어떤 도움을 주면 좋겠느냐는 등의 학부장의 자세한 실무적인 물음에 대답해야 했다.

그 자리에서 필자가 이해한 것은, 노르웨이 사람에게는 그 직위의 고하와 무관하게, ‘아랫사람’의 의례적인 복종을 전제로 하는 ‘체통’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상사는 그 ‘체통’을 유지하기 위해서 부하를 ‘불러서’ 경직된 언행으로 ‘위엄’을 세울 필요가 없는가 하면, 부하도 형식적인 상하 관계를 염두에 둘 필요조차 없다는 것이다. 둘 다 형식적인 위계 질서를 벗어나, 효율적으로 일에 전념할 수 있다는 것은 진정한 자유와 행복이 아닌가?

이 ‘체통’의 굴레를 노르웨이사회가 완전히 벗어났다는 사실을 또 한번 체감한 것은, 아시아 인권 문제에 관한 한 토론회의 공고를 읽어볼 때였다. 발표자 중에서 전 국무총리인, 본데비크의 이름이 보였다. 대학교의 평범한 월례 토론회에서 지금도 정계의 거물로 꼽히는 전직 국무총리가 참여한다는 것 자체가 필자의 눈길을 끌었다.

교수에 대한 학생들의 생생한 비판

그러나 그것보다도, 발표자 이름 밑에 쓰여진 토론자의 이름·직위·소속은 필자에게 많은 충격을 주었다. 1년 전까지 국정 운영의 총책임자였던 본데비크의 발표문에 대해 토론해야 할 사람은, 다름 아닌 본 학부의 20대 박사 과정생이었다! 정치계의 명사가, 학위도 지위도 권위도 없는 젊은이로부터 지적과 질문을 겸허하게 들어주는 것은, 러시아에서도 한국에서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노르웨이에서는 이와 같은 처사가 당연한 일처럼 인식되어 있었다.

‘체통’의 개념이 없다는 것은, 교수에 대한 강의평가 방법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학생들이 무기명으로 답안지에 기입하는 데 반해서, 노르웨이에서는 간담회형 중간 평가가 효과적인 방법으로 여겨진다. 즉, 학생들이 교수의 수업 방식의 장단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시점에서(보통 개강 한두달 뒤에), 학생과 교수, 그리고 학과의 학생 상담 직원이 한자리에 모여서, 학생들이 교수에게 거침없이 비판과 요구를 하는 것이다. 비판과 요구의 내용은, 강의 내용의 부실이나 과제의 일관성 결여, 학생 참여 유발의 부족 등 각양각색이다. 예를 들어서, 필자의 경우에는, 학생들이 ‘동양사 전체의 거시적인 분석의 미비’를 지적할 정도로, 비판이 구체적이고 상세하다. 교수의 의무는, 학생들의 이런 비판을 최대한 수용해서 학기의 남은 기간 동안 미비점을 보완하는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간담회에서 학생과 교수는 시험 방법에 대해서도 합의하기도 한다. 수요자의 반응을 직접 들려주게 하는 이와 같은 제도가 매우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필자는 금세 이해했지만, 한국적인 습관에 젖어서 그런지, 학생들이 강의 내용을 샅샅이 분석·비판하는 데에 대한 불만이 자신도 모르게 마음의 한구석에서 생기기도 하였다. 이 불만을 한 동료에게 털어 이야기하자 그가 그렇게 말했다.

“옷을 맞추겠다는 고객이 재봉사에게 왔다고 상상해보시오. 옷을 계속 입어보고 고객의 상세한 요구와 의견을 들어주지 않으면 제대로 된 옷을 만들겠어요? 그 의견과 요구를 무조건 들어주어야 하는 재봉사의 자존심이 상해요? 아니죠. 그러면, 수요자의 요구에 맞추어서 수요자에게 필요한 지식을 수요자에게 편리한 형태로 공급해주어야 할 국가 공무원인 우리가, 재봉사와 뭐가 다르죠? 똑같은 봉사직인데, 우리가 왜 유달리 자존심을 내세워야 합니까?” 이 말을 들은 필자는, 무어라고 반대할 수 없었다. 상하 관계도, ‘체통’도 없는 평등한 사회의 논리가 워낙 명확했기 때문이다.

‘이명원 사건’의 문화적 본질

필자의 경험으로 한국 학생들의 근면성이나 인내력, 한국 소장파 학자들의 학구열과 열성은, 유럽의 그것보다 훨씬 높다. 그러면, 지금까지도 많은 분야에서, 한국이 낙후성과 후진성을 면치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사회 심리적인 측면에서, 바로 비판과 토론의 길을 가로막고 있는, 사회 지배층의 그릇된 식민지적 ‘체통’ 의식이다.

이명원씨의 행위가 사회·학계에 의해서 당연하고 올바른 것으로 여겨졌다고 상상해보자. 과연, 그렇다면 지금도 서구·일본의 옛날 학설을 베껴서 학문을 후진화·예속화시키는 ‘원로’들이 그렇게 많았을까? 그 ‘학술적 매판 자본’의 권위가 과연 지금처럼 절대적이었을까?

무능력과 비효율을 보호해주는 ‘체통’이라는 사회적 메커니즘이 본격적으로 제거될 수 있다면, 한국사회의 발전은 배로 가속되어 머지않은 시일에 세계에서, 점차 자신의 자리를 차지해 갈 수 있으리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박노자/ 오슬로 국립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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