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아직도 사무실 거기죠?”
여전히 그곳에 그대로 있으리라 짐작은 했지만, 여전히 그곳에 그대로 있는지 물어봐야 할 만큼 오랜만이었다. 인권영화제 취재 때문에 인권운동사랑방 사무실에 갔다. 혹시 가는 길을 잊었으면 어쩌나 걱정도 하면서 말이다. 다행히 기억은 정확했다. 대학로 어디쯤 사무실은 여전했다.
예전처럼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들이 모여앉아 직접 지은 점심을 먹고 있었다. 배경내 상임활동가는 “어? 동욱이형!” 하고 맞아주었고, “왜 이렇게 말랐어요?” 하는 ‘덕담’도 잊지 않았다. 쭈뼛거리며 “다시 조금 쪘는데요”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살이 빠졌다가 다시 찌는 동안, 나는 인권과 조금 떨어져 있었다. 두어 해 전부터 문화기자 한답시고 세상일에 시큰둥했다. 인권운동사랑방 사무실을 보면서 “그대로네요”라고 말하자 배경내씨는 “어? 많이 바뀌었는데”라고 대답했다. 그대로였으면, 하는 마음이었을까.
물론 예전에도 어쩌다 한 번씩 들렀다. 그것도 일 때문에. 차마 말하진 못했지만 인권운동사랑방은 나에게 각별한 존재다. 여러모로 우울했던 90년대 중반, 떠오르는 인권운동마저 없었다면 그 시절을 견디기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인권운동사랑방은 시민의 틀에 갇히지 않고, 정권의 눈치 살피지 않고, 자본과 타협하지 않고, 개인의 명망을 추구하지 않는 인권운동의 상징이었다. 최소한 내게는 그랬다. 배경내, 서준식, 류은숙, 유해정, 이창조, 이주영, 김정아, 박래군…. 내게는 존경의 이름들이다. 어쩌다 기자가 돼서 그들을 만날 때, 실수나 하지 않을까 솔직히 떨렸다. 흠모해 마지않던 운동가들을 직접 만나면서 실망하는 경우가 없지 않았지만,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은 누구를 만나도 실망스럽지 않았다.
내가 배워야 할 모든 것을 인권운동사랑방에서 배웠다고 하면 과장이지만, 내가 아는 것의 상당한 부분을 이곳을 통해 배운 것도 사실이다. 불심검문 거부, 감옥 인권, 사회권, 대충 기억나는 단어들이다. 인권운동사랑방이 주최하는 인권영화제는 세계인권운동의 과거, 현재, 미래와 나를 이어주는 다리였다. 97년 홍익대에서 <하비밀크의 시대>를 보면서 서구 게이 인권운동의 역사를 처음으로 목격했고, 98년 동국대에서 <칠레전투>를 보면서 인류 역사의 아름답고 처연한 순간에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2000년 <제9법안의 찬반투표>를 통해 늙은 진보와 젊은 보수를 보면서 한국의 미래를 떠올렸다. 김정아씨의 인권영화제 역사 이야기를 들으면서, 홈페이지에서 역대 상영작 목록을 보면서 희미한 옛사랑의 추억이 살아났다. 가뭄에 콩 나듯 영화를 보았지만, 내 청춘의 영화제를 꼽자면, 인권영화제가 첫 번째다. 인권영화제의 흔적은 머릿속뿐 아니라 옷장 안에도 남아 있다.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이 모국어로 쓴 글귀가 새겨진 제7회 인권영화제 티셔츠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캠페인 티셔츠 중 하나다. <인권하루소식>은 한국의 인권 상황과 나를 이어주는 다리였다. 얼마 전 <인권하루소식>이 종간한다는 소식을 듣고 잠시 마음이 허전했다. 어쩐지 한 시절의 순환이 마감된 듯한 회한이 들었다. 솔직히 <인권하루소식>을 ‘커닝해’ 적잖은 취재거리를 얻었음을 고백한다.
그러니까 나에게도 인권 기사를 쓰던 시절이 있었다. 어둑한 퇴근길에서 불행의 알리바이를 찾다가, 혹시 하는 일이 공허하니까 사는 것도 공허한 것 아니냐, 어쭙잖은 생각을 한다. 감히 현장에 가까이 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현장에서 더욱 멀어지니까 더욱 공허해지는 것 아니냐고, 나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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