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축구계의 이적시장은 7월부터 약 두 달 동안 이어진다. 그 시기에 벌어지는 감독과 선수들 그리고 클럽과 선수들 간의 갖가지 실랑이는 마치 헤어지기 직전의 연인들이 벌이는 증오의 퍼레이드나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려는 연인들의 밀어와 닮아 있다. “그렇게 사랑했으면서 나를 떠나겠다고?”와 “너를 정말 사랑해. 제발 나를 택해줘”의 싸움.
물론 토트넘을 떠나지 못하는 개러스 베일을 보며 마녀의 계략에 빠진 신데렐라를 떠올리거나, 옛날 옛적에 바르셀로나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다가 바르셀로나 팬들이 던진 돼지머리에 맞을 뻔했다는 루이스 피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로미오와 줄리엣을 떠올리는 자신을 보면 ‘이건 병이잖아’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적시장이 연애시장과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은 쉽게 버리기 힘들다.
자본주의가 탄생시킨 많은 ‘시장’에는 필연적으로 ‘에이전트’(중개인)가 등장한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에이전트의 논리마저 통하지 않는 시장이 있다면 그것은 단연 이적시장과 연애시장일 것이다. 돈보다 의리를 택하거나, 클럽을 너무나 사랑해서 혹은 그저 정에 이끌려서 이적을 결정하는 선수가 종종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로 인해 그들의 사랑이 깊어지기도 하고, 반대로 팬들이 그 선수의 유니폼을 태우기도 한다.
이번 여름, 역시나 우리를 설레게 한 이적 이야기 중 하나는 박지성에 관한 것이다. 이제는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 감독인 알렉스 퍼거슨이 박지성을 퀸스파크 레인저스(QPR)로 보낼 당시 “같은 프리미어리그 클럽으로만 가지 않았어도 이적료를 더 낮춰주고 싶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이적료는 헤어지는 연인, 아니 선수에게 클럽과 감독이 행사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 퍼거슨 감독의 말로 인해 ‘아, 이 두 사람은 정말 사랑했구나’ 하는 생각도 했었다.
사랑 대신 실리를 택할 수밖에 없었던 박지성이, 그마저도 사이가 잘 풀리지 않아 1년을 고생하는 모습을 보며,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물질이 아니라 사랑인가 하는 생각이 굳어갈 즈음, 그가 한 번 더 PSV 에인트호번의 유니폼을 입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역시 중요한 것은 사랑이야!) 친정팀으로의 (임대를 통한) 복귀는 그가 택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의 결말이나 다름없어서 천재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프리미어리그, 적어도 맨유 팬들은 돈의 노예가 되어 다른 프리미어리그 팀에서 뛰는 박지성을 보지 않으니 그를 당당히 그리워할 수 있게 됐고, QPR가 만에 하나 1부 리그로 승격한 뒤 PSV로 임대된 덕분에 제 기량을 유지한 박지성이 돌아와 팀의 호성적에 보탬이 된다면 ‘먹튀’ 등의 오명은 한여름 눈 녹듯 사라질 것도 분명한 일이다.
물론 모든 연인의 관계가 생각처럼 쉽게 풀리지 않듯 실제로 일이 그렇게 돼갈지는 여전히 미지수지만. 다만 ‘사랑 따위 필요 없어’라고 하는 것은 결국 완전한 거짓말이라는 생각을 한 번 더 갖게 된다. 적어도 1년, 설령 연봉이 반의 반으로 깎였다 한들 ‘위송빠르크’를 들으며 뛸 박지성의 심장이 정말 행복할 거라는 생각을 하니 말이다. 내가 세상만사를 너무 간단하게 생각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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