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소울 시티’, 도시가 나의 영혼일 리는 없으니, 나의 영혼과 만나게 해주는 도시란 뜻일 게다. 나의 영혼은 나의 것이지만, 그렇기에 만나기 어렵다. 내가 눈앞의 무언가에 정신 팔려 있을 때, 내 영혼은 숨는다. 눈앞의 대상이 사라지고, 자신 말고는 대면할 게 없을 때 우리는 나의 영혼과 만난다. 2009년 4월부터 1년간 살던 일본의 작은 도시 고다이라는 이런 의미에서 내 영혼과 자주 만나게 해준 도시였다.
도쿄 신주쿠에서 JR 중앙선을 타고 30분쯤 가면 고쿠분지역이 있다. 그 역에서 지선으로 갈아타고 한 정거장을 가서 히토쓰바시학원역에서 내려 10분쯤 걸어가면 히토쓰바시대학 기숙사가 나온다. 예전에 대학 캠퍼스였는데 대학이 전부 구니다치로 이전해 기숙사와 게스트하우스로 사용되고 있는 곳, 거기서 1년의 시간을 보냈다.
고다이라는 작은 시인지라 자전거를 타고 돌아도 그리 오래지 않은 시간 안에 한 바퀴를 다 돌 정도였다. 주변에 서점은 물론 식당조차 정말 작은 ‘동네식당’ 같은 것 말고는 몇 개 없어서, 책을 사려고 해도 음반을 사려고 해도 구니다치까지 가야 했다. 시골처럼 조용하고 한적해, 전차가 지나갈 때면 건널목 차단기 내려오는 땡땡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그 소리와 함께 시선에 들어오는 것은 아직 오지 않은 전차가 아니라 차단기 앞에 서 있는 나 자신이었다.
그러나 무언가 ‘없음’만으로 영혼과 만나게 되는 것은 아닐 터다. 고다이라라는 말에서 떠오르는 걸 하나 고르라고 하면, 머뭇거릴 것도 없이 매일 한두 번은 혼자 걸었던 다마가와상수의 산책로를 들게 된다. 에도(도쿄)에서 먹을 물을 대려고 에도시대에 만들었다는 이 상수로는 내가 살던 집 바로 옆에 있었다. 상수로를 따라 줄지어선 나무들, 그 나무를 끼고 끝없이 이어진 좁은 길, 그리고 그 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 그들을 배려해서인지, 가끔씩 만나는 개들도 짖는 놈이 없었다.
상수로를 따라 서쪽으로 가면 쓰다주쿠대학이 나오고, 고다이라 중앙공원이 나온다. 거길 지나 한참을 더 가면 ‘민족의 위대한 령도자 김일성 수령 만세!’라는 간판이 커다랗게 옥상에 서 있는 조선대학이 나온다. 재일조선인에 대한 일본 우익의 폭행 때문인지, 학교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게 되어 있어서, 나는 그저 자전거로 스쳐지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와 반대 방향으로 한참을 가서 호세이대학 근방에서 남쪽으로 꺾어지면, 아름드리나무들이 평화롭게 서 있는 넓은 무사시노공원이 나오고, 거길 좀 지나면 유명한 문인들이 많이 묻혀 있다는 다마레이엔이란 커다란 묘지가 나온다. 그 경로를 따라 친구의 대학원 세미나에 참가하려고 매주 도쿄외대에 갔다. 자전거로 1시간가량을 가야 하는 거리니 가깝다곤 할 수 없었지만 나무 그늘로 기분 좋은 길이었다. 중간에 초밥을 싸게 파는 가게에 들러 도시락을 하나 사들곤, 무사시노 공원을 소요하기도 했다.
산책하며 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내 영혼과 만나고 그와 대화하게 된다. 이전에 읽고 공부했던 것이 그 대화 속에 끼어든다. 그런 식으로 때로는 ‘외부’라는 철학적 개념을 둘러싸고 하이데거와 레비나스, 블랑쇼 등에 대해 대화를 했고, 공동체의 존재론적 의미에 대해, 대중에 대해, 혹은 대중의 정치적 감수성에 대해 ‘토론’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은 나중에 하나씩 책이 되어 나왔고, 또 나올 것이다. 멈춘 것 같지만 속으로 익어가던 숙성의 시간, 그것은 저 작고 조용한 도시 고다이라가 내게 준 커다란 선물이었다.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단독] 입법조사처 ‘한덕수, 총리 직무로 탄핵하면 151명이 정족수’
음악인 2600명 “구미시장 사과하라”…이승환, 공연 요청 늘어 연장
윤석열 쪽 “엄연한 대통령인데, 밀폐 공간에서 수사 받으라니”
‘내란 비선’ 노상원 수첩에 정치인·언론인 ‘사살’ 표현 있었다
이승환 “‘정치 언행 않겠다’ 서약 거부, 구미 공연 취소 통보 진짜 이유”
노상원 수첩, 방첩사 체포명단과 겹친 ‘수거 대상’…요인 사살까지 계획
[단독] 윤석열, 3월 말 “조만간 계엄”…국방장관·국정원장·경호처장에 밝혀
홍준표, 마음은 대선 ‘콩밭’…“대구 시장 졸업 빨라질 수 있어”
이승환 구미 콘서트 취소 후폭풍…“김장호 시장은 사과하고 사퇴하라”
[속보] 헌재 “윤석열 통보서 받은 걸로 간주…27일 탄핵심판 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