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짧은 생을 돌아나오다

한지혜 소설가의 파리 페르라셰즈… 이국의 공동묘지, 죽음 속에서 길을 잃고 찾다
등록 2012-05-04 14:34 수정 2020-05-03 04:26
페르라셰즈의 어두운 나무 그림자 사이를 헤매다 만난 짐 모리슨의 묘지. 여기서 잠시 멈추었다가 나선 길은 빛을 향해 이어져 있었다. <한겨레> 남종영

페르라셰즈의 어두운 나무 그림자 사이를 헤매다 만난 짐 모리슨의 묘지. 여기서 잠시 멈추었다가 나선 길은 빛을 향해 이어져 있었다. <한겨레> 남종영

아버지가 쓰러지고 며칠 만에 살던 방의 보증금 1천만원을 고스란히 병원비로 냈다. 그길로 은행에 가서 3년짜리 적금 상품에 가입했다. 아버지는 식물인간이 되었고, 다니던 회사는 부도가 나서 6개월이나 월급을 받지 못했다. 적금에 들어가는 돈은 사실상 마이너스 대출의 일부였다. 그래도 해지하지 않았다. 적금은 내 몫의 삶을 어떻게든 붙잡고 있다는 상징이자 위로였다. 2년이 조금 넘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만기가 될 무렵 동생이 결혼을 했다. 대출을 갚고, 결혼할 동생에게 조금 보태고 나니 200만원이 남았다. 허무했다. 무엇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무얼 하든 아까울 것 같았다. 그래서 비행기표를 끊었다. 프랑스 파리로 떠나는 비행기였다.

파리라고 말하니 좀 거창하다. 처음 이틀은 파리를 보았다기보다 함께 간 일행의 등만 보았다. 사흘째 되던 날, 일행과 헤어졌다. 지도책 한 권을 챙겨들고 지하철을 탔다. 제일 먼저 페르라셰즈역에서 내렸다. 파리에 오면 꼭 가보고 싶던 곳이었다. 그러라고 말해준 이가 있었다.

페르라셰즈는 파리의 유명한 공원 묘역 중 한 곳이다. 짐 모리슨, 오스카 와일드, 마르셀 프루스트. 에디트 피아프 등 파리가 사랑한 인물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그러나 피아프를 제외하고 파리가 사랑했을지는 몰라도 내가 사랑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곳에 갔다. 왜였을까. 모르겠다. 그곳에 가보라고 말해준 이의 얼굴에 스치던 어떤 표정에 미혹됐을 수도 있고, 식물인간이 된 아버지 옆에서 샴쌍둥이처럼 붙어 있는 삶과 죽음의 형태를 2년 넘게 겪으며 나도 모르게 생과 사의 경계에 친밀감을 느끼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유가 무엇이든 나는 입구부터 잘못 찾았다. 정문이라고 생각한 곳은 옆문이었다. 한없이 어둡고 축축한 길만 이어졌다. 내 키보다 높은, 세월을 짐작할 수 없을 만큼 낡고 오랜 이끼가 끼어 있는 돌무덤들만 이어졌다. 유명한 무덤은 하나도 없었다. 나처럼 길을 잃은, 몇몇 산 자들의 등이 가끔씩 그림자 가득한 길 사이로 나타났다 사라지고는 했다.

무서웠다. 그리고 쓸쓸했다.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던 아버지를 견디던 어느 날 파블로 네루다의 ‘나는 터널처럼 외로웠다’는 시를 떠올리며 울던 밤이 생각났다. 꼭 그런 길이었다. 어느 순간 길도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방향을 가늠하느라 걷다가 멈추면 무덤이 저 홀로 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깊은 밤 귀신이 지나가면 그 냄새를 맡기도 하던, 예민한 시절이었다. 어쩌면 내가 우는 소리였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한참을 헤매니 이정표처럼 짐 모리슨의 무덤이 나타났다. 황량해 보이는 무덤이었다. 그 앞에서 잠시 먹먹하게 서 있다 다시 출발했다. 조금 더 걸으니 깊고 어두운 나무 그림자가 비로소 사라졌다. 그다음부터는 그야말로 공원이었다. 꽃다발과 햇빛, 살아서는 어떠했든 죽어서는 축복처럼 기억되는 유명한 죽음들이 정갈하게 누워 있었다. 햇빛이 가장 환하게 빛나던 피아프의 무덤 앞에서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죽음 속에서 길을 잃고, 죽음 속에서 길을 찾다니, 길고 짧은 생을 혼자서 돌아나온 기분이었다. 어디로든 어떻게든 혼자서도 잘 걸어갈 수 있을 듯했다. 죽은 자는 쓰다듬고, 산 자들과는 눈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하며 나는 천천히 뚜벅뚜벅 걷기 시작했다. 조금 더 걸으니 문이 보였다. 찾지 못했던 바로 그 문이었다.

한지혜 소설가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