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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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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로 낙관하라

등록 2012-05-04 14:15 수정 2020-05-03 04:26

서울시장 선거에서 승리를 맛본 야권 지지자들은 4·11 총선에서도 압승을 기대하고 있었다. 이들은 야권의 실망스런 행보로 인해 상황이 간단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새누리당이 승리하자 시쳇말로 ‘멘붕’(멘털 붕괴)을 경험했다. 엄밀히 말해 야권을 지지한다기보다는 여권에 반대하는 이들의 심정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절호의 기회를 날린 야권의 무능함에 대한 배신감’과 ‘이런 부패하고 파렴치한 여권에 왜 다수가 표를 던질까 하는 답답함’이 그것이다. 기회를 날린 야권의 행보에 대해서는 차치하고, 도대체 왜 사람들이 여권에 표를 던지는지 또는 투표하지 않는지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민심이 천심이라는 절반의 거짓말

최근 보도된 여권 핵심 실세들의 상식을 초월하는 비리와 미국의 광우병 발생에 대한 정부 태도만으로도 민주주의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여권을 지지할 방법이 없다. 솔직히 말하면 그러한 보도 내용에 별다른 감흥도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돌출적인 사안이 아니라 여권의 본질과 깊이 관련돼 있어 언젠가 반드시 일어날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여권이 당명을 바꾸는 등의 전혀 진정성 없는 코스프레만으로 어떻게 선거에서 이길 수 있었는가.

민심이 천심이라는 말의 절반은 거짓말이다. 정치권력이 민심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는 대명제는 옳을지 몰라도, 투표로 표출되는 민심이 진리는 아니다. 집합적으로 표현되는 민심은 수많은 개인들의 개별적 의사의 총합이고, 그들의 정치에 대한 이해와 판단력은 천차만별이다. 헌법을 화장지로 취급하고 공공적 의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여권을 지지하는 것이 실제로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1%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여권에 표를 던지는 사람의 다수는 공동체에 대한 애정이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떠나 자신의 이익에도 배치되는 마조히즘적인 투표를 하고 있다.

공동체의 시스템에 대해 실상에 합치되는 패러다임을 형성하는 것, 정치적 정보를 능동적으로 수집해 왜곡된 정보를 걸러낸 뒤 건전한 정치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사실 상당한 교양과 판단력을 요구한다. 역사의 의미, 뉴스와 담론이 생산되는 메커니즘, 복잡한 정치 과정, 그리고 사회의 자원이 생산·분배되는 과정에 대한 총체적 이해를 획득하는 것은 바쁜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만만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가족이나 출신 지역 같은 개인사적 과정을 거쳐 생성된 자신의 정치적 관점이 틀렸을 가능성을 검토하고, 필요하다면 생산적으로 부정하는 능력은 희귀한 재능이다. 우리의 딜레마는 이러한 상황에 놓인 현실의 유권자들을 통하지 않고서는 상처받은 민주주의를 치유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이 엽기적인 정부에 반대하는 우리는 운 좋은 선수들이 아니다. 우리는 불공정한 경기 규칙, 극심하게 편파적인 심판, 그리고 종잡을 수 없는 취향을 지닌 관중에 포위된 채, 반칙왕인 상대 선수들을 제압해야 하는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경기를 치러야 한다. 그러나 분노한 벗들이여, 탄식하지 말자.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앞서간 이들이 우리보다 더한 심정으로, 심지어 죽음에 직면해서까지 떠올려야 했던 이 경구를 잊지 말자.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하라.’ 우리는 이 싸움에서 온갖 난관을 극복하고 끝내 승리할 것이다.

조광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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