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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권과 가족을 혁명하라

등록 2011-12-23 10:37 수정 2020-05-03 04:26

내가 활동하는 청소년단체에는 특이한 문화가 하나 있다. 바로 청소년들의 부모·보호자를 ‘친권자’라고 부르는 것이다. 물론 부모·보호자 본인과 대화할 때 직접적인 호칭으로 쓰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3인칭으로 부모를 언급할 때는 ‘친권자’라는 말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 어머니는 ‘여성 친권자’, 아버지는 ‘남성 친권자’ 하는 식이고, 부모가 아닌 ‘보호자’의 경우에도 대체로 그렇게 부른다.

친권자라고 부르는 두 가지 이유

일러스트 김대중

일러스트 김대중

그렇게 부르는 이유는, 우선 ‘부모’라는 말이 정상 가족 중심적이기 때문이다. ‘아비 부’(父)에 ‘어미 모’(母)를 쓰는 ‘부모’라는 말은 혈연관계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는 가족을 전제로 한 표현이다. 어머니와 아버지 중 한쪽만 있는 가족, 조손 가족 등등 여러 형태의 가족들이 사용하기에는 난감한 말이다. 이유 두 번째는 그 관계의 성격을 나타내려는 것이다. ‘친권자’는 그 사람이 ‘친권’을 가지고 행사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는 청소년을 통제하는 권력으로서의 친권이든, 청소년을 양육하고 보호하는 의무로서의 친권이든, 친권자와 자식 사이의 관계가 제도적이고 사회적인 것임을 드러내준다. ‘어머니’와 ‘여성 친권자’, 느낌이 확 다른 것이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친권자와 자식의 관계는 권력관계다. 아동학대방지법조차 없는 나라에서 가정 체벌이 여전히 ‘사랑의 매’로 불리며 정당화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또한 우리 사회는 경제·사회·법 모든 영역에서 자식이 친권자에게 의존하도록 되어 있고, 청소년이 친권자를 벗어나 독립적인 삶을 꾸려가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사람들의 아동·청소년 인권에 대한 의식도 열악하다.

이런 조건 때문에 친권자는 민법상 권한에 더해 자식의 사생활, 개인정보, 진로·직업 선택, 세계관에까지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시민단체가 정부 보조금을 받아서 눈치를 보게 된다고 우려하는 분들이나 교사들이 정치적 발언을 해서 아이들이 물든다고 걱정하시는 분들은 모두 이 상황이 얼마나 문제적인지 깨달으셔야 한다. 친권자에게 자기 생계를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고 친권자의 정치적 견해에 영향을 받으며 살아야 하는 자식들의 상황에 비하면, 다 새 발에 피 아니겠는가.

얼마 전 19살 청소년이 어머니를 살해한 사건이 알려졌다. 그 친권자가 아들에게 입시에서 성공할 것을 요구하며 학대를 해왔다는 등 자세한 이야기가 알려지자, 입시경쟁 교육이 부른 비극적 사건이라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하지만 나는 이 사건이 과잉된 친권의 문제가 극단적으로 드러난 것처럼 보였다. 그가 “엄마는 몰라. 엄마는 내일이면 나를 죽일 거야”라고 말하며 친권자를 죽였다는 기사를 읽고, 이는 일종의 ‘정당방위’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를 친권자라고 부르고, 어머니를 살해한 사건이 일종의 정당방위라고 하니 이건 웬 패륜이냐며 길길이 뛸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잉된 친권은 자식에게도 폭력이 되지만 친권자에게도 족쇄가 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양육에 사회적 지원이 부실하고 사회 안전망과 복지에 구멍이 뻥뻥 뚫려 있는 사회에서, 친권자들은 양육의 부담을 오롯이 짊어져야 한다. 그런 부담은 때로는 자식에게 집착하고 과도한 기대를 하는 심리로, 전 사회적으로는 저출산이라는 통계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가족, 재구성하고 개혁해야 할 제도

바로 저번주에 또 대구에서 한 친권자가 자식을 때려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이 보도되었다. 우리 사회가 가정에서의 청소년 인권 문제, 그리고 친권의 문제를 다시 한번 논의해야 할 때는 아닐까. 가족은 무조건 복원해야 할 자연적인 단위가 아니라, 재구성하고 개혁해야 할 사회제도다. 친권을 사회화하고 가족을 혁명하라. 친권자는 자식을 위해 자기 삶을 희생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삶을 살 수 있고, 자식도 친권자의 폭력이나 억압 없이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을 바라는 것이,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잖은가?

공현 청소년인권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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