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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시해 섹시해 섹시해

등록 2007-12-07 00:00 수정 2020-05-03 04:25

▣ 백은하 〈매거진 t〉편집장

박진영, 그가 돌아왔다. 작곡가가 아니라, 사장님이 아니라 ‘가수’라는 타이틀로 6년 만에 복귀한 그는 지난 한 달간 정말 바쁘게도 브라운관을 헤집고 다녔다. 나와야 하는 대부분의 오락 프로그램에 나왔고 나옴직한 모든 쇼 프로그램 무대에 올랐다. 집중적인 언론 노출 기간에 걸맞은 집중적인 출연이 이어졌다. 대부분의 TV쇼는 로 데뷔했던 그가 외모 면에서나 태도 면에서나 얼마나 독특한 존재였는지를 추억하고, god의 성공, 박지윤의 변신, ‘월드스타’ 비의 탄생에 이르는 프로듀서로서 능력을 칭송하며, 알 켈리로 이어지는 감동적인 미국 진출사에 감탄사를 내뱉었다. 거기에 2007년 최고 히트상품 ‘국민체조 텔미’로 이야기가 이어지면 게임 끝, 이토록 박진감 넘치는 기승전결과 반전 그리고 디테일을 가진 드라마틱한 셀레브리티의 인생이라니. 거기에 보너스로 원더걸스와 함께 시원시원한 ‘남성형 텔미 춤’을 선보이고, 복귀를 위해 다잡은 탄탄한 몸매를 드러내며 〈Kiss〉를 던지며, 을 애절하게 부르면 박진영이야말로 21세기 TV쇼가 꿈꿔왔던 가장 완벽한 게스트임이 증명된다.

자신만만함에서 엿보이던 초조함

이토록 박진영은 화려하게 돌아왔다. 그리고 그는 생애 가장 평온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어제나 오늘이나 박진영은 늘 달변이었고, 늘 섹시했다. 쇼 무대에서는 어떻게 카리스마를 뿜어내야 하는지 알고 있었고, 오락 프로그램에서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도 위트 있게 대처하는 방법을 아는 똑똑한 엔터테이너였다. 그럼에도 그는 대중의 호불호가 꽤나 명확하게 갈리는 사람 중 하나였다. 단순히 못생겨서 싫어하는 여자들도 있었고, ‘미국병’ 걸린 몽상가로 치부하는 적극적인 안티들도 있었다. “섹스는 게임이다” 같은 앞서가는 발언에 거부감을 표하기도 했고, 비니 노을이니 별이니 그의 ‘자연주의 작명법’를 조롱하기도 했다.

나 역시 그가 싫었다. 반박할 여지 없는 논리가 부담스러웠고, 너무 자신만만한 섹시함에 거부감이 들었다. 사실, 과거 자신만만했던 박진영은 그만큼 초조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것이 섹스에 대한 정의건, 미국 시장 진출에 대한 중요성이건, 아직은 자신의 진짜 가치를 몰라주는 세상을 향해 그는 늘 너무 격정적인, 홀로 애절한 연인처럼 굴었다.

그러나 2007년 말 가수로 돌아온 박진영 앞엔 대중의 삐딱한 시선이 느껴지지 않는다. 언론들은 박진영을 의 사장님처럼, 대한민국 수출역군처럼 다루는 것을 즐긴다. 하지만 지금 춤을 추는 저 남자가 섹시한 까닭은 그 때문이 아니다. 기나긴 안티와의 싸움을 끝내고 비로소 얻은 사회 전반에 가까운 인정 때문도, 비와의 계약 종결 뒤 잠정적 사형선고가 내려졌던 그가 내놓은 ‘원더걸스’라는 히든카드 때문도 아니다.

제대로 놀아 즐거운 딴따라

저 무대 위엔 90년대 심야 토크쇼에 나와 사랑과 섹스와 관계에 대한 강의를 펼치던 웅변가는 없다. 스타 양성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후배들에게 근성을 논하던 무서운 JYP의 사장님도 없다. 빌보드 차트를 향해 무섭게 돌진하던 야심가도 잠시 안녕을 고한다. 그저 내 나이 서른하고도 여섯 살이지만 여전히 섹시하지 않냐고, 멋지지 않냐고, 한 마리 화려한 수탉처럼 뽐내며 춤추고 노래하는 한 남자만이 있을 뿐이다. SG워너비가 달궈놓은 무대에서, 빅뱅이 흔들어놓은 스테이지에서 이렇게 같이 노니까 무척 즐겁다고 말하는, 제대로 노는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한 명의 즐거운 ‘딴따라’가 있을 뿐이다.

한때 설득하려는 그가 싫었다. 선동하는 그가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이제 박진영이 좋다. 원대한 목표를 향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싸우고 있는 박진영이 아니라, 진정 오늘을 살고 있는 그가 마음에 든다. 아니 저 명치 아래에서부터 깊은 호흡을 끌어올려, 섹시해, 섹시해, 섹시해를 한 580번쯤 외치고 싶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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