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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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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2-10-09 19:06 수정 2020-05-03 04:26

이명박 정부는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을 죽이려 애써왔다. 지난 5년간 두 정상선언을 남북관계의 밑그림으로 인정하길 거부했고, 그 결과 남북관계는 갈등과 적대의 수렁에 빠졌다. 임기 첫해인 2008년 7월 박왕자씨 피격 사망 사건을 이유로 금강산관광의 문을 닫았다. 2010년 3월 천안함이 침몰하자 개성공단을 제외한 모든 교류·협력 사업을 차단하는 ‘5·24 대북 제재 조처’를 취했다. 지난 5년간 장관급 회담은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이런 참담한 남북관계 단절을 MB 정부는 북쪽의 도발 탓이라고 둘러대지만, 사실은 MB 정부가 의도한 바다. 달러는 핵개발에 쓰이고 쌀은 군량미로 전용된다며 경제협력과 인도적 지원을 철저히 차단했다. 북한은 곧 망할 테니 교류·협력으로 연명을 도와주지 말고 관계를 끊고 압박해 붕괴를 촉진하겠다는 정책이다. 그러나 남북관계 단절은 북-중 관계를 강화시켰을 뿐, 북한의 붕괴로 이어지지 않았다. MB만 모른, 누구나 예상한 당연한 귀결이다.
MB 정부는 이상한 정부다. 안보를 중시한다면서도, 천안함 장병 46명과 연평도 해병대·민간인 4명의 애먼 죽음에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대통령이 뜬금없이 독도를 방문하고 일왕의 사죄를 촉구하더니, 일본 쪽의 반발이 거세자 ‘발언이 왜곡돼 전해졌다’며 백기 투항했다. 입만 열면 ‘북핵 폐기’를 외치지만, 북한의 핵능력 강화에 속수무책이다. 미국·중국 등이 북핵 문제를 풀려고 6자회담 개최 환경을 조성하려 애쓸 때마다 딴죽을 걸어왔다. 6자회담은 4년째 작동 불능이다. MB 정부는 동북아 군비 경쟁과 신냉전을 부추기는 불쏘시개 노릇에 여념이 없다. 오죽하면 스티븐 보즈워스 전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북한에 우리의 대화 의지를 밝히면 북한한테 지는 것이라는 인식을 접할 때마다 ‘말이 되지 않는 난센스’가 아닌가 생각했다”고 한탄했겠나.
세상의 평가는 싸늘하다. 현대경제연구원의 보수·진보·중도를 아우르는 북한 관련 전문가 112명 대상 조사에, 112명 모두가 ‘대북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정책 지지율 0%다. 사정이 이러하니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뿐만 아니라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조차 6·15 공동선언 등 기존 남북 합의를 존중하자며 ‘대북 포용정책’을 주창하는 모습은, 낯설지만 당연하다. 박 후보식 어법을 빌리면, MB 정부 대북정책의 폐기는 대선 승리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일 터. 누가 대통령이 되든 다음 정부는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 등을 토대로 남북관계를 풀어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잃어버린 5년’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일 것이다.
그래도 MB 정부의 삽질은 멈추지 않는다. 지난 9월26일 MB 주재 외교안보장관회의 뒤 청와대 대변인이 “최근 급증하고 있는 북한의 우리 대통령 선거 개입 시도” “북한의 정략적인 기획 도발” 따위를 공식 거론했다. 9월 중순 이후 북쪽 어선이 몇 차례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온 일을 이렇게 규정한 것이다. 경비정도 아닌, 가을 꽃게잡이철 북쪽 어선의 월선을 대통령까지 나서 ‘기획 도발’ 운운하는 건 MB식 개그인가 시대착오적 북풍(北風) 몰이인가. 하지만 나는 그날 대통령과 통일·외교·국방장관 등이 실제론 조어도(댜오위다오·센카쿠)를 둘러싼 중-일 갈등과 미국 항공모함의 인근 해역 진입, 중국의 첫 항공모함 취역식 등 긴박하게 돌아가는 동북아 정세를 주로 논의했으리라 믿고 싶다. 대통령과 장관들이 북쪽 어선의 월선 의미를 따지느라 1시간 넘게 골몰한 게 사실이라면, 우리 처지가 너무 비참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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