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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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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의 외톨이 외교

등록 2012-08-22 17:25 수정 2020-05-03 04:26

목불인견(目不忍見). MB의 ‘일본 장사’나 8·15 경축사 따위가 그렇다. MB는 8·15 경축사에서 “대북정책이 상당한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고 했다. 숨이 붙어 있는 건 개성공단뿐인데, 도대체 뭐가 ‘상당한 효과’인가. MB는 경축사를 “사랑하는 북한 주민”이란 말로 시작했다. 배곯는 북녘 동포에게 단 한 번도 식량을 보내준 적 없고, 민간 차원의 인도적 지원도 온갖 이유를 달아 막아온 냉혈한이 무슨 사랑? 사랑은 말로 하는 게 아니다. 5·24 대북 제재 조처만 붙잡고 있으면 북한이 곧 망할 거라는 MB식 ‘정신승리법’을 빼고 이 엽기적 상황 인식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대통령의 일은 그런 게 아니다. 북한의 실세인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겸 당 행정부장이 8월17일 베이징에서 중국의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원자바오 총리를 만났다. 정부 당국자는 장성택의 방중 이유에 대해 “북-중 경제협력 강화가 핵심”이라고 했다. 크게 어긋난 진단은 아닐 터. 그러나 강 건너 불구경식 논평이 정부의 일은 아니다. 장성택은 북쪽의 대표적 중국통이지만, 중국에 종속되는 걸 극도로 경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요한 건 그가 남북관계를 각별히 중시하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그는 2002년 10월 북쪽 경제고찰단의 일원으로 삼성전자·현대차·포스코 등을 직접 둘러본 경험이 있다. 김정은 체제의 활로를 모색해온 장성택이 중국보다 먼저 한국에 손을 내밀 환경을 조성해 우리의 의지에 따라 남북관계를 풀어갈 전략을 가동하는 것, 그게 정부의 책무다.
한반도 주변 정세가 복잡미묘하다. 미-중의 주도권 다툼이 동북아 정세를 뒤흔드는 와중에 북·중·일 모두 바삐 움직이고 있다. 북-중은 북쪽의 4·13 로켓 발사로 뒤틀린 관계를 고위급 인사 상호 방문을 디딤돌 삼아 다시 다지고 있다. 북-일은 베이징에서 적십자회담(8월9~10일)에 이어 4년 만에 정부 간 회담(8월29일)을 하기로 하는 등 관계 개선을 모색하고 있다.
한국만 좌충우돌이다. 미국을 제외한 주변국과의 불화가 심각하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무역국이자 인적 교류국이다. 1992년 8월24일 수교 이래 지난해까지 무역이 37배, 인적 교류는 49배 늘었다. 하지만 지금 한-중 관계는 서울과 베이징에서 열릴 수교 20돌 기념 리셉션 참석자의 격도 아직 정하지 못할 정도로 스산하다. MB 정부 출범 이후 북한붕괴론에 의지한 대북 강경책과 한-미 동맹 일변도의 무모한 대외 전략이 초래한 결과다. 그런데도 청와대의 고위 관계자는 “한-중 관계가 이렇게 좋을 때가 없었다”고 우긴다.
한-일 관계는 갑자기 정면 충돌 양상이다. MB가 뜬금없는 독도 방문에 이어 일왕의 사과를 대놓고 요구한 게 빌미가 됐다. 국내 정치 효과를 노린 ‘의도된 도발’인데, 너무 거칠다. 일본 쪽이 “일국의 리더로서 예의가 아니다” “악영향이 수년간 이어질 수 있다”며 통화스와프 협정 재검토 따위 맞불성 ‘실력 행사’에 나서는 등 후폭풍이 거세다.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은 그 자체로 정부 정책이다. 동해를 헤엄쳐 독도까지 간 가수 김장훈씨와 처지가 다르다.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건 국민의 생명과 ‘국익’을 지킬 섬세하고 전략적인 외교다. 치고 빠지기식 퍼포먼스가 아니다.
MB 임기가 6개월 남았다. 지금 MB의 핵심 과제 중 하나는, 다음 대통령과 정부가 부담 없이 출발할 수 있도록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일이다. 현실은 어떤가. 분탕질 수준이다. 12월 대선을 앞두고 시민들이 벼려야 할 또 하나의 선택 기준은 어느 후보가 MB의 분탕질을 지혜롭게 수습할 수 있느냐일 것이다. 이상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은 시민의 업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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