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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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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률 문제

등록 2008-09-09 20:25 수정 2020-05-03 04:25

한가위 퀴즈큰잔치가 찾아왔습니다. 마감 시간에 틈을 내 문제를 풀어봤습니다. 2단계 멘사 퀴즈 첫 번째 문제에서 막혔습니다. 한 기자는 단번에 다 풀었다고 출제위원장인 이순혁 기자가 귀띔했습니다. 음…. 누구나 흥미를 느낄 재미있는 확률 문제를 하나 내보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814만분의 1. 로또 1등에 당첨될 확률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그 희박한 가능성에 몰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확률의 여신이 자신에게 미소를 날릴 것이라는 믿음 또는 집착이겠죠.
0.5%. 지금 고3인 학생이 2009학년도 서울대에 입학할 확률입니다. 교육 경쟁은 결국 극소수의 승리로 끝납니다. 그렇다면 학생 전체를 성적순에 따라 일렬로 세우고 고교·대학을 서열화하는 정책에 반대하고, 평준화에 더 힘을 실어 초·중등 교육에서 승리와 패배의 낙인을 없애겠다는 정책에 찬성하는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많은 부모들은 자녀가 서울대 등 이른바 명문대에 입학할 가능성에 집착합니다. 또 애초 그럴 가능성이 높은 이들이 사회적 의사 결정 과정을 주도합니다. 확률의 속임수에 넘어가 다수결 원리를 배신한 꼴이라고 할까요. 이제 국제중학교까지 늘린다고 야단입니다. 초등학생 부모들은 또 몇%의 확률에 목을 빼고 어린아이들을 영어학원, 논술학원, 면접학원으로 내몰아야 하나요.
2.98%. 식품의약품안전청이 발표한 선천성 기형 발생률입니다. 무서운 수치입니다. 우리 자녀가, 손자·손녀가, 또는 그 후손 중 누군가가 여기에 걸려들지도 모르니까요. 그러나 사람들은 그다지 무서워하지 않는 듯합니다. 선천성 기형 예방이 사회적 관심사가 되지도 않고 장애인의 권리 확보도 늘 그늘에 가려진 이슈입니다. 이번엔 확률의 여신이 자신을 외면할 것이라는 믿음인가요.
5%. 대략적인 성 소수자 비율입니다. 역시 심드렁하게 외면하는 수치이지요. ‘소수자’라고 말입니다.
그럼, 이건 어떨까요. 50%. 여성으로 태어날 확률입니다. 분명 소수가 아니면서도 명백한 차별과 불편을 겪는 집단입니다. 거의 모든 여성이 해마다 명절만 되면 우리 사회의 역사·구조적인 성차별에 이를 가는데, 평소 여성의 권리를 외치는 목소리는 소수이고 정치권의 관심도 덜 받습니다.
더 높은 확률이 있습니다. 55.6%. 임금노동자 중 비정규직이 될 확률입니다. 그러나 비정규직 문제는 여성의 권익보다 덜하면 덜했지 더 조명받지는 못합니다. 다수가 맞닥뜨릴 가능성이 높은 문제일수록 사회적 관심은 강도와 규모가 작아지네요. 이건 확률의 속임수도 아니고, 뭐라고 해야 할까요. 다수결 원리의 무력화인가요.
여기서 진짜 문제가 나갑니다. 우리 아이들이 지긋지긋한 학원에 내몰리지 않고 친구끼리 서로 도와가며 마음 편히 꿈을 꾸며 공부할 수 있는 날,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한 조건에서 자아를 실현하며 살아갈 수 있는 날, 성 소수자들이 당당하게 결혼식을 올릴 수 있는 날, 부부·가족·사회 모든 분야에서 양성 평등이 구현되는 날, 그런 날이 현 정부 아래서 올 확률은 얼마일까요?
이 유토피아의 확률을 맞히는 분께는 평생 구독권을 드리겠습니다.
그보다는 이번 퀴즈큰잔치에서 자동차를 타갈 확률이 차라리 높을 겁니다. 도전하세요. 다만 경품에 응모할 때 원하는 사람들이 적어 상대적으로 당첨 확률이 높은 선물에 응모하시라는 게 출제위원장의 팁입니다.
이번 한가위 때는 더 많은 사람들이 ‘높은 확률의 문제’에 더 관심을 기울여 유토피아의 확률도 조금씩이나마 높여보면 좋겠다는 소망을 달님에게 빌어보려 합니다. 그날 말간 보름달을 만나볼 확률도 높았으면 좋겠네요. 즐거운 명절 보내십시오.
박용현 한겨레21 편집장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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