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 엄마가 상당히 특이한(번역: 아주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전형적인 한국 엄마였더라고(번역: 한국 엄마들은 다 그 모양인가).”
딸이 책 <h마트에서 울다>를 읽고는 이렇게 말했다. 대체 그게 무슨 말이냐고 했다간 ‘토황소격문’에 버금가는, 듣는 엄마 거품 물고 쓰러질 만한 ‘토엄마격문’을 듣게 될 것이 뻔했기에 더는 묻지 않고 그 책을 읽어봤다.
한국계 미국인 미셸 자우너가 책에서 묘사한 모녀 관계는 과연 우리와 비슷하다. 그러니까 “자신의 억지스러운 기대에 부응하도록 끊임없이 몰아붙이며” “과도한 사랑을 주장하는 것”은 ‘케이(K)-엄마 종특’이었던 것이다. 아이가 다치면 마치 아이가 내 중요한 자산에 함부로 손을 대서 깨뜨리기라도 한 듯 고래고래 화를 내다가 극진한 저녁 밥상으로 화해하는 일은 우리 집에서도 얼마나 자주 되풀이됐던 일인가.
자식의 신체를 자신의 일부로 여기는 양육관이나 음식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 같은 것을 나도 모르게 한국에서 여기까지 지고 왔나보다. 부모가 자신이 사랑받았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식을 사랑하기는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2020 독일 내 이민 아동청소년 보고서’를 보면 K-엄마만 문제가 아니다. 독일 부모라면 37%가 부모 말에 순종하는 아이로 키우려 하지만 1세대 이민세대는 61%가 그러한 양육관을 갖고 있었다. 이민 가정 다수가 튀르키예 출신이라는 점도 한몫할 것이다. 지하철에서 자리가 나면 튀르키예인 아버지는 앉고 어린 아들은 짐을 들고 선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부모가 절대적 위치를 갖는 경우는 독일 아이에게 70%가량이라면 이민 1세대 가정은 85~94%다.
1세대 이민자는 성적이나 아이들 성과에 대한 기대도 보통 독일 가정보다 훨씬 높지만, 이민 가정 아이는 보통 자기 방이 없다거나 집안일을 분담하는 등 학습조건은 훨씬 열악하다는 사실도 통계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새로 이사 온 집에 방이 하나뿐이라 거실 한편에 가림막을 치고 침대를 두자 아이는 집에 친구들을 데려오기 창피해했다. 우리는 독일에도 집이 있고 한국에도 있으니 다른 아이들 두 배 아니냐고 했지만, 당장 방문을 닫아걸고 친구들과 밤새 이야기하고 싶은 아이에게 그런 말이 통할 리 없다. 사실은 부모의 양육관 못지않게 이민자가 처한 경제·사회 조건도 이민 가정 청소년이 더딘 걸음을 걷게 하는 데 한몫한다.
출신 국가의 종교나 문화는 그토록 힘이 셌지만 이민 2세대부터는 급격히 차이가 줄어들어 3세대쯤 되면 이민사가 없는 독일 가정과 거의 비슷해진다. 달리 말하면 이민자가 도착국가와 비슷한 문화적 의식을 가질 때까지 최소 3세대가 지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주 1세대와 2세대가 함께 사는 우리 집은 한때 1급 분쟁지역이었다. 하필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아이는 학교를 옮겼고 새로운 학급에 온라인으로 인사했다. 온라인수업은 배경음악일 뿐 많은 아이가 게임과 에스엔에스(SNS)에 몰두했던 시절이다. 오프라인으로는 만남도 방문도 금지된 그해 겨울, 집 문을 닫아걸고 모녀는 결투를 벌였다. 회사를 그만두고 독일로 온 것은 할머니 손에 자랐던 딸과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도 컸기 때문인데, 엄마가 아이에게 잔소리로 활을 날리기 시작하면 아이가 “할머니한테 맡겨둘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왜 그러냐”며 대포를 쏘는 식이었다. 사춘기와 갱년기의 싸움은 갱년기가 권력의 역전을 인정하는 것으로 끝났다.
최근 독일 사회에는 코로나19 시기에 우리가 무엇을 잘했고 잘못했는지 반성이 한창인데 당시 집권여당 기독교민주연합의 당대표조차 가장 큰 잘못으로 학교를 닫고 온라인수업으로 전환한 것을 꼽는다. 어떤 경우에든 아이들을 집에 가둬서는 안 된다는 반성이 많다.
그러나 록다운이 고립무원 사막이었다면, 다시 열린 독일 학교는 새로 전학 간 아이에게 정글이었다.
얼마 전 학교에 있는 아이에게 전화했다. 아이가 복도에 나와 한국어로 통화하고 있으려니 누군가 아이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 지금 말하는 게 중국어냐고 묻는 소리가 들렸다. 평소 얼굴만 알던 옆 반 남자애는 한국이라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스마트폰을 꺼내 아이 사진을 찍었다. 아이는 나와 통화하다 말고 남자애에게 다가가 스마트폰을 뺏어서 사진을 지웠다. 스냅챗이라는 십 대의 SNS에 막 올리려던 것을 못하게 했다고 한다.
대체 왜? 외국인이 3분의 2인 도시에 사는 아이가 왜 굳이 아시아 여자애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려 했는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전화기 너머로 처음 들어보는 우리 아이의 욕설을 고스란히 들으며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그래, 여자라면 욕은 할 줄 알아야 한다. 주먹을 쓸 수 있으면 더욱 좋고.
아이가 자랑삼아 말하기로는, 차별이란 등급이 있다는데 찌질한 싸움부터 선생님에게 꼭 알려야 하는 차별까지 다양하다.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쓴다면 아이들에게 웃음거리가 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아시아인, 청소년, 여성. 아이는 차별에 대응하는 것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을까? 다행히 가게마다 “여성, 외국인, 동성애, 장애인 차별주의자는 출입을 금합니다”라고 써붙인 베를린의 공기는 외국인 아이를 억누르지는 않지만, 아이는 록다운이 발표되던 날 단골 아이스크림 가게 점원의 시선이 아이에게만 싸늘해지던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철학자 한병철은 빙하 위에 모래가 쌓여 형성된 베를린 모래땅을 자주 묘사하는데, 내게는 그 버석한 촉감이 정원의 땅이 아니라 아이가 살아야 하는 사회적 토양을 묘사하는 것처럼 들린다. 언젠가 깊은 습기가 올라와 회색 모래밭에서 무언가 자랄 것이다. 뭔가 대비책을 마련하고 싶은 K-엄마는 가만히 좀 있어라. 어쩔 수가 없다. 아이가 날 선 칼을 잘 만들어두길, 그 칼을 쓸 일이 절대 생기지 않기를 기도나 할 수밖에. 설마 세상은 그렇게 거꾸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베를린(독일)=남은주 자유기고가·번역가 eunjoonam@web.de*공부하는 늙은 엄마: 나이 오십에 독일 대학에 들어간 전직 기자의 이주 생활과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한 탐구. 3주마다 연재. </h마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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