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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서, 기자, 캐셔...그런데 이 직업도 아니라면?

‘취업력’과 ‘퇴사벽’ 사이에서, 적성을 고민하다
등록 2023-03-27 14:35 수정 2023-03-31 18:43
일러스트레이션 구둘래

일러스트레이션 구둘래

얼마 전 한 아시아 이주민 단체에서 여는 ‘이주 노인과의 대화’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1세대 아시아 출신 이주자들은 반세기 넘도록 독일에서 살았지만 여전히 주변부의 삶에 머물러 있다. 2·3세대와의 문화적 차이, 단절로 인한 소외의 경험은 반복되고 확장된다. 그룹별로 모여 노인 이주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 우리 그룹 노인들은 이주 생활을 털어놓으며 눈물을 보였다. 나는 베를린의 한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며, 이주노동자나 난민 관련 단체에서 일하기 희망하고 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입사와 사직을 반복하며 얻은 것

노인들이 자책하자 다른 참가자들은 열심히 그들을 위로하는데, 나는 계속 질문하고 있었다. 무슨 사건이 있었는지 자꾸 사실관계가 궁금했다. 그런 자신을 보면서 내가 다른 사회복지사들과 정서적으로 한참 다르다고 느꼈다. 수업 시간에도 비슷한 지적을 받았다. 문제 해결을 거들기보다는 관찰한다는 것이다. 옳은 말이다. 남의 삶을 위로하고 조언하기가 어색했고 의미 있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사회복지사가 적성에 맞지 않는 것이 아닐까, 이런 고민은 십수 년 만이긴 했지만 내겐 너무 익숙한 레퍼토리다. 인생 주제가 다시 한번 찾아왔다.

대학을 졸업하고 제일 먼저 택한 직업은 비서였다. 대학 시절 부랑자처럼 살았는데 서울 여의도 한 고층 빌딩에 전자 출입 카드를 대고 들어가려니 일약 신분 상승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석 달을 버티지 못했다. 그다음은 무역회사에서 6개월쯤 일했다. 교재 개발 회사, 기업 사보 편집장… 여러 회사를 돌아다니느라 이력서는 점점 길어졌다. 단기 임시직으로는 식당 계산원, 입시철 논술강사, 명품 잡지 론칭팀 편집자 등이 떠오른다. 철물점에서 직접 맞춘 불판을 들고 다니며 선생님께 고기만 구워드리다가 논문도 못 쓰고 그만둔 대학원 생활도 내 직업사에 넣고 싶다. 나는 그때 분명 직업인의 자세로 일했던 것 같다. 친구들은 내 ‘취업력’에 감탄하고 가족은 내 ‘퇴사벽’에 분노했다.

기자일을 하면서는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기자는 다른 직업을 원 없이 들여다보는 직업이었다. 내 기자일이 늘 뜨거웠던 이유는, 기자를 찾아와 자기 일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이 늘 뜨거웠기 때문이다. 나는 이 글을 못의 중요성에 대해 한 시간 동안 말하던 건축가나 서울 쓰레기 대란 때 앞으로 페트병 수거와 세척은 어떻게 해야 할지 오랫동안 설명해준 재활용업체 젊은 사장님 같은 직업인들의 이야기만으로도 채울 수 있다. 한 일을 오랫동안 하다보면 직업 지식과 경험으로 굳은살 같은 것을 지니게 된다. 그런 흔적이 몸에 맞춰진 단단한 느낌으로 내게도 남아 있기를 바랐다.

일단 그 일을 시작해보라고

생계와 적성을 분리한 사람들도 만났다. 한 철학공동체에서 만난 연구자는 이른 아침에는 청소일을 하고 밤에는 공부한다. 적성과 생계를 일치시켜야 한다는 생각은 근대인의 이상 명령 같은 것일 뿐 모두에게 그럴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안경 렌즈를 깎았던 스피노자나 천막을 만들었던 사도 바울처럼 업과 소명을 분리하고 둘 다에 충실하려는 삶이 윤리적이면서도 실용적이라고 생각했다.

기자일을 그만둘 때 다시는 이만큼 내게 맞는 일을 찾을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는데 번역일이 너무나 적성에 맞아서 깜짝 놀랐다. 아마 원저자의 입을 빌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전하는 일의 본질이 기자일과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번역으로 생계를 해결하기 쉽지 않고, 다만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의 말대로 “매일 아침 한두 시간씩 그냥 습관처럼 번역하는 삶”을 꿈꾸고 있다.

사회복지사는 아직 해보지 않은 직업이므로 내게 두 번째 굳은살이나 사도 바울의 천막 같은 게 돼줄지 알지 못한다. 다만 기자일을 오래 하면서 내가 써대는 사안이 정작 일상적으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는 열등감이 쌓여 있었는데 이를 해소할 기회이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를 누구에게 도움이 될 때만이 가치 있는 존재로 느끼는 조력자 콤플렉스 같은 게 있지 않나 의심했는데, 아마 이 직업을 해보려는 동기가 됐을 것이다.

사회복지사가 적성에 맞는지 모르겠다고, ‘사표병’이 또 도져서 인생 두 번째 직업이 보람 없이 끝나면 어떡하냐고 상담하면 독일인은 열이면 열 당장 그 일을 시작해보라고 한다. 청소년 시절 실습으로 직업을 결정하는 독일인다운 답이다. 번역일에 쫓겨 당장 실습을 나갈 수 없는 나는 인공지능 챗지피티(ChatGPT)에도 물어봤다. 챗지피티는 사회복지사의 자질로 이해심과 공감능력, 윤리적 소양, 소통능력 등을 꼽았다. 무슨 직업에든 다 할 수 있는 말 아닌가 싶지만 어쨌든 내게도 영 없는 자질은 아니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다시 취업전선 앞에서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을 생각할 때 더 큰 걱정은 따로 있었다. 한국에서 만난 사회복지사는 힘들고 슬픈 일이었다. ‘감정노동자’ 문제를 다루면서 정신적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사회복지사를 만났다. 트라우마가 반복돼 우울증상을 가진 사례였다. 나도 비슷한 일을 겪을까 벌써 겁난다. 하지만 나는 그 사회복지사와 비슷한 일을 겪게 된다면 참지 않고 크게 울어버릴 작정이다.

예전에 식당 계산원으로 일할 때 진상 손님보다 더 나쁜 게 진상 상사임을 일찌감치 알았다. 어느 날 계산대를 정리하는데 매니저가 옆에서 트집 잡기 시작했고 나는 화장실에 가서 30분은 엉엉 울었다. 식당 안까지 들릴 정도로 큰 소리로 울었더니 한 손님이 화장실 문 앞에 서서 나를 위로했다. 그는 살다보면 더 안 좋은 일도 있다고, 네가 우니까 나도 너무 슬프다고, 오랫동안 위로하다가 갔다.

그래서 만약 험한 직업전선에서 다시 안 좋은 일을 겪으면 나는 반드시 울어야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온 세상에 들릴 만큼, 누군가 나를 위로할 때까지.

베를린(독일)=남은주 자유기고가·번역가 eunjoonam@web.de

*공부하는 늙은 엄마: 나이 오십에 독일 대학에 들어간 전직 기자의 이주 생활과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한 탐구.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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