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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찾겠다 스노우…고양이는 보이지 않는다

게르만족과 고양이 1520만 마리가 사는 독일… 실종된 스노우 찾으러 우왕좌왕하며 보낸 나흘
등록 2023-05-26 19:28 수정 2023-06-02 19:12
고양이 스노우를 찾는 전단지에 쓴 사진. 

고양이 스노우를 찾는 전단지에 쓴 사진. 

스노우가 사라졌다. 스노우는 전날 우리 집에 온 고양이다. 친구 이자니의 가족이 여름방학을 맞아 팬데믹 이후 3년 만에 고향인 모로코를 다녀오면서 우리 집에 맡겨졌다. 모로코 사람답게 고양이를 너무나 사랑하는 가족이었다. 스노우는 이자니의 남편이 데리고 왔다. 이자니는 이별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렇다며 이해를 구했다. 스노우는 너무나 수줍고 겁이 많은 고양이였다. 이동장에서 한 발짝도 나오려 하지 않았다. 새 환경에 익숙해질 시간을 주는 것이 좋을 듯해 먹이를 놓아주고 모른 척했다. 그러나 다음날 새벽 스노우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열린 집들과 가출냥이들의 적

내키지 않았지만 친구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스노우는 평소에도 숨어 있기를 좋아한다고 했다. 책상 서랍에다 변기까지 들여다봤지만 털 한 오라기 없었다. 우리 집은 작고 가구도 얼마 없다. 유일한 단서는 조금 열린 창문뿐이었다. 고양이가 3층 창문으로 빠져나갈 수 있을까? 창문을 열자 원망스럽게도 촘촘히 이어진 창문턱이 눈에 들어왔다.

이탈로 칼비노는 <마르코발도 혹은 도시의 사계절>에서 도시 틈새 고양이들의 길을 찾아낸다. 벽과 벽 사이에서 건물과 건물 사이로, 건물의 뒷면과 뒷면 사이 최소거리로 이어지는 길이다. 실제 집을 나간 고양이들의 동선은 그런 식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집 나간 고양이의 눈으로 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탈출하려 했다면 못할 것도 없을 것 같았다. 사료를 한알 한알 세어 놓아두고 집을 비워봤지만 조금도 없어지지 않았다. 실종 24시간이 지났다. 이젠 빨리 주변 수색에 나서야 할 시간이었다.

잃어버린 고양이 스노우를 찾는 전단을 사는 동네 일대에 붙였다.

잃어버린 고양이 스노우를 찾는 전단을 사는 동네 일대에 붙였다.

만약 스노우가 창문턱과 뜬지붕을 짚고 땅까지 내려왔다면 수많은 빈틈을 만났을 것이다. 겁 많은 고양이는 수풀에 몸을 감추고 쥐 죽은 듯 엎드려 있거나 자꾸만 더 외진 곳으로 숨어든다. 고양이 수색의 첫걸음은 고양이 동선을 떠올리며 여러 번 반복해서 돌아보는 것이 원칙이라고 했다. 나는 모로코에서 고양이 주인이 보내온 스노우를 부르는 음성 녹음 파일을 반복 재생하면서 후미진 곳을 따라 길을 더듬었다.

내가 사는 동네는 집집이 울창한 화단을 두르고 있어 걸을 때마다 행복했다. 하지만 지금은 죄다 베어버리고 싶을 뿐이었다. 인터넷에서 최악의 사례를 봤다. 독일 주택들은 대개 지하에 창고를 두는데 고양이가 그곳에 숨었다가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나는 자유를 찾아 도망쳤지만 지하에 소리 죽여 숨어 있다가 마침내 죽음이 찾아올 때쯤 문을 긁는 고양이를 상상해봤다. 아아, 고양이. 그래서 고양이 실종자 가족들은 지하 창고를 한번 살펴봐달라는 전단을 만들어서 이웃에 돌린다. 실종 이틀째가 저물었다. 이웃의 도움이 필요한 때다.

집사의 마음을 아는 이는 집사

독일에서 반려동물을 잃어버리면 우선 동물단체에 신고한다. 고양이가 보호소나 병원에 맡겨지면 이 단체에서 마이크로칩을 조회해 주인을 찾아준다. 2021년 ‘타쏘’라는 단체에 접수된 실종 건수는 12만2천 건. 이 중 다시 집으로 돌아온 동물은 9만2천 마리였다. 나머지 3만 마리는 어디로 갔을까? 전단을 들고 거리로 나서니 지금까지 한 번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실종된 고양이를 찾는 수많은 전단이 눈에 들어왔다. 동물보호단체는 베를린에서만 길냥이 1만 마리가 있을 것으로 추측한다.

고양이 실종이 빈번하고 길냥이들이 생태계를 위협하면서 2022년 6월 베를린에도 고양이에게 마이크로칩 이식과 중성화를 의무화하는 조례가 시행됐다. 중성화를 받지 않은 고양이가 길에서 발견되면 시에서 중성화 수술을 하고 주인에게 그 비용을 청구하는 것인데, 독일 대부분 주에서 시행하는 조례다. 동물 등록과 중성화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정한다면, 동물학대를 방지하는 동물보호법은 국가 차원에서 시행된다. 독일 동물보호법이 한국의 것과 가장 큰 차이라면 동물학대자는 1~5년 동안 동물을 사육할 수 없다는 점이다.

거리에서 전단을 들고 스노우를 찾던 이틀 동안은 내가 독일에 와서 가장 많은 관심과 이해를 받던 시간이었다. 독일은 게르만족과 고양이 1520만 마리가 함께 살아가는 나라다. 독일 가구 24%가 고양이를 키운다. 거리에서 만난 수많은 집사가 나를 위로하며 이러저러한 조언을 했다.

동네 커뮤니티에도 가입해 고양이 실종 사실을 알렸다. 어떤 사람이 내 글에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이 한창인데 고양이가 문제냐”는 식의 댓글을 다는 바람에 내 글은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위로의 말과 제보로 메시지함이 터져나갈 듯했다. 우리는 자다가도 지금 어느 거리에 흰색 고양이가 나타났다는 제보 전화를 받으면 달려나갔다. 흰색 고양이를 꼭 잡아두고 두근거리며 전화를 건 사람들을 우리는 몇 번이나 실망시켜야 했다. 그러나 스노우는 어디에도 없었다.

5㎝도 안 되는 공간에서

고양이는 집을 나가 얼마나 살 수 있을까. 베를린 동물보호단체는 500여 곳에 먹이를 놓아두는 급식소를 운영하고 있다. 정말 창고 같은 곳에 갇히지 않았다면 스노우는 무사할 것이다. 그러나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돌아올 확률은 줄어든다. 미국의 연구에 따르면 실종 고양이의 30%가 일주일 안에 살아서 돌아왔고 그 뒤로 생존확률이 크게 줄었다.

중고장터 이베이 ‘고양이 찾습니다’에 올라온 한 광고가 구구절절 심금을 울렸다. “우리 고양이가 사라진 지 벌써 5개월이 지났어. 우리 고양이가 돌아오면 정말 기쁘겠지. 하지만 이제 누군가 우리 고양이를 데려가서 키우고 있다고 해도 역시 기쁠 거야. 그러니까 제발 그냥 나에게 익명으로 메일 하나만 보내줘.”

실종 나흘째. 우리도 이제 장기 실종 고양이 가족이 되는 것일까. 지치고 실망해 잠자리에 들었는데 한 시간쯤 지나자 어디선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설마? 숨도 크게 쉬지 못한 채 지켜봤더니 옷장 뒤에서 하얀 머리가 고개를 내밀었다. 옷장도 이미 들여다봤다. 그런데 하얀 고양이 스노우는 하얀 옷장과 하얀 벽 사이에 고개를 박고 눈에 띄지 않으려 했다. 5㎝도 안 되는 그 공간에서 나흘을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숨어 있었던 것이다. 아아, 고양이.

스노우가 돌아왔다.

베를린(독일)=글·사진 남은주 자유기고가·번역가 eunjoonam@web.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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