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습이다.
지난여름 프랑스 파리의 한 일본식당에서 막 라면 그릇을 받아들었는데 갑자기 눈에서 물이 떨어졌다. 아무런 통증도 감정도 없이 라면 국물에 눈물이 후두두 쏟아졌다. 후각은 시각보다도 빨리 뇌에 도달한다는 말은 정확하다. 생선으로 라면 육수를 내는 집이었다. 유럽에선 좀체 맡기 힘든 비릿한 냄새에 눈물이 먼저 떨어지고 나서야 비린 반찬으로 채워졌던 한국의 밥상들, 친구와 함께 파리를 여행하며 오랜만에 모국어로 깊이 이야기를 나눴던 날들, 친구는 내일 한국으로, 우리는 유럽에 남는다는 사실이 한 컷, 한 컷 의식 위로 떠올랐다. 스스로 생각해도 민망한 일이라서 찌는 듯 더운 식당 핑계를 대며 땀을 닦는 척하며 얼굴을 훔쳤다. 아이는 쳐다보지도 않는 것 같더니 다음날 제 아빠한테 “일본 라면이 얼마나 맛있던지 엄마는 울면서 먹더라”고 했다.
‘이곳이 집이다. 이곳이 집이다. 이곳이 주께서 나를 품어 데려가실 때까지 두신 집이다.’ 얀 마텔의 소설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서 앙골라로 파견된 율리시스 신부는 향수병에 시달리며 종이에 이런 말을 끝도 없이 적어 내려간다. 다시 돌아올 길이 마땅치 않은 사람들에게 이주는 집을 잃는 일이요 감옥에 갇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1960년대 ‘파독 간호사’로 독일에 온 노인들은 사흘은 걸려야 한국에 갈 수 있던 시절의 이야기를 한다. 지금 고향은 언제라도 닿을 수 있는 곳이 되어 노인들은 1년에 한 번씩 한국에 다녀오지만 어쩐 일인지 향수병은 여전하다. 그리운 마음은 장소가 아니라 시절을 향한 것이었다.
바닷가에서 자라 도시로 온 우리 어머니는 시장 문을 닫을 때쯤엔 헐값이 되는 생선을 사다 비린 것들로 밥상을 차렸다. 살짝 물이 간 고등어에 된장을 풀어 끓인 고등어시래깃국은 지금도 우리 형제들이 그리워하는 음식인데 어머니가 나이 들어 만드는 법을 잊어버린 탓에 비밀의 레시피가 돼버렸다. 고등어 국에 구이까지 먹고 비린내 풍기며 학교에 가면 생선가게 딸이라고 놀림받았다. 크면서 비린내 감추는 법을 익혔다. 그러니까 한국을 떠올리면 벌써 코끝이 비릿하지만 그것은 한국 땅이 아니라 나한테서 나는 냄새다.
친구와 헤어지고 돌아온 베를린은 늘 그렇듯이 수백 가지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여행자는 도로를 씻어낸 냄새, 막 문을 연 제과점 냄새를 맡지만, 그 도시의 지린 구석구석을 다녀야 하는 이주민은 그 냄새에 갇히지 않기 위해 코를 막았다가 꽃 냄새, 머리카락처럼 긴 풀이 깎인 자리에서 나는 냄새에 콧구멍을 연다. 누가 여름이면 길거리에 저렇게 크고 화려한 꽃을 심는 걸까. 내 콧구멍은 몇 계절 사이 익숙해진 달리아와 베고니아를 알아본다. 그리고 자기가 태어난 땅의, 아니 어린 시절의 냄새를 지니고 이곳으로 온 사람들을.
독일어로 소설을 쓰는 일본 출신 작가 다와다 요코는 이제는 귀향 능력이 아니라 어디를 가도 깊이 잠들 수 있는 두꺼운 눈꺼풀, 여러 가지 맛을 알 수 있는 혀, 어디를 가도 주의 깊게 볼 수 있는 복잡한 눈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내 경우에 그 능력은 콧구멍에 모여 있는 셈이다. “원래부터 있던 공동체는 제대로 된 것이 없으며 산다는 것은 어떤 사람들이 언어의 힘을 빌려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작가의 말은 언제나 큰 위로다.
얼마 전 베를린에서 또 새로운 냄새를 맡았다.
내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4학기엔 사회복지 기관에서 실습해야 한다. 난민 지원 기관에서 일하고 싶어 다시 또 대학에 온 내겐 오래 기다렸던 시간이다. 그러나 난민 지원 기관이 얼마나 넓고 다양한 세계인지, 난민이 거의 없는, 아니 난민을 거의 받지 않는 나라에서 온 늙은 학생은 무지했다. 베를린시 난민청이 지원하는 난민 공동 거주 시설만 85곳이다.
2018년 예멘 난민 수백 명이 한국에 온 일로 나라 전체가 떠들썩했다고 하면 독일인들은 웃는다. 농담하는 줄 안다. 그때 나는 한겨레신문사 전국부 데스크로 일했는데, 여성주의 일부까지 파고드는 혐오의 물결에 나날이 참담했다.
그 경험 때문에 난민을 처음 수용하는 도착 시설에서 일하고 싶었지만, 실습생으로서는 어려웠다. 맨 처음 면접을 본 곳은 전쟁이나 탈출로 큰 트라우마를 입고 정신적으로 문제를 안게 된 난민들을 수용, 치료하는 시설이었다. 이곳에서도 도움은커녕 걸리적거리기만 하겠다 싶었다.
난민 숙소 중에는 컨테이너에 공동화장실을 쓰는 곳도 많아서 복지기관은 처음 이 일을 하는 실습생은 조금이라도 좋은 곳에 보내려 했다. 가족 단위로 수용하는 베를린 북쪽의 한 숙소는 오후가 되자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노는 소리로 떠들썩했다. 이곳 사회복지사는 내게 “항상 열린 마음을 가질 것”을 당부했다. 혼자 온 남성들을 수용한 베를린 서쪽 한 숙소에서 만난 복지사는 어찌 된 일인지 한국어로 번역하면 정확히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라고 했다. 베를린 동쪽의 한 복지재단에선 독일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모아 가르치는 프로젝트를 만났다. 많은 난민이 부모가 함께 오지 못하면 아이만이라도 독일로 보내려 한다. 독일에선 난민 수용시설에서 자라야 하는 아이들을 위해 부모 대리인을 만들어주고 모국어 통역을 지원하지만 혼자 낯선 땅에 온 아이들은 모국어마저 제대로 습득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내가 번역한 그림책을 아이들에게 읽어주고 싶다고 했더니 책임자는 웃었다. “알파벳이라도 잘 읽게 되면 소원이 없겠다. 네가 1년 동안 죽어라 노력해도 1㎝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아이가 많을 거야. 그래도 일하고 싶으면 하자.”
2022년 10월 칼럼 연재를 시작하며 “이주노동은 우리 사회의 끓어오르는 지점이 될 것이고 그 지점을 보고 싶어 여기에 왔다”고 썼다. 그 말을 취소하고 싶다. 그 말이 실린 <한겨레21>을 모두 수거해 그 구절을 박박 지우고 싶다. 세상에는 쉽게 국경을 넘을 수 없는 사람이 더 많다. 내가 할 일은 지켜보는 일이 아니다. 누군가를 잡고 1㎝만이라도 끌어당기는 일이다. 누군가가 잠시 눈을 붙일 수 있는 두꺼운 눈꺼풀이 되어주는 일이다. 그 힘을 내기 위해 오랫동안 여기에 썼다.
베를린(독일)=남은주 자유기고가 eunjoonam@web.de
*‘공부하는 늙은 엄마’ 연재를 마칩니다. 그간 독일에서 학업을 하는 틈틈이 원고를 보내주신 만학도 남은주 자유기고가와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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