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차고에서 태어난 미숙아 서배스천…두 번째 엄마 만나다

팔다리가 경직되고 주먹을 펴지 않던 아이, 첫 번째 위탁부모도 포기했지만 두 번째에서 완벽한 위탁가정 만나
등록 2023-06-09 12:17 수정 2023-06-16 12:50
2020년 8월10일 볼리비아 라파스의 한 중환자실에서 신생아가 산소공급 장치를 쓴 채 누워 있다. REUTERS

2020년 8월10일 볼리비아 라파스의 한 중환자실에서 신생아가 산소공급 장치를 쓴 채 누워 있다. REUTERS

“교수님, 지금 10시30분 예약환자가 한 시간이나 늦게 도착했어요. 꽤 늦어질 텐데 진료 보시겠어요?”

“한 시간이나요? 어쩌다가요? 혹시 예약 취소하거나 오지 않은 환자가 있나요?”

“다행히 한 환자가 취소했어요. 옆 병원 주차장에서 한참 헤맸나봐요. 위탁부모인데 아마 오늘 진료가 취소되면 불이익이 있을 것 같아요.”

“우리 팀 모두에게 양해를 구하고 괜찮다고 하면 진료 보도록 하죠.”

예약환자 리스트에 뜬 익숙한 이름

아침 8시부터 발달 테스트를 하는 아기가 15분마다 속속 도착해 한창 진료 중이었다. 두 팀으로 나눠 영양, 발달, 사회 환경까지 점검하며 환자들의 복잡한 차트를 살펴보고 있었다. 대면 진료를 마치고 회의를 통해 진료 계획과 보험·재정 문제까지 해결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 한 시간이나 늦게 도착한 환자까지 보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작은 실수로 한 시간이나 늦어버린 위탁모의 심정을 헤아려 진료를 보기로 했다. 예약환자 리스트를 클릭하자 익숙한 이름이 떴다.

‘베이커(가명·아이의 성), 남자아이’

햇살이 밝게 비치던 한낮에 어두침침한 차고에서 태어난 서배스천(가명)은 앰뷸런스를 타고 우리 병원으로 실려왔다. 신생아중환자실 회진을 돌다 전화 한 통을 받고 최고 속도로 뛰기 시작했다. 신생아중환자실 문을 세게 열어젖히고, 깜짝 놀라 바라보는 수많은 눈을 뒤로하고 무조건 뛰었다. 치료실 문을 열자 축 처진 작디작은 미숙아가 나를 맞이했다. 서배스천의 입을 열어 재빨리 기도 삽관 튜브를 넣어야 했다. 신생아중환자실로 데리고 와 꼬박 몇 달을 정성을 다해 치료했다.

서배스천의 엄마는 여의찮은 상황에 곧바로 입양을 선택했다. 안아주는 부모가 없어, 몸 상태를 전달해줄 부모가 없어 더욱 서배스천에게 마음이 쓰였다. 그러던 중 퇴원날이 다가오고 드디어 위탁부모가 정해졌다. 퇴원 당일 아침, 위탁부모가 나타나지 않았다. 사회복지사의 전화를 받지 않던 위탁부모는 마지못해 정부 사회복지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기 상태가 생각보다 좋지 않아요. 겁이 나서 도저히 데려갈 수 없어요. 정말 미안해요.”

서배스천의 머리에는 뇌출혈이 있었다. 미숙아인데다 병원에서 태어나지 않아 필요한 치료를 제때 받지 못했다. 그 영향으로 팔다리가 지나치게 경직되고, 주먹을 꼭 쥔 두 손은 좀체 펴지지 않았다. 위탁부모는 서배스천을 실제로 보자 앞으로 마주해야 할 시련의 강이 깊음을 감지했다. 결국, 위탁부모는 서배스천을 데리고 가지 않았다.

태어나서 만난 첫 의사이자 외래 첫 의사

하루이틀이 흘렀을까. 환한 형광등이 비추는 중환자실 문 앞에서 금빛 머리와 핑크빛 미소를 가진 중년 여성과 마주쳤다. 그 미소가 따뜻해 금세 알 수 있었다. 우리 서배스천을 안아줄 사람이라는 것을. 그렇게 서배스천은 그의 집으로 떠났다. 다시는 볼 수 없겠구나 생각했다. 보통 아기가 태어나면 엄마의 성과 ‘남자아이’ 또는 ‘여자아이’라고 칭해진다. 퇴원을 기점으로 실제 이름과 성(대부분 아빠의 성)으로 바뀌므로, 외래에서는 이름만으로는 그 아기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다만 서배스천은 위탁가정으로 퇴원했기에 이름이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태어나서 만난 첫 의사가 나였는데, 첫 외래진료에서 만난 첫 의사가 또 나일 수도 있구나.’

서배스천과 나의 인연은 얼마나 특별하고 소중한 걸까. 대부분의 아기는 태어나서 만난 의사가 99.9% 산부인과 의사일 것이다. 하나, 서배스천은 집에서 태어나 앰뷸런스를 타고 이 병원에 와 나를 만났다. 외래진료 전담 교수가 잠시 없는 사이 이곳에 와서, 웬만하면 늦게 도착한 환자를 보지 않는 곳에서 우여곡절 끝에 나를 다시 만난 확률은 얼마나 될까. 반가운 마음에 여러 테스트와 상담을 마친 뒤 마지막으로 보고 싶은 마음 하나로 진료실에 들어갔다.

“서배스천, 그동안 잘 지냈어? 안녕하세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인사를 마치기 바쁘게 나를 보며 까르르 웃는 서배스천의 웃음에 형언하기 어려운 행복의 감정이 치솟았다. 내 아이가 처음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보다 더 큰 행복이 나를 감쌌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저희는 잘 지내고 있어요. 서배스천이 얼마나 예쁜지 몰라요.”

자신이 낳은 아이 6명과 서배스천을 키우는 위탁모는 곧 서배스천을 정식으로 입양할 계획이라고 했다. 서배스천의 생물학적 엄마가 지어준 이름, 서배스천은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이며.

행복한 가정, 바닥에 누울 일 없는 아이

서배스천은 병원에 있을 때보다 사지 경직이 더 심해져, 약을 두 가지나 더 추가해서 복용하고 있었다. 두 시간 동안 갖가지 테스트와 상담, 진료를 하고 앞으로 더 필요한 재활치료를 주문했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을 알려주며 상태가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말도 전했다.

“아이들이 서배스천을 너무 예뻐해서 여섯 명이 돌아가며 안아주고 놀아주고 있어요. 바닥에 누일 일이 거의 없을 정도예요.”

위탁모가 사랑스러운 눈길로 서배스천을 바라보며 툭 던지는 말에 왈칵 눈물이 나올 뻔했다. 차고에서 미숙아로 태어나 곧바로 치료받지 못해 뇌손상을 입은 아기. 생물학적 엄마도, 첫 번째 위탁부모도 포기한 서배스천. 출생과 함께 온 불행은 이렇게 사랑이 넘치는 완벽한 위탁가정을 만나 입양될 축복으로 바뀌었다.

“어머님, 이렇게 사랑으로 키우고 재활치료도 받으면 우리 서배스천이 비록 걷지 못할 수도, 지금보다 경직이 더 심해질 수도 있지만 분명 현명하고 똑똑하게 클 거예요.”

나의 작은 위로에 그의 눈이 반짝 빛났다. 그의 얼굴이 빛나자 서배스천이 더 환하게, 더 크게 웃었다. 내 세상도 빛으로 가득한 순간이었다.

스텔라 황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병원 소아과 신생아분과 교수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손바닥만 한 초미숙아부터 만삭아까지 돌보는 스텔라 황 교수가 어린 생명의 삶과 죽음을 이야기합니다. 스텔라 황 교수는 의사이자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3주마다 연재.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